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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南 아마추어리즘에 北도 당황했다”

남북정상회담 비선 프로젝트 비망록 공개한 권오홍씨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南 아마추어리즘에 北도 당황했다”

“南 아마추어리즘에 北도 당황했다”
“친구들은 나를 도깨비라고 부른다. 도깨비라….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나는 한반도가 가진 경계를 해체(解體)하고자 했다. 선거에 정략적으로 이용되는 남북관계 말고 남북이 상생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너무나도 허망했다.”

3월29일 밤 베이징에 머무르던 권오홍(47·사진) 씨가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권씨는 지난해 10월부터 노무현 정부 실세들과 특사교환 및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한 인사다. 대북 비선라인의 첫 기획자인 그를 이날 자정께 만났다.

-비망록을 공개한 이유가 뭔가.

“내가 의도한 것과 반대 방향으로 상황이 흘렀다. 나는 정상회담은 남북의 상생, 즉 경제문제에 포커스가 맞춰져야 한다고 여겼다. 그런데 지금 남아 있는 건 대선을 겨냥한 정치적 ‘화장놀이’뿐이다. 서울에서 정치 이슈로 대화를 이끌어가다 보니 평양도 그렇게 대응하게 된 것이다. 현 정권은 내가 제안한 길로 가지 않았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해찬 전 총리 방북 결과가 바로 그렇다. 남북관계가 대선과 맞물려 정치적 도구로 이용될 것은 자명하다. 대선용으로 가서는 안 된다. 쌀·비료를 주고 그 대가로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는, 그런 이벤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구도가 오랫동안 계속돼왔다. 그게 바로 내가 말하는 ‘화장놀이’다. 지금 시점에선 그 궤도를 타고 가면 양측 모두에게 이로울 게 없다. 바로잡아야 한다.”

“남북간 기본 루트조차 이해 못하는 수준”



권씨가 북한 관련 일을 시작한 것은 ‘북괴’라는 명칭이 ‘북한’으로 바뀔 무렵인 1989년. 그는 당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특수사업부에 몸담았는데, 이 부서는 북방정책이란 이름으로 미수교국 업무를 전담했다. 중국 몽골 베트남 캄보디아 등 공산권 국가를 상대하던 그는 자연스럽게 북한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렇다면 그가 바라는 남북관계의 방향은 도대체 어떤 걸까?

“사람들은 안희정 씨가 누구를 만났다 안 만났다, 정상회담을 비선으로 추진했다 안 했다만 따지지만 그건 문제의 초점이 아니다. 나는 남북이 경제협력 프로젝트를 통해서만 정치적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중대형, 중장기로 추진하는 것들 말고, 노 대통령의 말처럼 ‘지금 할 수 있는’ 것들 말이다. 그래서 17년에 걸쳐 ‘100대 남북상생 경협프로젝트’라는 것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번 기회를 통해 그걸 하려 했던 것이다. 내가 추진하던 특사교환과 정상회담은 ‘100대 남북상생 경협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한 실무중심, 경제중심이었다. 그런데 권력 핵심부의 아마추어리즘 탓에 모든 게 엇나갔다.”

“南 아마추어리즘에 北도 당황했다”

전화통화 중인 권씨.

-현 정부가 비선라인을 통해 정상회담을 추진한 것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

“나는 비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통령 지시를 받고 안희정 씨가 움직였는데 그게 왜 비선인가. 지난해 10월 북한의 핵실험 때로 되돌아가보자. 당시 서울은 패닉 상태였다. 국정원(공식라인)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내가 안씨를 부른 게 아니라 핵실험이 그를 부른 셈이었다. 당시 평양은 노 대통령의 진심을 듣고자 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의 뜻을 전하겠다면서 면담에 나선 안씨는 아마추어 수준이었다. 남북관계의 기본도 숙지하고 있지 못했다. 평양의 시스템은커녕 왜 자신을 만나러 나왔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북측이 공식라인으론 안 되니 새 라인을 뚫자고 나온 마당에 그는 ‘공식라인으로 하자’고 엉뚱한 소리를 했다.”

-현 정부 실세들이 모두 비망록에 나왔다. 그들과 일하면서 특별히 느낀 게 있는가.

“한마디로 아마추어들이었다. 남북관계와 관련해 제대로 된 기획이 없었다. ‘이종석 로드맵’에 매몰돼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자 우왕좌왕했다. 대부분이 남북간 루트의 기본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안희정 씨는 특사교환 및 정상회담 논의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왜 그들이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들이 당당해도 된다고 본다. 당시는 비공식 라인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정상회담과 특사교환은 이 라인의 베이스였다. 정상회담을 한다는 전제에서 안희정-리호남 만남이 이뤄졌고, 그 뒤 일정도 진행된 것이다.”

-안씨는 리 참사가 ‘대화할 상대가 아니었다’고도 했다.

“하하. 그건 아마 이 일 자체를 스캔들, 해프닝 수준으로 몰고 가려는 그 사람의 방법이 아닌가 싶다. 그 일 이후 쭉 이어져 이화영의원의 방북과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찬 전 총리 방북까지 나오지 않았나.”

-이해찬 전 총리는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대단히 서운하다. 이 전 총리는 10월 안씨가 베이징 면담을 한 후 11월에 이미 특사로 내정된 사람이다. 그런 분이 비하인드 스토리를 몰랐다면 100m 달리기에서 60m는 건너뛰고 달렸다는 뜻이다.”

“南 아마추어리즘에 北도 당황했다”
-이화영 의원의 역량과 사람됨에 대한 평가가 비망록 곳곳에 씌어 있다. 이 의원과 서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이번 사안이 정치적 화장놀이로 귀결되는 데 이 의원이 핵심 구실을 했다. 그는 아마추어 중에서도 아마추어였다. 그 사람은 정파적 이익을 최우선시했다. 인간적인 문제는 나의 개인 감정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관계에서 지켜야 할 금도는 있다고 본다.”

12월 말 서울의 권력 핵심부는 비선라인을 사실상 정리하고 공식라인을 본격적으로 재가동했다. 그런데 이 의원은 권씨에게 이 사실을 통지하지 않았다. 그러곤 평양 방문 때 만난 북측의 아태 인사를 통해 선양의 통전부(통일전선부)와 새로운 라인을 뚫었다. 3월7일 이 전 총리의 방문은 이 라인에서 이뤄진 것이다. 권씨의 표현대로라면 공식라인의 화장놀이가 대세가 된 것이다.

-이 의원은 “북측 인사가 권씨의 배제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난 그 말에 한참 웃었다. 내 집은 서울에 있고 가족이 다 여기 산다. 한국에서 자랑스럽게 살아왔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북측 기관인 아태의 말을 듣고 그렇게 했다는 게 우습지 않은가? 더구나 그 사람은 누가 그랬는지 이름도 못 댄다. 당당하게 이름을 밝히라고 했는데도 그렇다. 핑계라고는 하지만 사리에 안 맞는다.”

“남북문제 정치보다 경제로 풀어야”

-일각에선 100대 프로젝트의 사업권에 욕심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하하. 그 안에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100대 프로젝트엔 구체적으로 어떤 게 담겨 있나.

“노 대통령에게 보낸 보고서에도 몇 가지가 간추려져 담겨 있다. 예컨대 탄산칼슘 공장 같은 것이다. 북측엔 이 공장이 아예 없다. 전량 수입한다. 그런데 원자재는 아주 풍부하다. 우리는 이 기술에서 꽤나 강자다. 그러나 원료가 자꾸 줄어든다. 북측에 이 공장을 세우면 남북이 꿩 먹고 알 먹을 수 있다. 이처럼 남북이 상생할 수 있는 100여 가지 사업을 구상해놓았다. 이 사업들을 하나 둘씩 따로 나눠 해서는 실현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정부가 종합적인 패키지를 구성한 뒤 북측과 특사를 교환하고 정상회담을 하자는 게 당초 의도였다.”

-북한에서도 반응이 있어야 진행할 수 있는 일 아닌가.

“그야 당연하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 프로젝트를 북측에 이야기했다. 이 프로젝트를 접한 북측 인사들은 거의 모두 열렬한 반응을 보였다. 평양도 이 프로젝트가 특정 기업 차원에서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잘 안다. 그래서 특사, 정상회담이 추진된 것이다.”

-100가지 사업을 벌이려면 돈이 많이 들 것 같다. ‘퍼주기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그렇지 않다. 4000억원 수준이면 할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 대가로 지불한 돈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지 않는가. 100대 프로젝트는 철저한 실사구시 사업이다. ‘퍼주기’는 주기만 하고 받는 게 없거나 적어서 나온 불평이다. ‘제대로 (우리 것을) 주고, 제대로 (그쪽의 것을) 받는’ 공식이 정착돼야 한다.”

-특사와 정상회담 논의가 현재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 있는가.

“이 전 총리한테 물어봐야 할 질문이다. 남북간엔 뭘 해야 할 것인가라는 ‘각론’이 필요하다. 각론이 구성됐을 때 특사, 정상회담이 형식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슈도 없이 정치적으로 만나서 ‘셰이크 핸즈’ 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 전 총리의 대표단이 성과가 있으면 특사, 없으면 개인이라고 했다. 성과가 있었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나는 다르다. 그저 구태로 일관된 것은 성과가 아니다. 정파적이거나 개인적으로 이익을 추구한 것일 뿐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남북관계는 비교적 잘 굴러가는 모습이다.

“2·13합의가 나왔다. 그런데 거기엔 한국이 빠져 있다. 6자회담은 다자협상 틀이지만 그 내부에는 양자대화가 자리잡았다. 미국 일본은 관계정상화를 위한 실무그룹을 꾸렸다. 중국 러시아는 평양과 기수교국이다. 한국은 뭔가?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6자회담에 따른 틀은 그것대로 잘 가도록 하고, 우리는 우리대로 남북한의 미래를 위해 기획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없다.”

-공식라인 중심의 해법을 깎아내리는 이유가 뭔가.

“나는 그들의 능력을 인정한다. 대북문제에선 최고 전문가다. 평양도 그렇게 인정한다. 다만 구태의연한 해법을 이젠 버려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저 쌀·비료를 주고 이산가족 상봉을 받아오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가 이끄는 기획을 만들어야 한다. 거듭 말하거니와 정치로 풀어서는 안 된다. 열쇠는 경제에 있다.”

-비망록엔 공식라인과 관련한 민감한 내용이 많다. 책으로 출간할 거라고 들었다. 일반에 공개할 것인가.

“국가기관, 국익과 관련된 부분은 뺄 것이다.”



주간동아 2007.04.10 580호 (p12~15)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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