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임차인이 상가건물(이하 ‘이 사건 상가’) 소유자의 부탁으로 무상임대차 확인서를 허위로 작성해줬다 건물이 경매로 넘어간 뒤 실제로는 유상임차인이라고 주장해도 이는 금반언(禁反言) 또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해 인정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주택 임차인은 주택의 인도와 주민등록을 마친 때(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 상가 임차인은 상가건물의 인도와 사업자등록을 신청한 다음 날부터 제3자에게 대항력이 있어 임차보증금 반환에 동시이행 항변권이 있다. 상가건물 임대차계약서에 대한 확정일자는 상가건물 소재지 관할세무서장으로부터 받는다(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3조, 제4조).
대법원 1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2016년 12월 경매 매수인 A회사가 임차인 B씨를 상대로 낸 ‘이 사건 상가’에 대한 건물명도 청구소송에서 원고(A회사) 패소 판결을 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의정부지방법원에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재판의 사실관계는 이렇다. 부동산공인중개사 B씨는 2006년 12월 ‘이 사건 상가’의 소유자인 C회사로부터 ‘이 사건 상가’를 임차한 후 2009년 5월 보증금 4000만 원에 월차임 20만 원, 임대차 기간 2년으로 임대차 내용을 변경해 다시 임대차계약(이하 ‘이 사건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2009년 9월 30일 파주세무서장으로부터 ‘이 사건 임대차계약서’에 확정일자를 받았다. 같은 날 C회사는 저축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으면서 ‘이 사건 상가’에 관해 근저당권을 설정해줬다.
문제는 B씨가 C회사의 부탁을 받아 저축은행에 ‘이 사건 상가에 무상거주함을 확인하고, 만일 기재 내용과 실제가 상이하여 발생되는 손해에 대하여 전적으로 민형사상 책임을 질 것을 확약한다’는 취지의 문서(이하 ‘무상거주확인서’)를 작성해준 것. 이후 C회사가 대출원리금을 변제하지 못하자 저축은행은 ‘이 사건 상가’에 관해 임의경매신청을 했고, 2012년 6월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은 상가에 대해 임의경매개시결정을 내렸다. 저축은행은 같은 해 10월 B씨의 배당 및 권리 자격을 제외해달라는 취지의 권리(임차인)배제신청서에 ‘무상거주확인서’를 첨부해 경매법원에 제출했다.
경매절차를 거쳐 ‘이 사건 상가’를 매수한 A회사는 2013년 1월 ‘이 사건 상가’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이에 B씨는 임차 보증금을 반환해주면 건물을 비우고 나가겠다고 항변했고, 이에 A회사는 B씨를 상대로 건물명도 소송을 제기한 것. 1심은 원고 A회사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은 B씨가 무상거주확인서를 작성해줬더라도 그 전에 임대차계약이 있었다는 것을 A회사가 미리 알았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 재판부는 ‘이 사건 상가’에 대한 B씨의 대항력을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임차인이 작성한 무상거주확인서에서 비롯된 매수인의 신뢰가 매각절차에 반영됐다고 볼 수 있는 사정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비록 매각물건 명세서 등에 위 건물에 대항력 있는 임대차 관계가 존재한다는 취지로 기재됐다고 하더라도 임차인이 제3자인 매수인의 건물인도청구에 대해 대항력 있는 임대차를 주장해 임차보증금 반환과의 동시이행의 항변을 하는 것은 금반언 또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해 허용될 수 없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상가 임차인으로서 실제로 대항력을 갖췄다 해도 스스로 ‘무상임대차 확인서’를 작성해준 경우 경매절차에 제출된 확인서를 신뢰하고 매수가격을 결정한 매수인을 보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경매인으로 북적이는 서울남부지방법원 경매법정. 최근 대법원은 임차인 스스로 쓴 ‘무상거주확인서’가 경매절차에 제출됐다면 비록 유상임대차계약 관계가 확실하더라도 임차인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