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귀국이 임박했다. 어느 당과 손을 잡을까. 가능성이 제일 높은 곳은 개혁보수신당이다. 개혁보수신당(가칭)은 원내교섭단체 등록 직후부터 영입에 적극적이다. “반기문 총장은 신당에 합류해 정치적 포부를 펼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주호영 원내대표가 2016년 12월 28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밝힌 말이다. 하지만 반 전 총장 측은 주저하는 모양새다. 45년 지기이자 반사모(반기문을 사랑하는 모임) 회장인 임덕규 월간 디플로머시 회장은 이렇게 전했다. “자기들끼리 (창당)하고 들어와라 하는 데 들어갈 필요가 있나. 어떤 당으로 들어가는 일은 없지 않을까.” 반 전 총장에게 개혁보수신당은 앞으로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전권과 분권 사이
반 전 총장의 유일한 취약점은 정치권에 조직 기반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선택지는 둘 중 하나다. 독자 창당을 하거나 기존 정당에 입당하는 방법이다. 문국현 방식이냐, 이회창 방식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두 가지 방식을 혼합한 절충형도 가능하다. 개혁보수신당에 합류한다면 절충형에 가깝다. 아직 창당 과정에 있는 정당이기 때문이다. 개혁보수신당의 창당 예정일은 2017년 1월 24일이다. 반 전 총장의 귀국 예상 시점은 22일과 25일 사이다. 사전조율을 거치거나 창당 일자를 조정하면 반 전 총장 합류 이후 창당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반 전 총장 합류 시점에 새누리당에서 추가 탈당이 이뤄진다면 그의 입당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정치 이벤트다. 10~20명 추가 탈당으로 개혁보수신당 의석수가 국민의당을 앞지르면 ‘중박’, 35명 이상 탈당해 새누리당까지 앞질러 원내 2당으로 부상하면 ‘대박’이다. 가장 현실성이 높고 반 전 총장으로서도 부담이 적은 방식이지만, 문제는 주도권이다. 창당을 주도하는 것과 얹혀가는 것에는 명백한 차이가 존재한다.
반 전 총장은 주도권을 갖길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개혁보수신당이 반기문당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는 반 전 총장 측근들의 생각이기도 할 것이다. 반 전 총장 측근 중에는 외교관 출신이 많다. 이들은 정치인에게 끌려가는 상황을 두려워할 테다. 반 전 총장도, 그 측근들도 정치인들을 이끌어 대통령선거(대선)를 치르는 그림을 그리고자 할 것이다. 결국 전권을 주길 바라는 셈이다.
개혁보수신당 창당 세력이 이를 수용한다면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긴 하다. 그런데 그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다. 친박(친박근혜) 패권주의 청산을 외치고 탈당한 그들이다. 국민 참여를 보장하는 민주적 정당을 약속한 그들이다. 과거 어느 정당보다 분권적 정당을 선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그 지향과 반 전 총장의 요구가 충돌한다.
전권을 부여받지 못한다면 반 전 총장은 독자 창당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험난한 길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길이기도 하다. 정치 경력이 일천한 그와 측근들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대선 직전까지 번듯한 정당을 창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선에서는 기호가 몇 번이냐도 중요하다. 이는 의석수가 결정한다.
반 전 총장이 영입 제안을 외면할 경우 개혁보수신당도 그에 대한 비난 대열에 가세할 공산이 크다. 야 4당으로부터 모두 비난받는 처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때는 차라리 개혁보수신당에 합류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울러 창당 작업이 지지부진할 경우, 다시 말해 규모 있는 현역의원 확보에 실패할 경우 결국 새누리당 행을 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릴 수도 있다.
물론 새누리당으로부터 추가 탈당을 최대한 유도해, 심지어 친박계 가운데 일부까지 수용해 개혁보수신당이나 국민의당보다 의석수가 많은 신당을 창당할 수도 있다. 이때는 창당 주도권을 가지면서, 다른 정당과 연대에서도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 반 전 총장으로서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물론 그만큼 성사하기 힘든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추대와 경선 사이
반 전 총장은 가능한 한 경선을 치르고 싶지 않을 테다. 추대를 원할 것이다. 그래서 개혁보수신당 입당을 주저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대선주자가 너무 많다. 김무성 전 대표, 유승민 전 원내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남경필 경기도지사,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이다. 기존 여권 대선주자 모두가 몰려든 형국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경선을 원한다. 그것도 아주 공정한 경선이다. 과거 어느 정당보다 민주적인 경선을 치르겠다는 것이 그들의 의지다. 새누리당에서 혁신 차원에서 도입하고자 했지만, 친박계가 무산시킨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도 그들은 제도화할 태세다.각종 여론조사에서 보수 대선주자 가운데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반 전 총장이다. 그런데 오픈프라이머리를 피한다면 비겁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개혁보수신당에 입당하는 순간 치열한 경선을 각오해야 한다. 지지율만 믿고 꿋꿋하게 갈 것인가, 기존 정치권 출신 대선주자들의 조직 동원을 의식해 피해갈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섰다고 봐야 한다.
반 전 총장으로서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다. 이번에 당선되지 않을 경우 또다시 기회는 없다. 원 샷 원 킬! 그로서는 절박할 수밖에 없다. 경선을 피하려 든다면 개혁보수신당 입당 후에도 공격 대상이 될 것이다. 다른 대선주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오히려 입당하지 아니함만 못한 사면초가에 빠질 수 있다. 개혁보수신당이라는 틀이 오히려 족쇄가 되는 순간이다.
그런 점에서 독자 신당이 매력적이긴 하다. 물론 이 경우에도 추대는 부담스럽다. 국민의 주권의식이 크게 높아진 상황에서 전근대적 정당이라는 비난에 봉착할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독재와 권위주의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이 훨씬 높아졌다. 또 다른 박근혜를 원치 않는다는 얘기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했던 방식 그대로 반기문당을 만들어 대선에 임한다면 있던 지지세도 떨어져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경선을 치러야 하지만, 반기문당이 되는 순간 중량급 있는 인물 누구도 경선에 뛰어들지 않을 공산이 크다. 독무대 경선은 치르나 마나다. 흥행은커녕 외면만 초래할 뿐이다. 독자 신당을 창당해 추대로 대선 본선에 나선다면 경선을 치른 다른 정당, 물론 개혁보수신당으로부터도 맹타당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잔매도 자주 맞으면 치명적이다.
연대와 고립 사이
개혁보수신당에 입당하건, 독자 신당을 창당하건, 또는 제3지대에 머물며 대연정을 구상하건 반 전 총장으로서는 조직 면에서 외연 확장이 불가피하다. 모든 정당을 초월한 위치에서 통합을 이뤄내고 싶긴 할 테다. 그런데 이게 망상에 불과하다는 점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모른다면 너무 순진한 것이다. 원내교섭단체만 4개다. 정의당까지 포함하면 5개. 새누리당을 빼더라도 4개 야당을 상대해야 한다.
좋다. 반 전 총장 영입에 대한 관심을 접은 것으로 보이는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은 일단 제외시키기로 한다. 이념적 지향이 너무 다른 정의당도 빼기로 한다. 그래도 2개 정당을 상대로 해야 한다. 본인을 지지하는 세력까지 합치면 3개 정파를 아우르는 통합을 이뤄야 한다. 제3지대에 이미 둥지를 튼 민주당 손학규 전 상임고문도 변수라면 4개 정파로 다시 늘어난다. 과연 그런 정치력이 있을까.
국민에게는 반기문이라는 이름 석 자가 통한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의미가 없다. 그나마 높은 지지율 때문에 모두 러브콜을 보내지만 합류를 거부하는 순간 개혁보수신당도, 국민의당도 돌아설 것이다. 국민의당과 개혁보수신당의 대선주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이 되면 기호 5번이나 6번 후보 또는 무소속일 경우 이보다 더 낮은 번호로 오로지 국민만 바라보며 대선을 치러야 한다. 그것도 정치적으로는 정면승부이긴 하다. 성공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문제지만 말이다.
대선은 세력을 모아가는 과정이다. 각 정당이 경선을 중요시하는 이유도 그것으로 흥행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고립된 상태에서는 흥행을 유발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원맨쇼는 소재가 풍부하지 못할 경우 금방 싫증나기 때문이다. 반 전 총장이 풍부한 국내외적 경험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래도 국민 마음을 사로잡을 소재를 넉넉하게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개헌은 연대 추진에 강력한 촉매제가 될 것이다. 그래서 반 전 총장 역시 최근 낡은 체제를 바꿔야 한다며 개헌 필요성을 강하게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헌에는 개혁보수신당도, 국민의당도 찬성한다. 그런 점에서 독자 신당 창당 뒤에, 또는 제3지대에 둥지를 튼 상태에서 개헌을 매개로 연대에 나선다면 반 전 총장이 주도하는 형세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대선주자 간 선점 경쟁이 치열하겠지만 말이다. 이 상태에서 지지율만 버텨준다면 중도개혁세력 통합 경선으로 곧바로 가는 것도 반 전 총장에게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물론 다른 정당이 고분하게 수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첫째 분권, 둘째 경선, 셋째 연대를 수용할 때 비로소 반 전 총장은 정치권에 안착할 수 있다. 이를 거부한다면 어느 정당, 어느 정파도 그를 환영하지 않을 것이다. 주권 의식이 한결 높아진 국민은 말할 것도 없다. 개혁보수신당 합류도 결국 위 세 가지를 수용해야 순탄할 것이다. 개혁보수신당 창당은 그에게 기회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위 세 가지를 수용하지 못해 합류가 무산된다면 반 전 총장은 독자 창당이라는 험로로 들어서야 한다. 독자 신당 창당 과정에서도 위 세 가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결단을 요구받을 것이다. 독자 창당을 하면 심지어 개혁보수 신당으로부터 공격받을 각오까지 해야 한다고 앞에서 지적했다. 더 많은 정당과 정파를 상대로 경쟁적 협력관계 구축에 나서야 하는 부담이 생기는 것이다. 여전히 모든 것이 반반인 반 전 총장에게 결단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