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0

2017.01.04

사회

사상 최고 1조4000억 원 임금체불로 돈 버는 기업들

체불액 30% 벌금 내면 끝…턱없이 부족한 근로감독관, 체불기업 명단 공개도 실효성 의문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6-12-30 16: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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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늘 있는 일도 기삿거리가 돼요?”

    아르바이트 임금체불을 경험한 대학생 고모(25) 씨가 한 말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줄곧 아르바이트를 해온 고씨는 “임금체불을 수도 없이 겪었다. 연장근로수당(연장수당)이나 야간근로수당(야간수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부지기수였고, 기본급조차 제대로 주지 않는 업체도 가끔 있었다”고 밝혔다.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은 비단 고씨만이 아니다. 고용노동부(고용부)에 따르면 2016년 전체 임금체불 추산액은 1조4000억 원에 달한다. 한국 기업 전체에 임금체불이라는 일종의 문화가 만연해 있는 것. 불법임에도 임금체불이 계속되는 이유는 솜방망이 처벌 때문이다. 체불사건은 대부분 벌금형을 받는다. 그런데 벌금 액수가 임금체불액에 비해 턱없이 적어 기업은 불법임에도 임금체불을 계속해올 수 있었다.



    ‘임금체불’은 하나의 관행?

    최근 드러난 임금체불의 대표적 사례는 이랜드파크다. 2016년 12월 19일 고용부가 이랜드파크 계열사를 근로감독한 결과 이랜드파크는 2015년 10월 1일부터 2016년 9월 30일까지 총 4만4360명 근로자에게 임금과 수당 83억7200만 원을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신용평가기관 한국신용평가의 ‘이랜드 그룹분석보고서’를 보면 2013~2015년 3년간 이랜드파크의 영업이익은 총 100억 원. 이랜드파크 근로자의 임금체불액이 기업 영업이익의 83%를 넘는다.

    이랜드파크는 이랜드그룹 내에서 외식업을 운영하는 회사로 자연별곡, 애슐리, 상하오 등 24개 외식 브랜드를 갖고 있다. 고용부는 이랜드 외식업체 15개 매장을 대상으로 2016년 10월 6~13일 1차 조사를 실시해 휴업·연차수당 미지급 등 법 위반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조사를 전체 매장으로 확대해 10월 27일~12월 9일 추가 조사를 실시한 결과 임금체불 사실이 더 밝혀졌다.



    체불 수당을 유형별로 보면 휴업수당 미지급 액수가 31억6900만 원으로 가장 많았다. 근로기준법 제46조에 따르면 약정한 근로시간보다 근로자를 일찍 퇴근시킨 경우 종료시간까지 평균임금의 70% 이상을 휴업수당으로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이랜드파크는 이를 지급하지 않은 것. 연장수당은 23억500만 원, 연차수당은 20억6800만 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임금과 야간수당은 각각 4억2200만 원, 4억800만 원을 체불했다.

    이에 이랜드그룹은 2016년 12월 21일 박형식 이랜드파크 대표 해임을 포함해 임직원 4명에게 징계명령을 내렸다. 해임 조치된 박 대표는 이번 사태에 대한 법적 후속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자리에서 물러난다. 김현수 전무는 상무로 직위 강등됐다. 김연배 그룹감사실장(상무)은 6개월 감봉 조치를 받았다. 이랜드파크 애슐리사업부 실무진 1명도 6개월간 급여가 삭감된다. 이랜드 관계자는 “이랜드그룹은 근로기준법 위반 사안에 책임을 통감하며 관련자를 징계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금체불은 이랜드파크만의 문제가 아니다. 고용부가 2016년 12월 26일 발표한 2016년 근로감독 결과에 따르면 ‘유명 프랜차이즈 감독’ ‘기초 고용질서 감독’ ‘열정페이 감독’ 등 3대 감독에서 4865곳 대상 사업장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2252곳(46.3%)이 임금체불로 적발됐다.

    편의점에서 1년 남짓 일했던 대학생 정모(24·여) 씨도 제대로 수당을 받지 못한 사례다. 정씨는 “근무 준비라는 명목으로 매일 계약시간보다 15~20분가량 먼저 출근하고, 퇴근할 때도 재고 정리와 다음 근무자에게 인수인계를 하느라 30~40분가량 늦게 퇴근했다. 그러나 일하는 동안 한 번도 시간외근무수당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유명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1년간 아르바이트를 했던 대학생 김모(27) 씨도 휴업수당을 받지 못했다. 김씨는 “손님이 많은 주말에는 수당을 제대로 주지도 않은 채 도와달라며 일을 시켰다. 반면, 시간을 다 채워 일하지 않은 날은 칼같이 시급을 깎았다. 비교적 손님이 적은 평일에는 30분 정도 일찍 퇴근하라고 했는데, 이 경우 시급을 절반만 지급했다”고 말했다. 이는 ‘꺾기’라고 부르는 일종의 업계 관행이다. ‘꺾기’란 근무시간 1시간을 4분의 1, 2분의 1로 나눠 회사 사정으로 근로자가 1시간을 채우지 않고 일찍 퇴근하면 휴업수당을 주지 않고 조퇴처리한 후 그만큼 임금을 깎는 것이다.

    실습생과 인턴도 임금체불에 시달리는 것은 마찬기지였다. 고용부는 2016년 12월 26일 하반기(9~12월)에 인턴 다수 고용 사업장,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사업장 등 총 500개 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열정페이 감독’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인턴 등 ‘일 경험 수련생’을 채용한 345개 업체 가운데 59개소(17.1%)에서 437명의 인턴이 사실상 근로를 하고도 최저임금, 연장수당 등 약 1억6700만 원 임금을 지급받지 못한 사실이 드러났다. 게다가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을 채용한 155개 업체 가운데 22개소(14.2%)에서는 근로자인 현장실습생 77명에게 약 800만 원 임금을 체불한 사실이 적발됐다.

    정직원이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한 화장품 회사에서 정직원으로 1년간 일하고 최근 퇴사한 이모(26·여) 씨는 계약서에 적힌 시간에 퇴근한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씨는 “퇴근시간이 돼도 매장에 손님이 많으면 바빠서 퇴근할 수가 없었다. 그 밖에도 물품 발주와 재고 정리를 하다 보면 제때 퇴근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초과근무수당은 신청하지 못했다. 퇴근시간 전까지 일을 끝내지 못한 것이 문제라는 사내 분위기 때문이었다. 함께 일하던 동료나 상사들도 거의 초과근무수당을 신청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임금 안 주고 벌금 내는 게 더 이익

    불법임에도 임금체불이 계속 자행되는 이유는 임금체불의 법적 처벌이 가볍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제109조에 따르면 기업이 근로자에게 거액의 임금을 체불해도 3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 벌금형이 처벌의 전부다. 실제로 2014년 임금체불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업주 가운데 벌금액이 체불액의 30% 이하인 경우가 62.3%나 된다. 반대로 벌금액이 체불액의 절반을 넘긴 사례는 6.4%에 불과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비단 임금체불뿐 아니라, 산업재해 등 부당노동행위는 대부분 법적 처벌 수위가 대기업이 휘청할 정도로 높아진다면 금방 근절될 문제다. 시급 몇 푼만 체불해도 거액의 벌금을 본사가 직접 내도록 한다면 회사 차원에서 근로감독에 나설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금체불 등 기업의 부당노동행위가 고용부에 적발되면 고용부는 근로감독 후 시정조치를 내린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기업은 재판을 거쳐 형사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기업이 형사처벌을 받은 후 체불된 임금을 주지 않고 버티면 그때는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가 직접 민사소송을 해야 한다. 문제는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바쁜 근로자가 100만 원 남짓한 돈 때문에 소송까지 불사하기는 어렵다는 것. 이가현 알바연대알바노조 대학사업팀장은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대부분 임금체불액이 많아야 100만 원 안팎이다. 따라서 민사소송까지 가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근로감독관의 시정조치를 강화해 법정까지 가지 않고도 노동자가 체불된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근로감독관에게 지금 이상의 업무 능력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들이 맡고 있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2014년 기준 고용부 근로감독관은 신고사건 33만6000건과 임금체불 청산 19만 건(11만2870명·1조3195억 원)을 접수 및 처리했다. 이 밖에도 사업장 2만4000곳을 근로감독했으며 총 1만8000건의 인허가 업무를 진행했다. 인당 담당 사업장은 1571곳, 담당 노동자는 1만3727명이나 된다. 실제로 근로감독관의 업무과중은 심각한 수준이다. 2016년 12월 12일에는 서울지역 한 지역지청 근로감독과장을 맡은 50대 공무원이 과로로 쓰러지는 일까지 있었다.

    근로감독관의 업무가 과다한데도 현재 고용부는 근로감독관 정원조차 채우지 못하고 있다. 2016년 11월 기준 근로감독관 현원은 1195명으로 정원(1282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현재 근로감독관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이유는 일부 휴직 인원이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근로감독관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일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원 자체가 적다는 것이다. 정부 측도 근로감독관의 업무가 과다하다는 것을 알고 매년 정원을 조금씩 늘리고 있지만 여전히 손이 모자라다”고 말했다.



    체불기업 명단 공개 실효성은?

    임금체불 상황이 악화일로로 치닫자 정부가 나섰다. 상습적으로 임금을 체불하는 악덕 업체의 명단을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2016년 12월 26일 고용부는 2016년 전반적인 근로감독 결과를 바탕으로 법적 근거를 마련해 임금을 상습적으로 체불하고 최저임금을 수시로 위반하는 기업 명단을 공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고용부는 2017년부터 구조조정 확대 등의 여파로 임금체불이 더욱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 아래 명단 공개의 실효성을 높이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특히 소비자의 신뢰도가 영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프랜차이즈나 대기업의 경우 근로감독을 통해 상습 임금체불 사실이 드러나면 즉시 그 명단을 공개해 ‘소비자의 심판’을 받게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열정페이 상시 제보시스템을 마련해 근로기준법 위반 의심 사업장은 데이터베이스화해 철저히 감독하는 것은 물론, 상습 체불기업의 경우 명단을 공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고용부 대책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체불기업 명단 공개의 법적 기준이 너무 엄격하기 때문. 근로기준법 제43조의 2에 따르면 임금체불기업 공개 대상은 최근 3년 이내 임금체불로 2회 이상 유죄 확정판결을 받고 기준일 이전 1년 이내 체불 총액이 3000만 원 이상인 사업주다. 익명을 요구한 한 노무사는 고용부의 이 같은 대책에 대해 “명단을 공개해도 해당 기업이 금융기관에서 신용도 불이익을 받는 것이 고작이라 제재 효과가 클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명단 공개로 체불기업을 처벌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임금체불 방지 효과를 제대로 보려면 고용부가 공개된 명단을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알리는 방법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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