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9

2007.04.03

미다스 洪, 또 다른 神話 꿈꾸다

만화가 홍은영 ‘홍은영의 그리스 …’로 컴백… “명예 회복 첫걸음, 외국어로도 만들 생각”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7-03-30 14: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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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다스 洪, 또 다른 神話 꿈꾸다
    만화는 더 이상 문화의 변방이 아니다. 수많은 영화의 원작이 만화이며, 허영만의 음식만화 ‘식객’, 아기 다다시의 와인만화 ‘신의 물방울’ 등은 하나의 트렌드를 이룰 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1500만 부 이상 팔린 것으로 알려진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작가 홍은영(43) 씨가 3년 만에 ‘홍은영의 그리스 로마 신화’(마므레북 펴냄)를 들고 돌아왔다.

    “명예를 회복하고 싶었습니다. 출판사와의 소송 때문에 시리즈 18권까지만 작업하고, 갑자기 중단해 실망했을 독자들에게 미안함도 갚고 싶었고요.”

    ‘홍은영의…’는 전작과 달리 작가가 직접 글까지 쓰고 그림을 그렸다. 완간하지 못한 ‘만화로 보는…’을 마무리하기 위해 시작됐지만, 완전히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클래식한 표지화 때문에 ‘소장하고 싶은 만화책’이라는 인상까지 준다.

    “전작이 토머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토대로 엮은 것이라면, 신작은 제가 수십 권의 관련 서적을 읽고 만든 새로운 내용입니다. 인물 성격이나 이야기를 다채롭게 꾸몄고, 그림도 더 섬세하고 화려하게 바꿔 인물이 살아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출판계에는 전작(혹은 원작)보다 잘 팔리는 후속작이 드물다는 징크스가 있다. 더욱이 1500만 부(추정)나 팔린 책을 뛰어넘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에 가까운 시도 아닐까.



    “책을 많이 팔겠다는 욕심은 없습니다. 그동안 충분히 사랑을 받았으니까요.”

    1100만부 판매 교양만화 기폭제

    국내 출판 사상 1000만 부 넘게 팔린 책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문열의 ‘삼국지’,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 홍은영의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 출판계에서는 밀리언셀러도 ‘신의 선물’이라고 말하는데 1000만 부라면 선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신의 실수’에 가깝다고 본다. 신이 2000부 판매도 힘든 우리 출판계의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그런 선물을 했다는 얘기다.

    이 가운데 ‘만화로 보는…’은 특히 초등학생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서양문화의 근간이 되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컬러 그림으로 흥미롭게 풀어낸 점이 인기 요인으로 풀이됐다. 이 책이 교양과 재미를 갖춘 학습만화의 새 장을 열어젖힌 뒤 ‘마법 천자문’ ‘영문법 원정대’ 등 수많은 학습만화 베스트셀러가 등장했다.

    미다스 洪, 또 다른 神話 꿈꾸다

    새로 출간된 홍은영의 ‘그리스 로마 신화’(왼쪽)와 2000년 나온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3월9일 그를 만나기 위해 부산 장전2동 금정산성 언덕배기에 있는 집을 찾았을 때 그는 문하생 10명과 함께 신화 속 인물처럼 조용히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들 뒤의 서가에는 아폴로 도로스의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헤시오도스의 ‘신통기’ ‘세계 신화사전’, 베르낭의 ‘그리스인들의 신화와 사유’, 아이리스 브룩의 ‘그리스 고전 드라마 의상’ 같은 책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신화 관련 외서는 주로 영국에서 공부하는 두 딸 조수진(20)·수현(16) 양이 사서 보내줬다고 한다.

    홍씨는 부산 억양을 쓰면서도 다소곳한 말투 때문에 더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작은 몸집에 사람 좋은 웃음을 머금은 그의 어디에서 엄청난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낸 큰 힘이 나왔을까. 고통과 시련은 오히려 그를 더욱 단단히 단련시켰다.

    2000년 여름, 피부에 염증이 계속 생기는 난치병인 베체트병에 걸려 생사를 넘나들었을 때도 그는 손에서 펜을 놓지 않았다. 2004년 1월 출판사를 상대로 한 저작권 계약 위반 소송 과정에서 출판사가 750만 부에 해당하는 인세(34억여 원)를 가로챈 것을 알았을 때는 병이 급속히 악화돼 1개월간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지요. 결국 인세지급 청구소송에서 이겨 2005년 1월 미지급된 인세를 받았습니다. 소송 과정에서 계약을 취소했지만, 가나출판사는 새 작가를 기용해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를 계속 출간했습니다.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지요.”

    이 소송 과정에서 가나출판사 김남전 회장이 170억원가량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도 비자금 사용처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김 회장의 형 김남경 씨가 지난 대선 직전인 2002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운영하던 생수회사 장수천을 고액에 매입한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일었다.

    건강이 많이 회복된 요즘 홍씨는 밤잠을 줄이며 ‘홍은영의…’ 2권을 만들고 있다. 그가 스케치를 하면 수석 문하생이 배경을 그려 스캔하고, 나머지 8명이 컴퓨터로 색을 입힌다. 문하생 10명과 함께 매달려도 책 한 권 분량을 완성하는 데 꼬박 석 달이 걸린다.

    “천직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정말 이 짓 못해요. 대부분의 작가들이 힘들게 살아가요. 목숨 바쳐 작업하고, 그것을 남에게 보여주는 기쁨 하나로 살겠다는 각오를 해야 해요.”

    미다스 洪, 또 다른 神話 꿈꾸다

    만화가 홍은영(앞줄 가운데) 씨와 문하생들.

    훌륭한 지식 전달자로 자부심

    그의 말은 피그말리온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조각가였던 피그말리온은 아름다운 여인상을 조각하고, 그 여인상에 반해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그러자 여신 아프로디테가 그의 사랑에 감동해 여인상에게 생명을 주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창조적으로 하면 반드시 보상이 온다는 이야기다. 홍씨가 제안하는 ‘대박 공식’도 같다. 단, 조건이 하나 더 있다. 다음 단계로 뛰어넘을 때까지 인내하라. ‘만화로 보는…’으로 ‘대박’을 터뜨리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며칠 동안 바깥 구경 한번 하기 힘들 만큼 작업에만 매달렸다.

    ‘만화로 보는…’이 탄생한 것도 그의 집념 때문이었다. 1997년 무렵 홍씨는 그의 만화 스승이었던 남편 조영기(47) 씨와 함께 20세기 말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희망이라고 생각했고, 희망을 노래하는 신화의 재미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결국 3년간의 준비 작업 끝에 비슷한 기획물을 찾고 있던 가나출판사와 인연이 닿아 책이 탄생한 것이다.

    홍씨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데 관심이 많았지만, 대학은 만화와는 무관한 기독교교육학과에 들어갔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어서 부모님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했던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만화에만 빠져 있던 그는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비천무’의 작가 김혜린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86년 순정만화 ‘은색의 대지’로 데뷔해 ‘눈물의 다이아몬드’ 등을 그렸고, 2002년 ‘만화로 보는…’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다.

    홍씨는 독자들의 신화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4월 초 그리스 로마 신화 가이드북을 펴낼 예정이다. ‘홍은영의 그리스 로마 신화’(20권 목표) 3권이 출간될 무렵에는 영어 독어 프랑스어 등 외국어판도 만들어 국제도서전에 출품할 계획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 이후에는 중국 신화, 수메르 신화 시리즈가 준비돼 있다. 이를 위해 이미 50여 권의 관련 서적도 서가에 꽂아뒀다.

    “이제는 만화가도 훌륭한 지식 전달자가 될 수 있는 시대입니다. 훌륭한 신화 전달자로서, 도를 닦듯 열심히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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