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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현 회장 벼랑 끝으로 몰리나

예보 수백억대 소송으로 현대건설 인수 ‘발목’ … 인수 실패 땐 그룹 경영권도 위협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현대 현 회장 벼랑 끝으로 몰리나

현대 현 회장 벼랑 끝으로 몰리나

현정은 회장(왼쪽)과 서울 성북동 현정은 회장 자택과 하이닉스가 이 자택을 가압류해놓은 등기부등본.

예금보험공사(이하 예보)가 3월 초 현대건설 부실 책임과 관련, 고(故)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 상속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게 총 520억원대의 손해 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라고 신한은행 등 예보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채권 금융기관과 현대건설에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소송 대상에는 김윤규 이내흔 전 사장 등 현대건설 전·현직 임원 7명도 포함됐다.

이에 앞서 하이닉스반도체는 지난해 9월 역시 예보의 지시로 현 회장 등 8명을 상대로 820억원대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예보가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부실책임기업 책임심의위원회(위원장 이철송 한양대 법대 학장) 심의·의결을 거쳐 현 회장 등의 현대건설 부실책임을 인정하고 손해배상 청구소송 지시를 내린 것은 이번에 처음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현대상선 주식·자택 등 가압류 대상

예보는 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신한은행 등에 지시하면서 현 회장의 재산목록을 송부한 것으로 처음 확인됐다. 본안 소송에 앞서 현 회장의 재산에 대해 가압류 조치를 취하라는 의지의 표현이다. 여기에는 현 회장이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증권, 현대상선 등의 주식이 포함돼 있다.

하이닉스가 지난해 9월 현 회장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현 회장의 일부 재산에 가압류 조치를 취한 사실도 처음 밝혀졌다. 현 회장이 개인적으로 보유한 현대상선 주식 230만8866주와 서울 성북구 성북동 현 회장 자택 등이 가압류 대상이었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 홍보를 담당하는 노치용 현대증권 부사장은 “현 회장이 소송 대상이 된 것은 고 정몽헌 전 회장의 상속인이라는 사실 때문인데, 빚만 상속받은 현 회장에게 부실책임까지 묻는 것은 가혹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현 회장이 고 정몽헌 전 회장의 권리와 의무를 포괄적으로 상속받은 만큼 현 회장이 부실책임 소송 대상이 된다고 본다.

현 회장은 예보의 이번 소송으로 현대건설 인수전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현대건설 인수 자격을 둘러싸고 채권 금융기관 일각에서 제기한 ‘구(舊)사주의 부실책임’ 문제가 다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에 실패할 경우 현 회장의 현대그룹 경영권도 위협받을 수 있다.

현대 현 회장 벼랑 끝으로 몰리나

현정은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였던 정상영 KCC 명예회장(왼쪽). 현대중공업 대주주 정몽준 의원.

예보의 현대건설 부실책임 소송은 예견된 일이었다. 예보의 수사 의뢰를 받은 검찰이 현대건설의 분식회계를 통한 사기대출 혐의를 밝혀내고 이내흔 김윤규 전 사장과 김재수 전 부사장 등 3명을 분식회계에 의한 사기대출 혐의로 기소했기 때문.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9월7일 검찰의 공소 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 이들 3명 모두에게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예보가 이번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지시한 내용은 서울중앙지법이 1심 재판에서 유죄로 인정한 부분이다.

현 회장이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사실이 알려질 경우 시장의 관심은 현 회장과 범현대가의 경영권 분쟁 재연 가능성에 쏠릴 것으로 보인다. 현대그룹은 2003년 8월 정몽헌 회장 사후 KCC와 현대중공업 등 범현대가에서 경영권을 위협받아왔다. 2003년 11월 무렵엔 시삼촌인 정상영 명예회장의 KCC가, 지난해 4월엔 시동생 정몽준 의원이 대주주인 현대중공업그룹이 각각 공격을 감행했다.

현재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잠복 중인 회사는 현대그룹의 핵심 주력사인 현대상선. 현대상선 경영권을 장악하게 되면 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증권-현대엘리베이터로 이어지는 현대그룹 순환출자 고리가 끊어질 뿐 아니라, 현대엘리베이터를 제외한 현대그룹 계열사를 장악하게 된다.

현 회장과 범현대가 경영권 분쟁 재연?

현대그룹 측은 현재 현대상선의 의결권이 있는 주식 중 47%를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시적인 우호지분은 현대엘리베이터 18.71%, 케이프 포춘 8.70%, 넥스젠 캐피탈 3.60%, 현 회장 일가 3.24% 등 총 43.87% 정도다. 반면 현대중공업그룹과 KCC 측은 현대중공업 17.60%, KCC 5.98% 등 31.45% 정도다.

초미의 관심사는 현대상선 지분 8.3%를 보유한 현대건설의 경영권 향방. 현대그룹 측으로선 경영권 안정을 위해 현대건설 인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현 회장이 기회 있을 때마다 현대건설 인수 의지를 밝힌 것도 현대그룹의 정통성 승계라는 명분 못지않게 이런 현실적인 필요 때문이었다.

물론 현대그룹 관계자들은 현대건설 인수는 대북사업의 시너지 효과를 얻기 위한 차원이라고 말한다. 현대그룹 고위 관계자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나올 경우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크게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대북사업을 이끌어온 현대그룹에 절호의 기회고, 현대건설이 있어야 이를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현대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분쟁 일지
▶1라운드(현대그룹`-`KCC 분쟁)
2003년 8월4일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 사망
18일
KCC 등 범현대가 9개사,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16.2% 매입
19일
KCC, 현대상선 지분 2.98% 매입
11월7일
KCC,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7.5% 매입
14일
KCC, ‘현대그룹 인수’ 공식 선언
17일
현 회장, ‘현대그룹 국민기업화’ 선언
2004년 2월18일
KCC,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공개매수 개시
▶▶2라운드(현대그룹`-`현대중공업 분쟁)
2006년 4월27일
현대중공업 등, 현대상선 주식 26.68% 매입
5월2일
현대그룹, 현대중공업에 현대상선 유상증자 참여 포기 요구

현대중공업, 수용불가 통보
▶▶▶3라운드(현대그룹-현대중·KCC 분쟁?)
2007년 3월2일
현대중공업·KCC, 현대상선 정관변경안 반대


어쨌든 현대그룹 측은 그동안 현대건설 인수를 위해 꾸준히 ‘실탄’을 확보해왔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상반기 3000억원대의 회사채 발행과 42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한 데 이어, 11월엔 ‘현대건설 인수를 위한 자금 조달’을 위해 3000억원 규모의 상환 우선주를 발행했다. 현대그룹은 이를 포함해 지금까지 2조5000억원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공정거래법상 장애물도 ‘무리수’를 써가면서 제거했다. 현대그룹이 지난해 4분기에 현대엘리베이터의 부채를 2000억원 늘려 자산규모를 8900억원대로 증가시킨 것이 그것이다. 당시 자산 증가가 없었다면 현대엘리베이터는 지주회사로 강제 전환될 수밖에 없었다. 현대엘리베이터가 보유 중인 현대상선 주식평가액이 현대엘리베이터 자산의 50%가 넘었기 때문. 이 경우 손자회사의 사업 관련성 인정 조항에 따라 현대상선의 현대건설 인수전 참여는 불가능해진다.

현대 현 회장 벼랑 끝으로 몰리나
현대건설 인수 위해 유상증자 등 실탄 확보

그러나 예보의 거액 손해배상 소송으로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인수전에서 또 다른 암초를 만나게 됐다. 지난해 8월 산업은행 김창록 총재가 제기한 ‘구사주 부실책임 논란’이 그것이다. 김 총재는 당시 “부도난 회사가 좋아지니까 원래 주인이 다시 가져가겠다는 것은 도덕적 해이다. 현대건설 매각 이전에 구사주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총재의 이런 주장은 은행연합회의 ‘채권 금융기관 출자전환 주식 관리 및 매각 준칙’에 근거한 것이다. 이 준칙은 ‘부실책임이 있는 구사주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우선협상 대상자에서 제외하되, 예외적으로 부실책임이 많지 않거나 경영 정상화에 기여한 경우 우선매수 청구권을 부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구 사주 부실책임 어디까지

김창록 총재는 명시적으로 현대그룹을 지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현대그룹 고위 관계자는 “정몽헌 회장은 당시 현대건설을 포기하라는 주위의 ‘권고’를 뿌리치고 사재를 출연하는 등 현대건설 회생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예보의 현대건설 부실책임 판정에 따라 현대그룹은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현재 외환·산업·우리은행 등 현대건설 채권단 운영위원회 소속 은행 가운데 산업은행과 외환은행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 있는 상태. 산업은행은 ‘선자격 논의, 후매각 주간사 선정’을 주장하는 반면 외환은행은 ‘선매각 주간사 선정, 후자격 논의’를 내세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현대그룹 측이 상속인에 불과한 현정은 회장에게 부실책임을 묻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하이닉스의 현 회장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1심 결과를 지켜본 후 현 회장의 현대건설 부실책임 문제를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 관계자는 “기업 인수·합병이란 기본적으로 주주들의 판단에 따라 하는 것”이라면서 “현대그룹을 배제하면 경쟁구도가 성립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예보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부실책임기업 책임심의위원회에서 현 회장의 현대건설 부실책임을 ‘확인’한 만큼 현 회장이 부실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전 참여를 아예 봉쇄하거나 우선 협상 대상자 선정 과정에 감점을 주는 것 등의 시나리오가 예상된다.

두 시나리오 모두 현대그룹으로선 큰 부담이다. 전자는 현대그룹으로선 최악의 상황이다. 지붕만 쳐다보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채권 금융기관 주변에선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을 낮게 본다. 가격을 높이기 위해서는 인수전 참여업체 수를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후자의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역시 현대그룹의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감점을 상쇄하고도 가장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인수 가격을 높게 써내는 방법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정몽헌 회장에게서 현대그룹 경영권과 함께 부실책임까지 물려받은 현 회장이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주목된다.

현대상선 지분경쟁의 숨은 변수

지분율 5% 현대家의 뜻과 상환우선주 처리 ‘二題’


현대 현 회장 벼랑 끝으로 몰리나

서울 적선동 현대상선 본사 건물.

현대중공업 측과 현 회장 측의 경영권 분쟁과 관련, 범현대가는 그동안 중립적 태도를 보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런 일반의 관측과 달리 3월2일 현대상선 주총에서는 범현대가의 의미 있는 견해가 드러났다. 현대백화점이 현대그룹 경영권 강화 포석으로 제안된 정관변경안에 반대표를 던진 것.

현대그룹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과 현대백화점이 사업적으로 밀접히 관련을 맺고 있어 현대백화점 측으로선 불가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백화점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율은 2.20%에 불과한 수준. 그러나 현대해상보험(지분율 1.02%), 현대산업개발(1.61%) 등의 지분을 합하면 범현대가 지분율은 총 5%에 육박한다. 범현대가의 뜻이 현대상선 경영권 분쟁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지난해 하반기 발행한 상환우선주도 숨은 변수가 될 수 있다. 현대상선은 당시 현대건설 인수자금 마련 목적으로 5년간 복리로 연 7% 수준의 배당수익을 보장하는 상환우선주 2000만 주를 발행했다. 이에 대해 현대상선 소액주주들은 기존 주주의 지분이 희석될 뿐 아니라 보통주 주주들의 이익배당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런 정황에 비춰볼 때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에 실패할 경우 상환우선주를 조기에 소각하라는 요구가 제기될 수 있다. 높은 비용을 지불하는 데다 상환우선주 발행 목적 자체가 소멸됐기 때문이다. 조기 소각은 아니더라도 어차피 5년이 지나면 상환우선주는 소각될 수밖에 없어 이 역시 현대그룹으로선 부담이다.

또 현대그룹이 우호지분으로 분류하고 있는 우리사주조합 보유 지분 4.94%(776만4082주)도 변수로 작용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대상선 우리사주조합은 지난해 5월 현대상선 유상증자 때 주당 1만4000원씩 600만 주를 배정받았다. 이 물량은 6월이면 1년간의 보호예수 기간이 끝난다. 언제든 시장에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3월29일 현재 현대상선 종가가 2만1450원대를 유지해 투자수익률은 50%대를 기록하고 있다.

현대그룹 측이 그동안 겉으로는 “경영권 유지에 문제없다”고 말하면서도 현대건설 인수에 목을 매고 있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현대건설 이종수 사장의 숨은 얼굴

2000년 자금 횡령 사건 연루 ‘뒤늦은 구설’


현대 현 회장 벼랑 끝으로 몰리나

현대건설의 김재수 전 부사장, 김윤규 전 사장, 이종수 사장(왼쪽부터).

지난해 3월부터 현대건설을 이끌고 있는 이종수 사장은 1978년 현대건설에 입사한 뒤 30여 년간 리비아 말레이시아 등 해외근무를 포함해 재정, 인사 등 회사 내 요직을 두루 거쳤다. 사장 취임 후 그해 5월 채권단 공동관리에서 자율경영체제로 조기 전환한 데 이어, 6월에는 회사 신용등급이 A-로 상향 조정돼 유동성 위기 이전의 등급을 6년2개월 만에 되찾았다.

그는 취임 이후 가치경영과 인재경영, 윤리경영을 3대 원칙으로 삼았다. 특히 기업가치 증대를 위해 수주 확대를 통한 매출이익의 극대화에 역점을 두고 있다. 지난해 추석과 올 설 명절에도 중동지역 주요 현장을 방문하며 직원들을 격려하는 등 현장도 열심히 챙기고 있다. 회사 내부에서 신망이 높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최근엔 이 사장의 ‘도덕적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지난해 9월 서울중앙지법이 1심 재판에서 이내흔 김윤규 전 사장과 김재수 전 현대건설 부사장 등 3명에 대해 횡령 및 분식회계 혐의 등으로 유죄를 선고하면서 이 사장의 연루 사실도 적시한 때문이다.

문제가 된 부분은 자민련 후원금 지급을 위한 회사자금 횡령 부분.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김윤규 전 사장은 2000년 2월 무렵 한국토지공사 김용채 당시 사장의 요청을 받고 회사자금 3억원을 임건우 당시 부사장 등 3명에게 특별상여금을 지급한 것처럼 허위로 기재해 빼돌린 뒤 이를 자민련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김윤규 전 사장은 이 과정에 김재수 당시 부사장, 이종수 당시 기획인사담당 이사 등과 공모했다는 것.

회사 내부에서는 “한국적인 기업문화상 이종수 사장으로선 김윤규 당시 사장의 지시가 불법인 줄 알면서도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동정론을 펴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회사자금 횡령을 ‘공모’한 사람을 사장에 앉힌 금융기관 주주들의 행태는 이해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현대건설 관계자는 3월30일 전화 통화에서 “이종수 사장이 현재 노무현 대통령을 수행해 중동 출장 중이어서 이 사장의 처지에 대해선 뭐라 말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주간동아 2007.04.10 580호 (p28~31)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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