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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운찬’의 大望 관심법

치고 빠지기 발언 계속 아직도 계산 중(?) … “준비된 블루칩 vs 기회주의자” 엇갈린 평가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안개 운찬’의 大望 관심법

‘안개 운찬’의 大望 관심법

3월8일 조순 전 부총리의 팔순 기념식에 참석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여기는 학생들이 생활하고 쉬는 곳이다. 절대 들어갈 수 없다.” 서울대 기숙사로 진입하려는 전투경찰 수백 명을 맨 앞에서 막아선 사람은 33세의 새내기 교수 정운찬(서울대 전 총장)이었다.

하지만 그의 울부짖는 목소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전경들은 기숙사에 있던 학생들과 함께 그를 질질 끌고 나왔다. 몇몇 전경은 보란듯이 멱살을 잡고 뺨을 때렸다. 1980년 5월, 서울대 캠퍼스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사건은 학생들에게 ‘정운찬’이란 이름을 각인시켰다. 이후 그의 강의에는 수많은 학생들이 몰렸다. 얼굴이라도 한번 보겠다는 학생도 있었다. 서울대 사회대 80학번인 한 회사원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소문은 파다했다. 당연히 학생들은 용기 있는 행동을 했던 정 교수를 높이 평가하고 존경했다.”

젊은 시절 ‘반골’ … 강의시간엔 수많은 학생 몰려



1986년 정 전 총장이 다시 나섰다. 체육관 대통령선거에 반대하는 4·11 개헌운동을 주도한 것. 그는 직접 교수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서명에 소극적인 교수들을 강한 ‘카리스마’로 설득했다. 그가 정치 스승으로 모신다는 김종인 민주당 의원(당시 민정당 의원)을 만난 것도 이즈음이다.

젊은 시절, 정운찬은 ‘반골’이었다. 군사정권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온화한 표정 뒤에 날선 칼을 숨기고 있었다. 정 전 총장의 외유내강은 어디서 기인할까.

그는 경기고-서울대를 나왔다. 남들은 그를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귀족’ 으로 본다. 그러나 그의 어린 시절은 비참했다. 서울 대학로 부근 판자촌 주민들과 공동으로 쓰는 수돗물을 먹고 살 정도로 궁핍했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생업과 학업을 병행했다. 대학 때 시작한 입주 아르바이트는 4년 내내 이어졌다. 그는 성심을 다했고, 부유층을 중심으로 실력 있는 과외선생이란 소문이 돌았다. 그를 거쳐간 ‘학생’ 중에는 광복 이후 창군 멤버의 한 사람인 고 김익열 장군의 딸도 있었다. 김 장군은 제주 4·3 항쟁 당시 조병옥 박사가 이끄는 경찰과 군대의 양민 학살에 맞서며 제주도민들과의 협상을 끝까지 주장했던 인물.

부인 최선주 씨를 만난 것도 김 장군의 집에서였다. 최씨는 김 장군 막내딸의 친구였다. 과외를 하면

서 한때 김 장군의 큰딸에게 호감을 갖기도 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당시 정 전 총장이 호감을 가진 김 장군의 큰딸은 현재 배영준 USASIA 사장의 부인이다. 배 사장은 영안모자 백성학 간첩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돼 화제가 된 인물이다.

한때 정 전 총장과 배 사장은 김종인 의원을 도우며 친분을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의 고마움을 잊지 못해서일까. 정 전 총장은 최근까지도 명절 때면 김 장군의 집을 찾는다고 한다. 정 전 총장의 온유한 표정 뒤에 숨어 있는 강단에는 이런 척박한 환경을 뚫고 나오면서 체득한 경험들이 녹아 있다.

국민들 진정성에 점점 의문

정 전 총장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대선 출마’를 선언하지 않았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유력 대선주자, 정치권의 ‘블루칩’이다. 그저 선문답만 던졌을 뿐이지만, 그 선문답을 놓고 정치권과 언론은 이리저리 해석하고 살을 붙이며 그를 유력 대선후보로 만들었다. 나쁘게 보면 ‘치고 빠지기’, 사전에 짜여진 시나리오라면 대단한 정치적 내공이라고 할 수 있다. 외곽을 돌며 핵심으로 진입할 기회를 노리는 ‘스텝’은 기성 정치인 뺨칠 정도로 유연하다.

그러나 정 전 총장의 측근으로 불리는 서울대 교수들은 얼마 전부터 입을 닫기 시작했다. 정 전 총장에 대한 크고 작은 공격을 온몸으로 막아서던 이들은 입을 맞춘 듯 “총장님이 아무 결정을 내리지 않은 상태여서 무슨 말도 할 수 없다”고 얘기한다. 금융학회 소속 동료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정치권은 ‘부정하지 않는 모든 것’은 긍정으로 해석한다. 이 논리대로라면 정 전 총장 주변의 의도된 침묵과 묵비권은 출마 선언 임박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런 한편으로 그의 ‘안개 행보’가 부를 역효과를 우려하는 지적도 나온다. 언론도 국민도 그의 ‘진정성’에 의문을 가진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폴컴’ 서대윤 이사의 설명이다.

“지도자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자기 확신, 권력의지가 있어야 한다. 권력의지를 분명히 보여줄 때 조직과 내용이 생긴다는 정치권의 생리를 그는 아직 모르고 있다.”

1998년 재임용에 탈락, 6년 동안 서울대 캠퍼스에 천막을 치고 투쟁했던 미대 김민수 교수의 지적은 이런 측면에서 음미해볼 만하다. 정 전 총장의 재임기간 대부분을 복직투쟁을 하며 정 전 총장과 각을 세워온 그는 정 전 총장을 “준비된 정치인이자 기회주의자”라고 평가한다.

“천막농성까지 벌이는 내게 정 전 총장은 따뜻한 손 한번 내민 적이 없다. 총장 선거 당시 그가 들고 나온 ‘개혁’이라는 화두가 마음에 들어 그의 선거운동을 돕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총장 시절 보여준 모습은 엘리트주의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2005년 대법원 판결이 나자 갑자기 천막을 찾아와 ‘그것 봐요. 내가 잘될 거라고 했잖아’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기가 막혔다. 그때 난 그에게서 기회주의자의 모습을 봤다.”

물론 그에 대한 다른 평가도 많다. 서울대 교무처장을 지낸 통계학과 김우철 교수는 “(정 전 총장은) 겸손하고 정확하며 한번 맺은 인연을 성실하게 지키는 사람, 인내력과 처세술을 가진 사람이며 검소하다”고 설명한다.

술을 좋아하는, 그래서 술과 관련한 많은 에피소드를 가진 정 전 총장은 자신을 ‘중도주의자’라고 평한다. 반면 제자들은 그를 ‘리버럴리스트’로 본다. 이 착시현상 속에 정 전 총장의 진짜 색깔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주간동아 2007.03.27 578호 (p26~27)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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