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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리마인드 웨딩 붐

세월 돌린 면사포 신혼 단꿈 ‘앙코르’

‘결혼 초심으로 돌아가자’ 리마인드 웨딩 새 풍속도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세월 돌린 면사포 신혼 단꿈 ‘앙코르’

세월 돌린 면사포 신혼 단꿈 ‘앙코르’

지난해 11월 결혼식을 다시 올린 조성완 교수 부부의 웨딩 사진.

“아,그거 되게 재미있더구먼. 화장도 처음 해봤어. 좀 어벙벙했는데, (사진을) 계속 찍다 보니 좋아지더라고. 3시간이나 걸려 힘든 데다 애들 앞에서 낯간지러운 포즈도 취해야 해서 쑥스럽긴 했지만…. 우리 마누라? 친척들에게 사진 보여주면서 자랑하고 난리났어. 어쨌든 나이 먹고 한번 해볼 만해. 하하.”

지난 1월, 32년을 부대끼며 살아온 아내와 서울 강남의 한 웨딩 스튜디오에서 때 아닌 웨딩사진을 촬영한 정천영(61·경기도 성남시 태평1동) 씨. 그는 요즘 안방 벽에 걸어놓은 그 사진을 하루에도 몇 번씩 바라보며 감회에 젖곤 한다.

아내 나이 57세. 자신도 평생 종사한 가내공업 일에서 은퇴한 처지. 1남2녀의 자녀들도 모두 장성해 출가한 만큼 일상이 단조로웠건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번에 찍은 사진 옆에 옛날 흑백 결혼사진을 걸어놓았어. 그 둘을 번갈아보노라면 이런 생각이 들어. ‘참 열심히 살아왔구나.’ 마누라가 예쁘긴 예뻤지. 기회가 닿는다면 식(式)도 한 번 더 올릴까 해.”

미국과 스웨덴에 이어 세계 3위인 대한민국의 이혼율, 늘어만 가는 황혼이혼,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세언(世諺)마저 자연스러워진 세상. 그 한 언저리에서 ‘리마인드 웨딩’이 한껏 기지개를 켜고 있다.



결혼식 다시 치르거나 기념사진 촬영 급속 확산

리마인드(remind)는 ‘상기시키다’라는 뜻. 그렇다면 웨딩(wedding·결혼식)을 되새긴다? 한 번도 아니고 웬 두 번의 결혼식? 의구심에 이렇게 물을 사람도 없지 않겠지만, ‘다시 태어나도 당신뿐’을 외치는 부부들은 의외로 적지 않다.

리마인드 웨딩은 ‘리웨딩(rewedding)’ ‘앙코르 웨딩’ 등과 뒤섞여 쓰이다가 최근 정착된 용어. 국내 결혼예식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다 해도 학문적으로는 아직 자리잡지 못해 이 분야의 학술연구 보고서는 전무한 실정이다. 따라서 굳이 그 개념을 정의하면, 리마인드 웨딩은 최소한 10년 이상 된 결혼생활을 기념해 예복을 차려입고 실제로 결혼식을 한 번 더 치르거나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새로운 풍속도를 일컫는다고 할 수 있다. 결혼 50주년이나 25주년 같은 특정 주기에 연회 위주로 열리는 금혼식·은혼식과는 다른 것이다.

세월 돌린 면사포 신혼 단꿈 ‘앙코르’

서영석 씨 부부(왼쪽)과 정천영 씨 부부의 리마인드 웨딩 사진.

국내 리마인드 웨딩 문화는 2000년대 들어 몇몇 연예인의 해외 채플웨딩이나 웨딩사진 촬영 등 ‘앞선 취향’이 언론에 소개되면서 일반에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네모공주’ 박경림이 부모님의 결혼 40주년을 기념해 선물한 리마인드 웨딩, 박철·옥소리 커플의 결혼 10주년 웨딩사진 촬영, 탤런트 최명길·김한길 의원 부부의 결혼 10주년 리마인드 웨딩, 최수종·하희라 커플의 괌 현지 채플웨딩, 이영하·선우은숙 부부의 은혼식을 대신한 리마인드 웨딩 등이 그런 예다.

웨딩플래너 300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한 한국웨딩플래너협회에 따르면, 리마인드 웨딩에 대한 중·노년층 부부들의 관심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한국웨딩플래너협회 황진령(31) 수석팀장은 “지난해 경우 웨딩플래너 1명당 평균 5건가량의 리마인드 웨딩 상담을 받았는데, 올해엔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주로 결혼 30주년 정도 된 50대 후반과 60대 부부들의 문의가 많은 편”이라고 밝힌다.

국내에서 주를 이루는 리마인드 웨딩은 웨딩 스튜디오에서 부부가 머리 손질과 메이크업을 받고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로 갈아입은 뒤 자녀들을 동반해 웨딩 및 가족 사진을 찍는 형태. 2004년 신설된 건양대(충남 논산) 예식산업학과 김인옥(42) 교수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친구들의 들러리, 자녀들의 드레스와 턱시도 복장은 외국의 웨딩문화에서 자주 접하는 그림인데, 그들의 경우 파티를 통해 결혼기념일을 즐기는 데 초점을 둔다. 사진도 스냅 형태로 만족한다.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격식을 따지면서 유난히 기록을 남기고 싶어한다. 이것이 국내 리마인드 웨딩에서 앨범·액자 제작이 대세인 이유다.”

리마인드 웨딩의 범위를 웨딩사진 촬영과 앨범·액자 제작, 가족 식사 정도로만 잡으면 보통 100만원 안에서 해결된다. 하지만 회갑연 등을 대신한 파티를 열면서 식을 한 번 더 올리려면 비용은 일반적으로 200만원을 훌쩍 넘는다.

리마인드 웨딩의 동기는 다채롭다. 과거 형편이 어려워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거나 결혼생활 중 적잖은 갈등과 고통을 이겨낸 경우, 오랜 결혼생활에서 오는 권태감을 극복하기 위한 전환의 계기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통상 50대 이상 부부인 경우 아직 그들 스스로 리마인드 웨딩을 주도하는 사례는 드물다. 대부분 효도 차원에서 자녀들, 특히 딸들의 권유가 크게 작용한다. 실제로 인터넷엔 부모의 재결혼을 축하해주려는 자녀들의 문의가 잇따른다.

세월 돌린 면사포 신혼 단꿈 ‘앙코르’
‘서울 강서지역의 리마인드 웨딩사진 촬영하는 곳 추천해주세요’ ‘부모님 리마인드 웨딩 시켜드리고 싶은데, 리마인드 웨딩이 어떤 건가요?’….

서영석(54·경북 의성군 옥산면 전흥리) 씨도 그런 경우다. 과수업을 하는 그는 한 살 아래인 아내와 결혼 30주년을 한 해 앞둔 지난해 11월 하순, 서울에서 리마인드 웨딩 촬영을 했다. 아들과 며느리의 강력한 추천 때문이었다.

“30년 전 장가들 땐 뭐가 뭔지도 모르고 결혼이란 걸 덥석 했는데, 이번엔 옛날 처녀총각 때의 추억을 되새기면서 했어요. 턱시도와 웨딩드레스 입고 찍은 사진을 내 휴대전화 액정화면에 띄워놓았는데, 친구들이 ‘멋있다’고 그럽디다. 26가구가 사는 우리 동네에서 이렇게 한 건 우리 부부가 처음이오.”(서씨)

리마인드 웨딩사진 촬영에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부모님께 회춘 성형수술까지 선물하는 사례도 있다. 박현성형외과(서울)의 강수정(36) 실장은 2000년 결혼 30주년을 맞은 부모님의 리마인드 웨딩을 마련하면서 어머니에게 눈주름 제거 시술을 해드렸다.

“처음엔 어머니께서 웨딩사진을 찍지 않겠다며 화를 내셨어요. ‘하필 쭈글쭈글할 때 그런 걸 해야 하냐’고. 그래서 주름 제거부터 해드렸죠. 덕수궁에서 임금과 왕비 복장으로 야외촬영도 하셨어요. 신기해하는 일본 관광객들과 기념사진까지 찍고. ‘덕분에 호강했다’는 칭찬을 들었어요. 저도 올해 남편이랑 리마인드 웨딩을 할까 해요. 더 나이 들기 전에요.”

7년 전에 리마인드 웨딩을, 그것도 성형수술까지 곁들여 선물했으니 강 실장은 리마인드 웨딩 문화의 ‘선각자’인 셈이다.

왜 리마인드 웨딩일까.

지난해 11월, 결혼 10년째를 맞아 대전 엑스포공원에서 실제로 식을 다시 올린 뒤 아이들을 동반해 경주로 ‘앙코르 신혼여행’까지 다녀온 건양대 제약공학과 조성완(39) 교수의 소감.

“결혼생활 10년이면 권태기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는데, 양가 부모님과 제자들을 초대한 가운데 식을 다시 올리며 새롭게 마음을 다지니 평소 연구활동 때문에 소홀히 대했던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정과 사랑이 새록새록 솟아났어요. 초등학교 3학년인 딸과 네 살배기 아들에게 엄마 아빠가 어떻게 결혼했는지, 자기들이 어떻게 해서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는지 설명해줄 수 있어서 좋았고요. 칠순인 제 부모님도 리마인드 웨딩을 해보고 싶어하시더군요.”

세월 돌린 면사포 신혼 단꿈 ‘앙코르’
그 푸른 날에 대한 회상, 의미 있는 행사

이렇듯 결혼식은 분명 외식이나 쇼핑과는 다른 것이다. 리마인드 웨딩은 일시적 현상에 그칠까, 꾸준히 하나의 문화로 지평을 넓혀갈까.

사실 국내의 리마인드 웨딩 문화는 어떻게 하면 결혼을 의미 있게 기념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을까 하는 소비자들의 욕구와 웨딩업계의 자력갱생을 위한 업그레이드된 결혼기념 이벤트 상품 마케팅의 접점에서 탄생했다는 특징을 지닌다.

SW웨딩컨설팅 김남균 대표는 “현재 리마인드 웨딩 상품은 전체 결혼식 관련 상품 중 5% 정도에 불과할 만큼 시작단계지만, 지난해 쌍춘년을 맞아 리마인드 웨딩으로 재미를 본 웨딩업체들이 적지 않다”며 “자칫 중·노년층 웨딩 전문으로 ‘낙인’찍힐까 표정관리를 하고는 있지만 업체들의 리마인드 웨딩 마케팅은 올해를 분기점으로 가속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SW웨딩컨설팅 역시 신혼 결혼식과 리마인드 웨딩의 시장점유율이 향후 수년 내에 5대 5에까지 이를 것으로 보고 전담팀까지 꾸려놓은 상태다.

남편과 아내 사이. 더없이 친숙하지만 한번 틀어지면 ‘레테의 강’을 건널 수도 있는 이율배반의 관계. 때문에 비록 흘러간 세월을 되돌릴 수는 없다 해도 인생에서 가장 푸르렀던 날을 반추하게 해주는 리마인드 웨딩은 나름의 의미 있는 시도라 할 만하다.

올해로 결혼 13년차인 기자, 아내에게 물었다. “우리도 식 한 번 더 올릴까?”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는 듯한 눈빛으로) 하면 좋지. 야외촬영도 안 했잖아, 우린.” 물어본 기자, 순간 바보 됐다. 순백의 웨딩드레스, 너 참 힘세다! ‘웨딩’보다 ‘리마인드’에 방점을 찍고 싶은데….



주간동아 2007.03.27 578호 (p36~38)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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