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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이 10년 같은 공포의 비상착륙

랜딩기어 고장 등 응급상황 때 어떻게? … 조종사 위기 대응 능력과 승객 협조가 관건

  •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10분이 10년 같은 공포의 비상착륙

20초간의 아찔한 비상착륙 드라마에 일본 열도 전체가 숨을 죽였다.

3월13일 오전, 일본 고치(高知) 공항에서 일어난 전일본공수(ANA) 여객기 1603편의 동체 착륙 장면을 TV 생중계로 지켜본 일본 국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승객과 승무원 등 60명을 태운 이 여객기는 앞바퀴가 내려오지 않아 2시간가량 상공을 돌면서 연료를 소비한 뒤 뒷바퀴만 내린 채 활주로에 무사히 착륙했던 것. 이 여객기는 착륙과 동시에 앞부분이 지면에 부딪혔고 그 마찰로 불꽃이 일었다. 다행히 수초 후 속도가 떨어져 여객기가 멈춰 설 수 있었다. 조종사의 노련한 상황 대처와 지상 근무자들의 협조로 인명 피해는 없었다.

여객기가 성공적으로 안착한 순간, 기내 승객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일본의 비행 전문가 소이치 카지는 “거의 완벽한 비상착륙이었다. 조종사는 자신이 훈련받은 대로 매우 침착하게 대응했다”고 평가했다. 무사 착륙을 이끌어낸 이마자토 히토시(36) 기장은 금세 일본 사회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렇다면 한국의 여객기는 어떨까. 지난해 11월 한성항공 여객기가 제주공항 활주로에 착륙하던 중 앞바퀴 로스기어(lose gear·타이어를 장착하는 지지대)가 부러지면서 승객 6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한성항공 측은 “착륙하는 시점에 갑자기 돌풍이 불어 승객의 안전을 위해 앞바퀴부터 착륙하는 ‘하드랜딩’을 시도하다 앞바퀴에 무리가 가서 파손된 것 같다”고 입장을 밝혔다. 현재 건설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급상승·급강하하면 랜딩기어 나올 수도



2월1일에는 제주항공 여객기가 김포공항에서 뒷바퀴 일부가 빠지는 바람에 활주로에 멈춰 섰다. 저가항공사 비행기의 잇단 비상착륙은 안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주요 항공사 관계자들은 “과거에 비해 동체 착륙 건수는 많이 줄었다”면서 “비상시 조종사와 승무원이 매뉴얼대로 움직이고, 승객이 승무원의 안내를 잘 따른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대한항공, 아시아나 항공 등 주요 항공사의 조종사들은 비행 시뮬레이션 센터에서 매년 2회씩 비상 상황에 대비한 훈련을 받는다. 실제 항공기와 똑같은 항공기 시뮬레이터에서 가상 상황을 경험해보는 것.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위기 상황에 맞닥뜨리는 조종사는 그리 많지 않다고.

그렇다면 실제 비행기의 랜딩기어(landinggear·착륙장치)가 고장날 경우 조종사들은 어떻게 대처할까. 보잉 777기를 8년간 운항한 최모 기장은 “기종마다 대처법은 조금 다르지만, 대부분 착륙 도중 랜딩기어에서 문제가 발견되면 일단 다시 상공으로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비행기의 조정간을 당겨 급상승 또는 급강하하면 중력에 의해 랜딩기어가 나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동(手動) 조작’이 실패할 경우 조종사는 동체 착륙을 준비한다.

최 기장은 “동체 착륙을 하려면 최소한의 연료는 남겨두고 나머지는 바다에 버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착륙 시 동체와 지면이 닿으면서 일어날 수 있는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또한 앞쪽과 뒤쪽 중 어느 쪽 랜딩기어에 문제가 생겼느냐에 따라 조종사의 대처법이 다시 달라진다. “무게중심과 가까운 뒤쪽 랜딩기어에 이상이 생기면 착륙이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 최 기장의 설명이다.

“이번 일본 여객기의 경우처럼 앞쪽 랜딩기어가 나오지 않을 땐, 비행기 앞부분이 떠 있도록 조정간을 당기고 최대한 속도를 낮춰 뒤쪽 랜딩기어로 달린다. 비행기 앞부분이 땅에 닿을 땐 활주로의 중심선에 정확히 일치되도록 한다. 항공기가 정지할 땐 화재 위험이 있으므로 엔진을 다 끄고, 공항 근무자들이 비행기에 소화기를 뿌리도록 준비시킨다. 이후 승객을 안전하게 탈출시키면 모든 임무가 끝난다. 뒤쪽 랜딩기어가 고장난 경우엔 앞쪽 랜딩기어도 내리지 않은 채 착륙을 시도해야 한다.”

조종사는 특히 뒤쪽 랜딩기어 중 한쪽만 작동될 경우 착륙할 때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지면과의 마찰 면적이 달라져 비행기가 마찰이 많은 쪽으로 돌기 때문. 이모(58) 기장은 “80년대 보잉 727기를 운항하던 중 비행기의 오른쪽 뒤 랜딩기어가 나오지 않아 식은땀을 흘린 경험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기체 결함이 발생하면, 조종사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지닌 지식을 200% 발휘하게 된다. 자신에게 모든 승객과 승무원의 생명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당시 네 번 정도 급상승과 급강하를 반복하다보니 다행히 바퀴가 나왔다.”

비상시 조종사가 비행기와 고독한 싸움을 벌인다면, 승무원들은 승객을 일사불란하게 안내하는 중책을 맡는다. 그 때문에 신입 승무원들은 항공사에서 안전교육만 거의 한 달 정도 받는다.

승객들도 안내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10년차 승무원으로 현재 항공사 안전표준팀에 근무하는 허모 과장은 “위험 상황에서 승무원이 당당해야 승객이 믿고 따라온다”고 강조했다.

“비행기의 랜딩기어나 엔진이 고장나 비상착륙을 할 경우, 기장은 사무장을 불러 어떤 상황인지를 설명한다. 그 후 사무장은 승무원들을 각자의 위치에 스탠바이시키고, 승객에게 기내방송으로 비행기의 상황을 알린다. 이때 승무원은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동요하는 승객을 안심시켜야 한다. 승객들의 식기를 빠르게 수거하고, 수화물 짐칸이 닫혀 있는지도 확인한다. 승객에게 좌석벨트를 빨리 푸는 법과 항공기가 최초로 땅에 부딪힐 때 몸을 보호하는 자세도 설명한다. 손을 이마에 댄 채 머리를 숙이고 몸을 낮추는 것이 안전한 자세다. 승무원은 승객의 자리에 따라 탈출구가 어디인지 정해주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위치에서 승객의 탈출을 돕는다.”

평상시 존댓말로 깍듯이 승객을 대하는 승무원들도 위기 상황에서는 승객에게 반말로 ‘샤우팅’한다. “충격 방지 자세 취해” “벨트 풀고 나와” 식으로 크고 단호하게 말해야 승객들도 신속하게 승무원의 지시를 따르기 때문이다.

기체 결함으로 인한 비상착륙의 위험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하지만 똑같은 위험 상황에서도 조종사, 승무원, 승객이 얼마나 혼연일체가 되어 현명하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 허 과장은 “승객이 준비돼 있을 때 항공사의 질 좋은 안전 서비스가 더 빛이 난다”고 조언한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바퀴 고장등으로 인한 동체 착륙이 수차례 있었다. 이 사고로 인명피해가 나기도 했고, 모든 승객이 무사히 대피한 적도 있다. 과거에는 사고가 났을 때 한국인 승객 중 일부가 ‘짐을 챙겨 나가겠다’며 고집을 피우거나 2차 폭발 위험이 있는데도 항공기 근처를 떠나지 않고 탈출 장면을 카메라로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는 안전불감증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비상시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승객의 협조가 중요하다.”

항공안전본부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 비해 한국의 항공기 시설, 장비, 인력, 이용객은 모두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제주항공이 최근 여객기 결함과 관련해 건설교통부로부터 긴급 안전 권고를 받긴 했지만, 저가항공사들의 조종사들도 대부분 1만~2만km 이상을 운항한 노련한 경력자라는 것. 그는 “한국의 ‘이마자토 히토시 기장’도 얼마든지 탄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주간동아 2007.03.27 578호 (p54~55)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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