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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주자들이 山寺로 간 까닭은

불심 껴안으려, 스님들과의 인연 때문 … 사연은 달라도 마음은 표밭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대권주자들이 山寺로 간 까닭은

대권주자들이 山寺로 간 까닭은

3월16일 강원도 양양 낙산사를 찾은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정념 주지스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강원 인제군 백담사 봉정암은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암자다. 가파른 산골을 6~7시간은 족히 올라가야 당도할 수 있어 찾는 사람도 드물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유명하다. “봉정암을 한번 올라야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3월19일 한나라당 탈당이라는 정치적 승부수를 띄우기 전 강원도 산사에 칩거하면서 이곳을 찾았다. 그가 이곳을 찾았을 때는 갑작스레 기온이 떨어지고 폭설까지 내려 오르기가 더 힘들었을 터. 얼마 전 자신을 향해 “당에 남아도 시베리아지만 밖에 나가면 더 춥다”고 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가시 돋친 발언이 뇌리에 맴돌았을 법하다.

가톨릭 신자인 손 전 지사가 정치적 결단을 앞두고 강원도의 깊은 산사를 찾은 까닭은 뭘까. 손 전 지사 측근들에 따르면 손 전 지사는 낙산사와 인연이 깊다. 30여 년 전 손 전 지사의 신혼여행지가 바로 낙산사다.

손 전 지사는 ‘100일 민심대장정’을 펼치던 지난해 여름에도 잠시 이곳에 들렀다. 하지만 그때는 2005년 양양산불로 소실됐던 낙산사가 채 복구되지 않아 주지인 정념스님의 ‘배려’로 인근 암자에서 하루를 묵었다. 그날 이후 손 전 지사와 정념스님은 끈끈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 불교계 지지층 가장 많아



손 전 지사가 산사를 찾은 또 다른 이유는 교유의 폭과 무관치 않다. 손 전 지사는 가톨릭 신자이면서도 불교계 고승들과도 무척 가깝다. 봉은사 명진스님과 화엄사 종걸스님은 오래전부터 절친하게 지내왔고, 백담사 오현스님은 손 전 지사가 정신적인 스승으로 모시는 분이다. 모두 불교계에서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고승들이다. 때문에 손 전 지사의 종교관이 불교에 가까운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사실 여부를 떠나 올해 초에 나온 ‘손 전 지사의 올해 운세가 좋다’는 일부 고승들의 예언도 손 전 지사와 측근들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손 전 지사에게 산사는 이래저래 든든한 버팀목인 셈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불교계에 가장 든든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는 대선주자다. 박 전 대표의 부모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경북 김천시 직지사 녹원 큰스님은 공개적으로 박 전 대표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생전 불자였던 박 전 대통령과 육 여사는 불교계에 많은 도움을 줬고, 아직도 많은 고승들이 두 사람에 대해 애잔한 향수를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불교계에서 박 전 대표의 인기가 가장 높은 이유다.

문제는 불교계의 환대는 극진하다 못해 가끔 지나칠 때가 있다는 것. 3월16일 경남 양산 통도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박 전 대표는 성타 원로스님으로부터 “박근혜 여왕 탄생을 축하한다”는 축하를 받았다. 성타스님은 이어 “통도사는 여왕이 탄생한 곳이다. 한반도의 여왕이 탄생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고 있다. 여왕이 되려면 철학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저것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중심철학이 하나로 확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성타스님의 이날 발언은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서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박 전 대표 측은 이런저런 이유로 산사를 방문할 때 되도록이면 외부에 알리지 않는다. 이정현 공보특보는 “종교지도자들은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때문에 박 전 대표는 조용히 비공개로 만나는 불교계 지도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부터 불심을 잡기 위해 전국 산사를 돌면서 언론에 공개하고 있는 이명박 전 지사와는 다르다는 것.

이 특보는 “스님들이 산사에 찾아온 손님에게 덕담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지지라고 할 수 있느냐”고 이 전 시장 측을 직접 겨냥했다. 이어 “박 전 대표는 그보다 훨씬 더한 덕담을 듣지만 공개하지 않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불심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대선주자는 이 전 시장이다. 그럴 만한 ‘업보’가 있다. 2004년 서울시장 재임시절 ‘서울시 봉헌’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기 때문. 지난해 6월에는 부산지역 한 기독교 행사에 보낸 이 전 시장의 축하 영상메시지가 ‘부산 범어사와 통도사, 해인사 등의 사찰은 무너져야 한다’는 참석자들의 기도내용과 함께 편집돼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가면서 부산지역 불교계가 발끈했다.

기독교인 이명박 전 시장, 불심 잡기 안간힘

이 전 시장은 멀어진 불심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안국포럼’ 사무실을 서울 종로구에 자리한 조계종 총본산 조계사 바로 맞은편에 잡는 한편, 삼고초려 끝에 주호영 의원을 비서실장으로 영입했다. 주 의원은 한나라당 의원 중 불교계에 가장 발이 넓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 전 시장은 지난해 11월 대선 레이스를 가동하면서부터 주 의원을 앞세워 산사공략을 본격화했다. 이때 가장 먼저 찾은 곳이 바로 백담사와 낙산사다. 올해 2월 영남지역 공략을 위한 첫 방문지는 직지사였다. 손 전 지사, 박 전 대표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산사부터 공략한 것.

이 전 지사가 산사를 찾은 1차 목표는 불교계의 반감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주 의원은 “서울시 봉헌 발언은 행사 주최측에서 작성한 것을 참석한 다른 장로를 대표해서 읽었을 뿐이고, 부산지역 행사 관련 동영상은 누군가에 의해 편집된 것으로 이 전 시장 처지에서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주 의원은 이어 “스님들을 직접 만나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대부분 오해가 풀렸다”면서 “일부 큰스님은 ‘종교를 초월해 국민을 사랑하고 대통합해달라’며 지지의사를 나타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정치적 결단이나 정국구상을 할 때 ‘산사칩거’를 가장 적절히 활용하는 대선주자는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다. 그는 2004년 총선 직후 입각을 앞두고 김근태 전 의장과 불협화음이 있었을 때 홀연히 강원도 백담사로 떠났다가 ‘허깨비론’을 들고 나타났다. 2005년 말 통일부 장관에서 물러난 후 정치일선 복귀에 앞서 전남 장성 백양사에 칩거한 이후엔 ‘하심론’을 폈다.

정 전 의장도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불교계 인사들과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백양사의 지선스님과 낙산사의 정념스님 등이 대표적인 인사들이다. 정 전 의장은 또 통일부장관 시절 조계종에서 북한 금강산 내 신계사 재건을 추진할 때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면서 조계종 총무원장인 지관스님과도 가까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정 전 의장은 요즘 산사를 자주 찾지는 못하고 있다. 5%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형편없이 추락한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서민 속으로 뛰어다니기 바쁜 상황인 것. 그 사이 다른 대선주자들은 앞다퉈 산사로 향하고 있다.

통계청이 2005년 11월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 신자가 가장 많은 종교는 불교다. 모두 1072만명으로 전체인구의 23%에 달한다. 불심(佛心)이 곧 천심(天心)이 될 수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선 주자들이 산사로 가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주간동아 2007.04.03 579호 (p44~45)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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