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9

2007.04.03

의사에게 사투리 쓰다 명 재촉할라

환자 증상 정확한 표현은 치료의 기본 … 의료사고 소송에도 엄청난 차이 초래

  • 김상영 법무법인 대양 변호사 www.ksyoung.co.kr

    입력2007-03-30 13: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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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에게 사투리 쓰다 명 재촉할라

    의사의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위해서는 환자가 자신의 증상을 표준어로 정확히 설명해야 한다.

    의사와 환자는 변호사와 의뢰인처럼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사이여야 한다. 그래야 의사도 질병을 잘 치료할 수 있고, 변호사도 소송을 잘 진행할 수 있다. 그런데 의사와 환자가 사용하는 단어가 서로 다르다면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대동맥 박리에 관한 두 건의 의료소송을 맡으면서 겪은 일을 소개하겠다.

    대동맥 박리는 고혈압이나 노화 등으로 탄력이 떨어진 혈관이 혈압을 이기지 못해 혈관을 따라 장축으로 찢어져 사망하는 초응급 질환이다. 주로 고혈압 환자에게서 나타나는데, 극심한 통증이 수 시간 지속된다. 환자들은 대부분 “찢어질 듯 아프다” “죽을 것만 같다”고 호소한다. 주요 임상 증상으로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통증과 하반신 마비, 심부전, 실신, 의식장애, 혈압 불안정 등이 있다. 대동맥 박리는 흉부 X선 검사, 심초음파 검사, 대동맥 조영술, CT, MRI 등으로 확진해야 하고 절대 안정이 필요하며 신속히 수술해야 한다.

    그런데 같은 대동맥 박리라고 해도 의료소송의 결과가 판이해진 사례가 있다. 먼저 대구의 30대 초반 남성. 평소 고혈압으로 니트로글리세린을 복용하던 이 환자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고 호소(이 내용은 응급실 간호기록에 기재돼 있었다)하면서 응급실에 실려왔다. 의사에게 고혈압 환자임을 알렸고, 네 차례 심전도 검사 후 위염으로 진단받아 귀가했다. 하지만 이튿날 새벽 다시 같은 증상을 호소(역시 간호기록에 기재)하면서 응급실에 왔고, 저혈압 상태가 계속됐다. 혈액검사 후 비결석 담낭염으로 진단됐다. 그러나 환자는 다음 날 오전 위내시경 검사 도중 심정지로 사망했다. 부검을 통해 밝혀진 사인은 대동맥 박리.

    “오목가슴이 우리하다” 유족 패소

    또 다른 환자인 군산의 50대 후반 남성은 고혈압으로 정기 치료를 받아왔다. 이 환자는 어느 날 호흡곤란과 하지 무감각으로 평소 고혈압 치료를 받던 병원을 찾았다. 증상에 대한 환자의 호소는 “오목가슴이 우리하다”는 것. 환자는 네 차례 심전도 검사 후 다발성 심실조기수축으로 진단받았다. 이튿날 저혈압 및 설사 증상을 보인 환자는 감염성 결장염으로 진단받고 입원했다. 하지만 다음 날 오후 가슴이 답답하다며 병실을 나오다가 복도에서 쓰러졌고 몇 시간 뒤 사망했다. 부검을 통해 밝혀진 사인은 역시 대동맥 박리.



    이 두 사건은 비슷한 시기에 의료소송이 진행됐는데 진료기록 감정, 증인신문 등 절차를 거쳐 군산 사건이 먼저 종결됐다. 재판의 관건은 “오목가슴이 우리하다”는 호소가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지, 그 말을 들은 의료진이 대동맥 박리를 의심할 만한 상황이었는지였다.

    ‘우리하다’는 ‘몹시 아리거나 욱신욱신하다’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 경상도 지방에선 통증을 표현하는 말로 곧잘 쓰인다.

    군산 사건 재판부는 화해를 권고했는데, 환자 측이 화해 권고 금액이 적다며 이의신청을 해 판결을 받게 됐다. 결과는 환자 측의 패소. 유족은 항소를 포기했다. 항소했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는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대구 사건은 환자 가족이 만족할 만한 선에서 조정이 이뤄졌다.

    만일 군산 사건에서 환자가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고 자신의 증상을 정확히 표현했다면 어땠을까. 당연히 승소하지 않았을까.

    환자와 보호자는 진료 시 자신의 증상을 축소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정확한 표준어로 명확하게 말해야 한다. 축소할 경우 의사가 정확히 진단하기 어려울 수 있고, 과장하면 의료소송에서 기왕증의 산정 비율이 높아지게 되어 환자에게 불리하다.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는 표준어는 병원에서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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