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9

2007.04.03

가치투자? 젊은 고수들에게 물어봐

한국시장 확고한 믿음 지닌 신세대 두각 … 지속가능성 기업 통해 삶의 가치 높이기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7-03-30 11: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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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에 가치투자 열풍이 분 지도 어느덧 수년이 흘렀다.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라면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을 언급하고, 단타매매보다 ‘중심을 잃지 않고 저평가 우량주에 장기 투자한다’는 가치투자 대원칙에 고개를 끄덕인다.
    • 최근 발견되는 흥미로운 현상은 신세대 가치투자가들이 대거 등장한 점이다. 이들은 외환위기 이후 기업가치가 회복되던 2000년 초반에 대학을 다닌 세대다. 선배들보다 일찍 주식에 눈뜰 수 있었고, 기술분석보다는 워렌 버핏이나 벤저민 그레이엄류의 가치 중심 투자이론의 세례를 받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들 신세대 투자가는 90년대 이전 가치투자가를 1세대로, 한국형 가치투자의 대부로 불리는 강방천(46) 에셋플러스 대표나 이채원(42) 한국밸류자산운용 전무를 2세대 가치투자가로 밀쳐내고 스스로를 ‘3세대 가치투자가’로 규정하고 나섰다. 과연 가치투자의 젊은 고수들이 보는 한국 주식시장의 미래와 그들의 종착역은 어디쯤일까.

    가치투자? 젊은 고수들에게 물어봐
    최준철(30) 김민국(30) VIP투자자문 대표

    “평생 손해보지 않는 한국의 버크셔 해더웨이를 꿈꾼다”

    공 동대표의 나이 만 서른 살, 운용자산 1850억원, 지난해 세전수익 56억원으로 76개 투자자문사 가운데 2위…. 이제는 어엿한 중견회사로 성장한 ‘VIP투자자문’을 수식하는 표현들이다.

    최준철(사진 오른쪽), 김민국 공동대표는 또래 친구들이 초짜 펀드매니저로 활동할 때 과감하게 독립을 택해 성공가도에 진입했다. 제3세대 가치투자가의 상징적인 인물로 이들을 따르는 대학생도 적지 않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은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에 투자자 처지에서는 불안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워렌 버핏이 투자자들과 파트너십을 맺기 시작한 나이가 25세에 지나지 않았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들은 대학에 입학한 1996년부터 투자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이미 10년차 경력의 베테랑인 셈이다.

    이들은 2000년 서울대 투자동아리에서 함께 활동하다 도원결의를 맺었다. 2004년에 함께 쓴 ‘한국형 가치투자 전략’이란 투자이론서는 국내 가치투자자들의 필독서로 꼽히며 지금까지도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

    “우리는 워렌 버핏이 강조한 정통 가치투자이론을 고수하려 합니다. 현금 흐름을 중요시하고 독점적 시장구조로 진입하는 사업모델을 갖춘 기업을 솎아내고 있습니다. 결국 시각이 버핏처럼 보수적으로 바뀌더군요.”

    그들의 기준은 버핏과 마찬가지로 하늘 끝에 닿아 있다. 농심, 태평양, 롯데칠성처럼 배당도 크고 독점적 영역에 진입할 역량을 갖춘 기업을 찾아내는 게 목표다. 마냥 기다리는 게 아니라 경쟁이란 요소를 끊임없이 체크하며 리스크를 줄이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 무리해서 홈런을 치기보다 100번 기다려서 안타 하나를 쳐내겠다는 집념인 셈이다. 이 같은 원칙 투자를 고집한 덕에 VIP투자자문은 2003년 ‘더 밸류 사모펀드 1호’를 내놓고 이후 3년간 175%라는 고수익을 투자자들에게 안길 수 있었다. 그들의 꿈은 버핏처럼 죽기 전까지 공부하며 ‘잃지 않는 투자’를 해나가는 것.

    “거품이 꺼지는 맥주가 아닌, 시간이 지날수록 성숙하는 와인 같은 투자가가 되고 싶습니다. 버핏도 70대인 지금에서야 한층 여유롭고 깊은 통찰력을 발휘하잖아요. 꼭 그런 인물이 되고 싶어요.”

    가치투자? 젊은 고수들에게 물어봐
    우봉래(23) 대학생 투자가

    “일상생활 속 투자기회가 진정한 가치투자”

    연세대 법학과 4학년 우봉래 씨는 4년 전 주식투자를 처음 시작한 때부터 줄곧 자전거를 타고 통학한다. 한 시간 정도 거리여서 건강도 몰라보게 좋아졌다. 그러나 그가 자전거 페달을 밟는 것은 그 때문만이 아니다. 사람들의 눈빛이나 옷차림, 변화하는 세상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우씨가 자전거 위에서 거둔 성과는 기대 이상이다. 2004년 하반기 집 주변인 서울 서대문구에 여행사 하나투어 대리점이 개점하는 것을 보고는 주저 없이 하나투어 주식을 평균 2만1800원대에 매수했다. 현 주가가 7만원이니 누적수익률 200%를 가뿐히 넘겼다. 우씨가 공부와 병행한 생활 속 가치투자는 매번 빛을 발했다. 자판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커피회사인 동서식품의 진가를 발견했고, 대학 도서관에서 새로 들어온 퍼시스 가구를 살펴보고 투자 아이템으로 착안해 소득을 거두기도 했다. 그는 “증권 시세에 연연하지 않고 생활 속에서 발견한 아이템만으로도 가치투자가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물론 이는 그의 독창적 생각이 아니라, 워렌 버핏이나 피터 린치 등 가치투자 대가들이 강조한 투자이론이다.

    우씨는 정규과정을 통해 주식을 배우지 못했다. 그러나 투자수익률만큼은 전문 펀드매니저를 능가한다. 독학으로 쌓은 경제지식은 현재 경제신문 객원 칼럼니스트로 활약할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투자에 관심을 가지면 경제지식이 풍부해지는 것은 물론, 세상사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며 “시장에 대한 안목을 쌓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낀다”고 투자 예찬론을 펼쳤다. 현재 그는 후배들에게 주식에 관심 가질 것을 권하고 직접 강사로까지 나서고 있다.

    가치투자? 젊은 고수들에게 물어봐
    오완규(32) 직장인 투자가

    “사회를 행복하게 하는 종목 발굴하라”

    가치투자 전문사이트인 아이투자(www.itooza.com)에서 ‘캬오’라는 필명으로 이름을 떨친 오완규 씨의 본업은 IT프로그래머다. 그는 직장생활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경제공부로 해소하는 스타일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내가 예측한 대로 기업이 움직이고 그에 따라 주가가 오르는 것을 보면 정말 행복합니다.”

    오씨 역시 투자 초기에는 ‘소문에 사고 뉴스에 파는’ 전형적인 개미투자자의 악습을 반복했다. 그가 가치투자에 주목한 계기는 친인척이 주식투자를 시작하고 삶이 피폐해진 것을 본 이후다. 그래서 그는 목표를 수익률이 아닌 숨겨진 기업가치를 찾아내는 ‘통찰력’에 맞췄다.

    “가치투자는 신문을 꼼꼼히 읽고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 적당합니다. 저는 넘치는 정보 속에서 성장산업을 고른 뒤 ‘지속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솎아내는 방식을 반복할 뿐입니다.”

    기업의 성장성을 내포하는 자기자본이익률(ROE)이나 주가수익률(PER) 같은 지표 체크는 기본이다. 또한 그는 남들과 다른 관점을 갖고 있는데, 바로 수치화할 수 없는 기업의 ‘윤리경영’과 ‘사회공헌’이란 대목이다. 오씨는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영속적일 가능성이 높다”며 “반대로 시장 독점력이 강하기 때문에 사회 공헌에 열심일 수 있다”고 정의한다. 그는 2004년 상속세를 성실하게 냈다는 이유만으로 대한전선 주식 매수를 결정, 단기간에 30% 이상의 시세차익을 남겼다. 유한양행과 유한킴벌리 역시 그가 애정을 갖고 주식을 보유한 기업들이다.

    “차트를 기반으로 한 투자가 ‘제로섬 게임’이라면, 가치투자는 기업과 투자자가 함께 성장하는 영원한 ‘플러스섬’ 게임입니다. 때문에 숨겨진 가치를 발굴하는 안목이야말로 사회적으로 중요한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치투자? 젊은 고수들에게 물어봐
    이재완(26) 신태용(25) 최정용(32)

    “가치투자가 반드시 장기일 필요는 없다”

    버핏처럼 분석하고 존 네프처럼 투자하라’는 책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이재완(사진 왼쪽) 씨는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휴학생 신분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서울 여의도에서 수십억원대 자금을 굴리는 가치투자 고수로 이름을 알렸다. 수익률도 높아 머지않아 독립회사를 차릴 꿈에 부풀어 있다.

    신태용(사진 가운데) 씨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다. 과외 아르바이트를 통해 시작한 투자가 어느새 전업투자가로 활약할 만큼 커졌다. 지난 3년간 300%가 넘는 수익률로 대학가 가치투자의 달인으로 유명세를 탔다. 그가 읽어내는 보고서의 양은 전문 투자가들의 수배에 이를 정도다.

    최정용 씨는 투자론을 공부하고 있는 박사과정 학생이다. 이들 세 사람은 2001년 고려대 가치투자연구회에서 만난 이후 동고동락하며 가치투자의 현실적 모델을 고민해왔다. 최근 급증한 대학 내 가치투자 동아리들은 직접 펀드를 운영하기도 하고, 정기모임을 통해 거시경제와 산업분석은 물론 간접투자 상품까지 연구한다.

    “학생 신분이기 때문에 단순한 수익률에 연연하기보다 실제로 기업가치를 변화시킬 수 있는 활동, 예를 들어 감사선임권을 행사하거나 실질적인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의 역할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습니다.”(최정용 씨)

    이들이 여느 가치투자자들과 다른 점은 장기 보유를 원칙으로 삼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가스공사나 SK텔레콤처럼 배당력과 현금흐름이 좋은 기업은 친구처럼 오래 사귀었지만 팔 이유가 생기면 과감히 파는 결단을 중시했다.

    신태용 씨는 “가치투자를 시작하면서 내 삶 역시 가치 있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워렌 버핏이 그랬던 것처럼 많은 가치투자가들은 수익의 상당부분을 사회에 환원한다. 바로 자신의 삶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 가치투자의 최종 목표임을 알기 때문이다.

    “투자란 돈의 흐름을 바꾸는 행위입니다. 결국 가치가 높은 쪽으로 돈이 흐르게 마련입니다. 투자가의 가치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리라고 봅니다. 이것이 계속 공부하고 가치 있는 일에 돈을 써야 하는 이유겠지요.”

    젊은 투자가들이 존경하는 인물은

    이들 젊은 투자가의 입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인물은 바로 버크셔 해더웨이의 워렌 버핏(76·오른쪽)이었다. 이제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가치투자의 상징이 된 버핏은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이미 국내 증시에는 버핏이 투자한 ‘버핏 주’라는 테마가 형성될 정도. 우봉래 씨는 아마추어도 전문가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영감을 준 이론가로, ‘칵테일 파티 이론’으로 유명한 피터 린치를 추천했다. 오완규 씨는 대공황 시대의 투자가 존 템플턴을 추천했고, 최정용 씨는 유럽의 투자거장 앙드레 코스탈로니를 존경하는 영웅으로 꼽았다. 이재완 씨는 신속하고 과감한 결정으로 유명해진 소버린 형제를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국내 인물로는 한국형 가치투자의 시조인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전무와 허남권 신영투신운용 이사, 장하성 고려대 교수를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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