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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혹시 에이즈? 아 미치겠네”

‘에이즈 포비아’ 상상 초월한 고통 … 엉터리 정보가 불안감 키우는 주범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나도 혹시 에이즈? 아 미치겠네”

“나도 혹시 에이즈? 아 미치겠네”

한 에이즈 포비아 환자가 한국에이즈퇴치연맹 김민동 실장(오른쪽)과 면접 상담을 하고 있다.

10주 전 직업여성과 성관계 중 여성의 팔에 피부병이 있는 걸 봤어요! 몸에는 없기에 ‘에이즈는 아니겠지’ 했는데, 다음 날 자고 일어나니 몸에 이상한 두드러기가 몇 개 보이더군요. 콘돔이 찢어진 건 아니었을까? (중략) 마음의 준비는 대략 해두었지만 아직도 두렵긴 마찬가지네요.”(1월24일, ID ‘포비아3)

“예전 6주 때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허벅지 안쪽의 바늘로 쑤시는 듯한 느낌과 종아리의 뻐근함이 석 달 이상 지속되다가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다시 검사를 받아봐야 할까요?”(1월2일, ID ‘다시 검사’)

건강의료 포털사이트 ‘메드시티’에 올라온 고민의 글들이다. ‘천형(天刑)’ ‘현대 흑사병’ 등으로 불리다 이젠 난치성 만성질환의 하나로 자리매김한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 그런데 에이즈 감염자 못지않게 극심한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 있다. 에이즈가 탄생시킨 새로운 형태의 공포증인 ‘에이즈 포비아(phobia·공포증)’ 환자들이다. 1월29일 시작된 올해 징병검사에서 에이즈 환자들의 입대를 막기 위한 검사가 처음 도입됨에 따라 에이즈 공포증 환자들의 고민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낙인, 가장 큰 두려움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006년 12월 현재 국내 내국인 에이즈 누적 감염자는 4580명. 지난 한 해에만 751명이 새로운 감염자로 드러났다. 매년 10% 안팎의 증가율을 보인다는 게 질병관리본부 측의 분석이다.



에이즈 감염이 반드시 단기간 내에 죽음으로 이어질까? 그렇지는 않다. 외국 전문가들에 따르면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보균자의 평균 생존기간이 24년으로까지 늘어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물론 에이즈 감염자의 혈액, 정액, 질 분비액, 모유 등은 감염력이 높다. 하지만 눈물과 콧물, 침, 땀, 대소변 등은 전염력이 없다. 감염자와의 성관계에서도 콘돔을 사용하면 거의 100% 감염을 막을 수 있다. 또한 감염 후 2∼6주 사이에 독감과 비슷한 고열과 두통, 인후통, 근육통, 구토, 설사, 피부발진 등이 생길 수 있지만 반드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공포증 환자들은 에이즈에 관한 그릇된 지식과 오해로 과도한 공포 반응을 보이거나 여러 가지 정신장애를 나타낸다. 평소 아무 문제도 없던 직장업무나 대인관계를 이어가지 못해 폐인처럼 살아가기도 한다. 때로 그 종착역은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사)한국에이즈퇴치연맹(이하 연맹, www.kaids.or.kr) 김민동(49) 상담실장은 “보건소 직원들에 대한 상담교육 과정에서 에이즈 공포증 때문에 자살한 사람도 있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면서 “외국에도 에이즈 공포증 환자들이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전통적으로 성윤리가 강한 탓에 에이즈 감염에 따른 사회적 낙인에 대한 두려움을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더 크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없지 않다”고 밝힌다.

연맹이 최근 내부 자료로 작성한 ‘2006년도 상담 결과 및 분석’ 문건을 보면, 2006년 한 해 동안 에이즈 관련 상담은 1만3480건. 이 중 전화 상담은 9406건, 인터넷 상담은 3903건, 면접 상담은 171건이다. 이는 2005년에 비해 각기 11.5%, 24.3%, 222.6%나 증가한 수치. 상담을 받은 내담자 10명 중 8명 이상이 남성이며, 연령대별로는 20대, 30대, 40대, 50대 순이다. 전화 상담을 한 내담자의 경우 에이즈 검사를 받은 경험이 있거나 현재 경험 중인 사람이 검사 경험이 없는 이들보다 많았다. 인터넷 상담 내용을 분석해보면 감염 경로와 관련된 내용이 절반 이상인 54%를 차지했고, 에이즈 검사(16%), 증상(14%), 정보(6%)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반면 감염 이후의 관리(1%)나 치료제(0%)에 대한 문의는 거의 없었다.

“나도 혹시 에이즈? 아 미치겠네”
에이즈 공포증에도 몇 가지 유형이 있다. 에이즈 자체에 공포증을 보이는 특정공포증적 포비아, 건강염려증, 편집증, 강박장애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구분은 연맹 측이 내담자들의 특성을 분류한 결과로, 자체 상담원 교육을 위해 만든 것이다. 언론에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먼저 특정공포증적 포비아 환자들의 경우 에이즈라는 특정 질병에 대해 현저하고 지속적인 공포를 경험하게 된다. 감염 위험이 실재하지 않는데도 감염자에 대한 공포와 혐오로 에이즈에 극심한 회피 반응을 보이는 것. 이들은 에이즈에 대한 자신의 두려움이 과도하고 비합리적이며 불필요하다는 사실을 안다. 그럼에도 그러한 두려움으로 일상생활은 물론 직업·사회생활을 심각하게 방해받거나, 스스로 공포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고통받는다(실제 상담 사례 : ‘에이즈 바이러스를 소량이라도 먹었다면 감염 가능성이 있을까요?’ ‘양변기 물을 통해 에이즈에 감염될 수 있나요?’ ‘PC방 키보드를 통해 감염이 되나요?’ 등)

두 번째, 건강염려증적 공포증 환자들은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다고 확신한다. 감염되지 않았는데도 자신의 신체적 증후나 감각을 에이즈 증상으로 믿고 지속적인 두려움과 불안감을 호소하며, 몇 번씩 건강검진과 에이즈 검사, 상담을 반복한다(사례 :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불안한 마음이 계속 드네요. 출근하면 에이즈에 관한 사이트에만 들어가게 되고, 집에서는 휴대전화로 검색하고…’).

면접 상담, 에이즈 검사가 바람직

세 번째 유형인 편집증적 공포증을 보이는 사람들은 에이즈 감염이나 검사의 신뢰도에 대해 극도의 의심과 망상을 보인다. 이들은 왜곡된 자신의 생각을 합리화하고, 자신의 생각과 다르거나 그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잘못이라고 여긴다. 검사 및 상담기관 종사자를 믿지 못한다. 또한 다른 사람이 고의로 자신에게 감염행위를 한 것 같다고 여기거나, 검사자가 자신을 해할 목적으로 검사 결과를 왜곡했거나 심지어 검사도 하지 않은 채 결과를 조작해서 말해줬다는 식의 피해망상을 보인다(사례 : ‘에이즈 환자가 일부러 자신의 피를 음식에 넣었다’ ‘검사자가 에이즈 환자한테 썼던 주삿바늘을 다시 사용해서 채혈했다’ 등).

강박장애적 공포증은 자신의 행동이 비합리적이고 지나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에이즈에 대한 강박적인 사고나 강박행위를 반복하는 것이다. 즉, 자신이 에이즈에 감염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에이즈 관련 기관에 전화·인터넷·면접 상담 등을 반복해 확인함으로써 불안감을 해소하려고 한다. 또한 숫자를 헤아리는 것과 같은 강박행동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나중에는 그러한 행동을 중단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곤 더욱 심각한 불안상태에 빠지기도 한다(사례 : ‘거의 1년간 에이즈 공포증에 시달려요. 공부를 하다가도 문득 내가 에이즈? 막 이런 생각이 자주 납니다’).

위의 네 가지 유형 중 건강염려증과 강박장애적 공포증이 비교적 흔하다. 에이즈 공포증 환자가 느는 추세에 대해 연맹 측은 낮은 연령층의 성접촉 기회 확대, 성매매특별법 시행 후 더욱 음성화된 성매매 패턴, 해외원정 성매매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한다. 김민동 실장은 “공포증 환자의 대다수는 애초부터 정신건강이 취약한 경우여서 막상 에이즈 검사를 받아보면 감염자로 판명되는 사례가 거의 없다”며 “면접 상담을 5회 이상 받으면 공포증을 현저히 극복할 수 있는 데다 상담의 신뢰성을 위해 내담자의 익명성을 철저히 보장하는 만큼 되도록 반복 상담받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서울 탑비뇨기과 강북클리닉의 조규선 원장은 “에이즈 공포증 환자들은 인터넷에 떠도는 엉터리 정보에 의존해 막연한 불안에 시달릴 게 아니라, 에이즈 감염 의심행위가 있은 지 12주 후 병원이나 보건소에서 에이즈 검사를 받은 뒤 그 결과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주간동아 573호 (p38~39)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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