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9

2007.04.03

인터넷 예술공장의 ‘아티즌’

  • 김경훈 한국트렌드연구소장

    입력2007-03-30 19: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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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예술공장의 ‘아티즌’

    최근 방영한 시청자 동영상 UCC. 케이블 tvN ‘박명수의 단무지’`에 나온 개똥차.

    초등학교 4학년짜리 아들녀석에게 요즘 최고의 장난감은 소형 캠코더다. 아이 손에도 쏙 들어갈 만큼 작다 보니 늘 손에 들고 다니면서 동영상을 촬영한다.

    디지털 기술은 아들녀석을 포함한 인간 모두에게 무한한 표현수단을 선사했다. 2007년 최고 이슈로 떠오른 아마추어들의 동영상 콘텐츠 UCC(User Creative Contents·사용자 손수 제작물)를 보자. 이 UCC 제작도구를 살펴보면 휴대전화, 디지털카메라, 캠코더, 웹카메라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디지털 저작도구로 작품제작, 스스로 예술가들 넘쳐

    이렇게 보편화된 디지털 저작도구들은 인간의 표현욕구를 자극한다. 물질이 욕망을 부추기는 것이다. 더구나 개인화가 진행되면서 21세기의 한국인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으로 자신을 남에게 알리고, 남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들로 바뀌었다. 한국은 더는 조용한 은자의 나라가 아니다. 그러니 디지털 저작도구의 대중화와 표현욕구의 만남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디지털 저작도구들은 단순히 하드웨어들이 아니다. 다양한 소프트웨어들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예컨대 누리꾼(네티즌)들은 인터넷에서 ‘오이를 깎는다’. 그들 사이에서 ‘오이깎기’로 통용되는 이것은 원래 일본의 Poo라는 사람이 2000년 무렵 인터넷에 유포한 그림 저작도구다. 일본어로는 ‘오에카키’인데 한국의 누리꾼들은 이것을 ‘오이깎기’라고 부른다. 그림물감과 붓 대신 마우스를 움직여 그림을 그리는 기법.



    오이깎기로 그린 그림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 섬세함이 보통이 아니다. 도저히 마우스로 그렸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다. 참여자들도 초등학생부터 미술 전문가까지 다양하고, 작품 수준도 간단한 스케치에서 예술성이 물씬 묻어나는 작품까지 두루 걸쳐 있다. 평소 그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던 사람은 처음에는 단순 구경꾼으로서 감탄만 한다. 그러다가 직접 참여해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보고, 이것을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난다. 그리고 마침내 스스로 예술가가 된다.

    나는 이 새로운 성향의 누리꾼들을 ‘아티즌(Artizen)’이라 부르고 싶다. 예술(Art)과 네티즌(Netizen)이 결합된 말로, 예술적 욕구를 인터넷상에서 마음껏 표현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디지털카메라를 비롯한 많은 하드웨어, 웹상에서 자유로운 표현도구들을 제공하는 다양한 소프트웨어, 여기에 개인화를 기반으로 한 표현욕구의 증가가 결합함으로써 수많은 아티즌이 탄생하고 있다.

    아티즌들에게 미니홈피, 블로그 등은 자신의 미적 감각을 표현하는 하나의 예술 기지다. 이 예술 기지에서 아티즌들은 음악, 미술, 문학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결합하고 있다. 장르의 경계는 점점 더 희미해지고, 화면에 손을 대면 온도의 변화에 따라 식물이 자라는 작품이 상징하는 ‘뉴 미디어 아트(New Media Art)’처럼 새로운 예술의 씨앗들이 연속해서 등장한다.

    물론 UCC 논쟁에서 드러난 것처럼 많은 생산물들은 단순 복제품이거나 의미 없는 패러디, 혹은 예술적 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쓰레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티즌의 등장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어려서부터 다양한 표현 저작도구를 다뤄온 이들이 성장할 무렵이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인터넷은 거대한 예술공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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