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8

2007.01.09

권위 무너진 방송가 시상식

  • 이동현 스포츠한국 연예부 기자 kulkuri@sportshankook.co.kr

    입력2007-01-08 10: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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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위 무너진 방송가 시상식

    2005년 KBS와 MBC의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차지한 고두심.

    “시상식요? 상을 준다고 하면 가려고요. 안 주면 뭐 하러 가요.”

    모 방송사 연기대상 시상식을 닷새 남겨둔 시점에서 한 연기자가 방송사 로비에서 기자와 만나 한 말이다. 그는 올해 비교적 활발하게 활동해 연기대상 등 여러 부문에 후보자로 올라 있었다. 그러나 경쟁자들이 워낙 쟁쟁한 탓에 수상 여부는 불투명했다. 그는 이날 시상식 관계자들에게 수상 여부를 묻기 위해 방송사를 찾은 것이었다. 한편 이날 연기대상 시상식 관계자들은 시상식 당일 참석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연기자들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 씨, 꼭 참석하셔야 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인데 와서 빛내주셔야죠. …상이요? 아직 결정된 건 없습니다. 현장에서 발표합니다. …상을 안 주면 안 오신다고요? 그거야 와보셔야 알죠. 네, 꼭 받으실 겁니다. 일단 오십시오.”

    전화를 마친 시상식 담당 PD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가까스로 참는 눈치였다. “상을 받고 못 받고가 중요한 게 아니죠. 함께 경쟁한 동료들과 한 해의 마무리를 축하하고 격려하는 자리로 생각해야지, 상 준다는 약속을 안 하면 오지 않겠다니….”

    방송사들이 주최하는 연기대상, 가요대상, 연예대상 등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안 그래도 방송사별로 진행되는 탓에 ‘집안 잔치’로 폄하되고 있는 판국에 연기자들의 참석률도 저조하다. 부문별로 4~5명의 후보자들이 경쟁하지만 실제 참석자는 수상자 외엔 찾아보기 힘들다. 수상 여부가 미리 통보됐음을 짐작케 하는 풍경이다.



    심지어 몇몇 연기자는 상을 준다고 해도 참석하지 않아 시상식 직전에 수상자가 바뀌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한다. 때문에 방송사들은 시상 분야를 최대한 세분화하고 공동 수상을 늘린다. 4명의 후보 중 3명이 공동 수상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나머지 1명은 불참자다. 수상자가 수십명에 이르기에 상의 권위가 세워지긴 사실상 불가능하다. ‘나눠먹기 시상식’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딱 어울리는 상황인 셈이다.

    그러나 변화의 바람도 불고 있다. 몇몇 스타 가수들이 일찌감치 연말 시상식 불참 선언을 하며 방송가에 경종을 울리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공정성과 권위가 없는 상은 받지 않겠다고 선언해 방송가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결국 MBC와 KBS는 반쪽으로 전락할 위기에 빠진 가요대상 시상식을 폐지하고 송년 콘서트 무대로 대체하기로 결정했다. ‘나눠먹기 시상식’ 속에서 가수들 줄 세우기를 해온 기존 관행을 과감히 접고 진정한 축제 무대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가요대상 폐지 여파는 미약하게나마 연기대상과 연예대상에도 미쳤다. 진정한 시상식의 의미를 높이는 취지에서 방송 3사 통합 시상식에 대한 논의가 진행된 것이다. 방송사별 집안 잔치가 아니라 한 해 방송가를 결산하는 자리로 만들어보자는 논의였다. 그러나 의미 있는 논의는 시작 단계에 그쳤다. 방송사별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탓이었다. 공정한 심사에 대한 우려도 앞섰다. 결국 예년 방식이 최선임을 확인해야 했다. 방송사별로 공헌한 연기자에 대한 감사 의미의 시상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방송인들은 올해 시작된 방송 3사 통합 시상식 논의가 “절대 중단돼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시청자들도 한 해 방송된 모든 프로그램이 방송사를 막론하고 경쟁을 펼치기를 기대하고 있다. 미국의 골든글로브 시상식이나 에미상처럼 후보자들이 모두 빽빽이 시상식장을 메운 상황에서 서로를 축하하고 격려하는 가슴 벅찬 장면을 보고 싶어한다. 그러나 아직은 요원해 보인다. 2007년에 다시 논의될 수 있을지도 사실 의문이다. 연말 시상식이 진정한 방송가의 축제가 될 때는 언제쯤일까. 아쉬움을 남긴 채 또 한 해는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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