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9

2007.04.03

장애인·임산부라서 퇴출?

서울시 대상자 3% 선정 졸속, 여론 지지 개혁 명분에 상처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7-03-30 10: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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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임산부라서 퇴출?
    직무능력이 떨어지고 성실하지 못한 공무원을 퇴출시키기 위해 시작된 서울시의 ‘3% 퇴출 제도’가 후보 선정 과정에 문제점을 드러내 논란이 예상된다. ‘주간동아’가 서울시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취재한 바에 따르면, 퇴출 대상 공무원 3% 안에는 장애인(손가락 절단, 실명)과 임산부, 고령자뿐 아니라 임용된 지 6개월밖에 안 된 신입까지 포함돼 있었다.

    서울시는 애초 3%의 유형을 ‘무사안일하고 게으르며 조직 화합을 해치는 이’로 규정했다. 지각이 잦고, 일과 시간에 말없이 사라지거나 대낮에 술을 마신 채 행패를 부리며, 시민들에게 오만불손한 공무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밝힌 것. 그러나 퇴출 대상에 장애인, 임산부까지 포함된 것은 인권침해 소지가 있을 뿐 아니라, 그만큼 선정 과정이 졸속이어서 ‘개혁’ 명분이 퇴색할 수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3%(240여 명) 안에는 각 부서에서 의무 비율을 채워야 하는 탓에 상대적으로 ‘능력 있는’ 사람도 포함돼 있다. 서울시는 이들이 1, 2차 구제 과정을 통해 일부 구제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퇴출 후보 명단’에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불명예와 수치감으로 깊은 상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에서는 퇴출 대상자들의 명예를 존중하기 위해 명단을 비밀리에 작성했다. 그러나 연고주의가 강한 공무원 조직 특성상 대상자 명단은 내부에 금세 퍼져나갔다.

    명단에 이름이 올라간 사람 가운데는 정년을 두 달 남긴 자신이 퇴출 대상자 명단에 오른 것에 반발해 사무실 의자를 집어던지고 소란을 피운 이도 있었다. 일부는 노조에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퇴출 대상에 오른 수도사업소의 한 직원은 “3년 전에 싸움에 휘말려 견책을 받은 뒤 그 과실을 만회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평가도 좋았다. 그런데도 퇴출 대상이 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며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



    “어떤 부서의 경우 퇴출돼야 할 사람이 3%를 넘을 수도 있고 한 명도 없을 수도 있는데, 3%라는 일률적인 잣대가 문제입니다. 3%를 판단하는 객관적인 기준도 없고요. 특히 대민 접촉이 거의 없는 상수도, 전기통신, 기계 등 기능직 영역은 누구나 비슷하기 때문에 무능력과 불성실함의 잣대로 퇴출자를 가려내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서울시공무원노조 임승룡 위원장)

    장애인·임산부라서 퇴출?
    일률적 잣대, 객관적인 기준도 없어

    서울시 관계자도 선정 과정에 일부 잘못이 있었음을 시인했지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강조했다.

    “3%를 정한 것은 고육지책이었습니다. 부서장들이 무능력하고 불성실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지만 명단을 적어내라고 하면 온정주의 때문에 어려워합니다. 그들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비율을 정한 것입니다.”(서울시 한국영 인사과장)

    서울시 공무원은 자치구를 제외하고도 38개 실·국 소속 직원이 1만400여 명에 이른다. 이번 3% 퇴출 제도는 이들에게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이 제도를 통해 공무원들의 ‘줄서기’가 가속화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평가를 맡은 해당 부서장에 대한 충성도 경쟁이 불을 보듯 뻔하고, 경직된 관료문화가 다시 싹틀 수밖에 없다는 것.

    “시장이 창의시정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직원들을 독려하고 있지만, 3% 퇴출제 같은 급조된 방식 때문에 오히려 더 머리가 굳어지고 있습니다. 무서워 죽겠는데, 무슨 창의력이 나오겠습니까. 이렇게 억지로 쥐어짜는 방식으로 과연 창의적인 시정이 이뤄질까요?”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에서 만난 한 공무원은 3% 퇴출제 시행 이후 시청 공무원 사회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그만큼 이번 제도의 충격파는 컸다. 다른 공무원은 “사무실에 웃음이 없어졌다”면서 “어제까지만 해도 서울시 공무원이라는 게 자랑스러웠는데, 지금은 원망스럽다”고 하소연했다.

    이들의 위기감은 생각보다 깊었다. 3월19일 저녁 서울시청 뒤편 광장에선 2000여 명이 참가해 ‘3% 퇴출제 취소’를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가졌다. 일방적인 요구만 할 경우 ‘철밥통 지키기’로 비칠 수 있음을 우려한 탓인지, 이들은 자정 결의까지 다졌다. 임승룡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앞으로 국민에게 비친 공무원의 부정적 이미지를 없애겠다”고 강조했다.

    퇴출제가 알려진 뒤 수십 명의 공무원이 서울시공무원노조에 새로 가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부도로사업소의 경우 10여 명이 노조에 추가로 가입했다. 힘을 모아 서울시의 3% 퇴출 방침에 대응하겠다는 의도다.

    서울시의 3개 공무원노조 가운데 최대 단체인 서울시공무원노조뿐 아니라 전국공무원노조(위원장 권승복·이하 전공노)도 나섰다. 전공노 서울시 지부는 서울시의 ‘3% 퇴출 조치’가 후보자들에게 모멸감을 주는 반인권적 제도라면서 인권위원회에 진정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또 퇴출자 가운데 불이익 처분을 받은 사례를 모아 행정소송도 제기할 예정이다. 김경용 지부장은 “근무 성적이 불량하고 태만한 공무원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직위해제 및 직권면직을 할 수 있는데도 이를 활용하지 않고 포퓰리즘적 태도로 인사를 단행하는 것은 시장의 직권 남용이다”라고 지적했다.

    외부 단체의 지원도 잇따르고 있다. 전공노 서울본부와 대구경북본부, 경남본부 등은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적 의도에 의한 공무원 퇴출제도 도입을 반대한다”면서 퇴출제 시행 중단을 요구했다.

    서울시의 퇴출제도는 오세훈 시장 취임 뒤 만든 ‘신인사 시스템’에 따른 것이다. 공직의 경쟁력을 유도해 조직의 성과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이 시스템에는 객관적 인사, 인센티브제, 후생복지 강화 등 ‘포지티브’ 원칙과 퇴출제인 ‘네거티브’ 원칙이 있다.

    3월 초 전격적인 퇴출제를 단행하게 된 배경에 대해 오 시장은 내부 통신망을 통해 “당장의 가시적인 한두 가지 성과보다는 우리의 일하는 방식, 물고기 잡는 방식을 지금 이 순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세계 유수의 도시들과 경쟁해야 하는 우리에게 더 이상의 미래가 없다는 절박한 판단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퇴출 인력 예상외로 적을 수도

    오 시장의 의지는 강력하다. 퇴출자 선정을 위해 투표 방식을 택했던 도로사업소장 2명을 직위해제하고, 신인사제도에 불성실하게 대응하는 간부는 문책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서울시는 3월19일 퇴출 대상자와 전출입 대상자가 섞여 있는 명단을 38개 각 실·국·본부·사업소에 전달했다. 이후 1차 구제자 명단 제출(21일), 2차 구제자 명단 제출(25일), 마지막 소명기회 제공(26일), 감사관 진단(27~29일), 행정부시장과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9명의 인사위원회 등을 거쳐 최종적으로 확정된 퇴출 대상자는 현장시정추진단으로 발령을 낼 계획이다.

    처음 알려진 것과 달리 퇴출 대상자가 몇 단계를 거치면서 추려지고, 막상 현장시정추진단에 배치될 인력은 예상외로 적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한국영 인사과장도 “추진단에 배치되는 최종 인력은 훨씬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6개월 동안 운영되는 현장시정추진단은 주차단속, 청소업무, 체납세 징수 등의 대민 지원 업무를 하게 된다. 여기서도 구제되지 못하면 서울시를 영영 떠나야 한다. 그러나 서울시는 현재 이런 업무를 하고 있는 이들의 명예를 실추했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서울시와는 반대로 청결, 질서유지, 안전업무 등에 우수한 인력을 배치해온 유화선 파주시장은 “청소업무, 단속업무를 우습게 보는 풍조가 생길까 걱정된다. 그런 업무를 무능, 나태 공무원에게 맡긴다는 발상이 우습다. 열정이 없는 이들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여론은 무능력하고 불성실한 공무원 퇴출 제도를 반기고 있다. 리서치플러스가 최근 전국의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 중 68%가 서울시의 ‘3% 퇴출’ 방침에 찬성했다. 특히 서울시민의 찬성률은 77.9%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서울 평창동 한모(39) 씨는 “동사무소와 은행이 가까운 곳에 있어 두 곳을 번갈아 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마다 두 곳 분위기가 극단적으로 다르다는 데 놀라곤 한다. 은행직원들은 황송할 정도로 친절하고, 동사무소 직원들은 너무 뻣뻣하다”고 말했다.

    공무원 내부에서도 무능력하고 불성실한 동료에 대해 한목소리로 성토한다. 서울시 공무원 정모(37) 씨는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암적 존재가 있다. 의욕도 없고, 일도 하지 않으며, 기계적으로 출퇴근만 하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때문에 감사에 걸릴 염려도 없고, 더 오래 살아남아 ‘공무원 목숨은 고래 힘줄’이라는 말을 재확인케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한 공무원 클럽에는 “근무시간 중 도박하러 가시고, 술 드시러 다니시고, 투잡스(two jobs)에 농사까지 지으시는 분도 계시다”는, 나태한 공무원 사회를 꼬집는 글도 올라와 있다.

    울산시가 올해 1월 무능력하거나 태만한 5, 6급 공무원 4명을 골라 단순노무 작업에 투입한 것을 시작으로 각 지방자치단체가 공무원 사회 개혁을 위한 퇴출제도를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무능·불성실 공무원 퇴출엔 한목소리

    경기 부천시는 지난해 근무 태만과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명된 공무원 4명 중 1명을 해임하고 3명의 보직을 박탈했다고 3월18일 밝혔다. 성남시도 5급 이하 전 직원을 대상으로 퇴출 공무원을 선정, 불법 주정차 단속 등 현장근무에 배치할 계획이다. 파주시는 2005년부터 ‘무능 공무원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11명의 명예퇴직을 유도했으며, 올해 1월 인사에서도 5급 직원 1명과 6급 직원 3명에 대해 무보직 발령을 냈다.

    지자체의 무능 공무원 퇴출제도가 사회적 이슈가 되자 중앙정부의 도입 여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중앙인사위 한 관계자는 “할당식 퇴출제도가 아니라 더 엄격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공무원 퇴출을 유도하는 방식을 조만간 도입할 예정이다. 각 기관의 인사평가 결과를 공개하는 등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라고 밝혔다.

    서울시는 1년에 두 번씩 무능 공무원을 퇴출시키겠다고 밝혔다. 6개월 뒤인 9월에 또 한 차례 퇴출이 이뤄질 것이라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이 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토론과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고려대 경영학과 이민규 교수는 “비대한 공무원 사회의 구조조정이 절실하다고 해도 광범위하게 의견을 묻고 합리적인 절차를 밟았어야 한다.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은 지금의 방식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중앙인사위원회 인사정책자문회의 자문위원으로 있는 청주대 정정목 교수(행정학)도 “3%를 일방적으로 할당한 것은 민주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무지막지한 방식이다. 절박할수록 더 합리적이고 납득할 수 있는 방식을 택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당사자들과의 충분한 토론과 의견 수렴이 중요한 이유는 해외 사례를 봐도 알 수 있다. 미국은 1993년 2월 클린턴 행정부에서 공무원 개혁을 시작해 98년까지 연방공무원 35만명을 줄이며 공무원 조직에 민간 경영기법을 대거 도입했다. 그러나 급속하게 진행하느라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반면 영국은 79년부터 장기적인 대책을 세우고 지속적인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공무원 개혁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3% 퇴출’이라는 서울시의 파격적인 조치를 지켜보는 시민들의 바람은 의외로 단순하다. 이번 일을 통해 공무원들도 더욱 긴장감을 갖고 시민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길 바랄 뿐이다. 棟 3월13일 서울시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이 서울시청 별관 앞에서 퇴출 결의대회를 갖고

    ‘현장시정추진단’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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