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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구멍 숭숭’ 정부 전산망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 “얼마냐”

인터넷에 젊은 여성들 신상정보 무작위 유통 … ‘원조교제’ 번호로 둔갑 피해자 속출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 “얼마냐”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  “얼마냐”
인천에 사는 대학생 최미경(21·가명) 씨는 최근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대인(남성) 기피증과 우울증 때문이다. 지하철을 타도, 공공장소에 가도 최씨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두리번거린다. ‘혹시 저 남자가 어제 전화한 사람일까’ ‘저 사람이 나를 쫓아오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과 고민으로 그녀는 학교생활에도 큰 지장을 받고 있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최씨의 불행은 1년여 전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됐다. 처음 그녀에게 전화를 해온 사람은 30대 중반의 남자였다. 그는 다짜고짜 “얼마냐. 어디서 만나면 되냐”고 물었다. 당황한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날 이후 이런 내용의 전화와 문자메시지가 하루에 많게는 10통, 적게는 3~4통씩 계속됐다. 특히 밤늦은 시간에 집중됐다. “우리 연애할까” 하는 그나마 예의를 갖춘(?) 전화가 오는가 하면, 원조교제나 성관계에 관한 노골적인 질문과 함께 자신의 음부 사진을 찍어 e메일로 보내는 남자들도 있었다. 중학생부터 50대 중년 남성까지 연령도 다양했다. 자신에게 이런 전화가 오는 이유를 알지 못했던 최씨는 전화를 해오는 남자들에게 무턱대고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자신에게 이런 전화가 오는 이유를 알게 된 건 올해 여름이었다. 전화를 한 30대 후반의 남자가 “인터넷을 통해 연락처를 알게 됐다. (미경 씨를) 원조교제 하는 여자로 알고 있다”고 말해줬던 것. 최씨가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름은 물론 취미, 생김새까지 자세히 소개

얼마 후 최씨는 이 남자가 말해준 인터넷 사이트에서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비롯한 수백 명 여자들의 이름과 전화번호, 심지어 취미와 생김새가 인터넷을 통해 무작위로 유통되고 있음도 확인했다. 당시 최씨가 발견한 사이트에는 자신이 “20세 대딩, 글래머. 약간 통통하지만 귀여움. 키 168cm. 먹음직함”이라고 소개돼 있었다.



지금까지 최씨에게 연락을 해온 남자는 300명이 넘는다. 그녀는 이들의 연락처를 모두 보관하고 있다. 그녀는 “여러 차례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어요. 하지만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어요. 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서는 전화번호를 바꾸라고 하더군요”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녀는 지금까지 자신에게 전화한 사람들의 연락처와 자신의 개인정보가 유통되는 인터넷 사이트 등의 자료를 모아 법적 고소를 할 생각이다.

대구에 사는 이진숙(33·가명) 씨도 지난 2년간 똑같은 피해를 당했다. 경찰에 수차례에 걸쳐 피해 사례를 신고하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증거가 없으니 증거를 모아서 다시 오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이씨는 지금도 하루 평균 2~3차례의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받고 있다. 이씨는 “결혼을 앞두고 있어요. 남자친구가 저의 과거를 의심하는 통에 싸움도 많이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2년여 전 취업 지원서를 냈던 대기업 L사를 의심하고 있다. 당시 지원서에 적었던 내용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내용과 동일하기 때문. 자신의 주소, 신체 사이즈(특징), 성격 등이 모두 당시의 것과 같았다. 이씨는 “당시 제가 비서직에 응시했기 때문에 신체에 대한 정보, 취미 등 사적인 정보를 많이 적었어요. 그런데 그와 똑같은 내용을 사람들이 전화로 말해와요. 그래서 그 회사에서 정보가 흘러나갔다고 의심하는 거죠”라고 말했다.

문자·전화 폭력으로 사생활 망가져

이씨는 전화가 올 때마다 ‘어디에서 연락처를 보고 전화하는지’를 물어 해당 사이트에 신고한 뒤 단속을 요청한다. 이씨는 “전화번호를 바꾸면 전화가 오지 않아 편하겠지만 내 신상명세는 여전히 인터넷에 돌아다닐 것이다. 그러면 나를 아는 누군가가 또 보게 될 테니 이를 막기 위해 경찰이나 해당 사이트에 신고해 도움을 요청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위와 같은 피해 사례는 어렵지 않게 확인됐다. 현재 인터넷에는 젊은 여성을 포함한 개인들의 신상정보와 연락처 등이 무작위로 유통되고 있다. 취재진이 구글과 P2P(개인 대 개인의 파일 공유 기술 및 행위) 사이트에서 10여 분간 찾아낸 개인정보만 1000여 건에 달했을 정도. 취재진은 이 중 약 200명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내용이 맞는지, 얼마나 피해를 보고 있는지 등을 알아봤다. 통화가 이루어진 경우는 20명 정도였다. 그들을 제외한 번호는 대부분 ‘연결이 불가능’한 경우였고 ‘없는 번호’라는 응답도 30여 개에 달했다. 전화폭력에 못 이겨 번호를 바꾼 경우로 추측할 수 있다. 통화가 이루어진 20여 명 중 인터넷에 올라온 것과 내용(성별, 이름, 주소 등)이 같은 경우는 8명이었다.

이들이 받은 피해는 비슷했다.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이들의 생활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다. 특히 새벽 시간대에 집중되는 전화 때문에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밤 10시 이후로는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도 없다. 취재진이 찾은 이들의 신상정보와 연락처는 구글을 포함한 인터넷 사이트, P2P 사이트 등에 ‘모임리스트목록명단’ ‘여대생나가요전화번호’ ‘원조교제리스트’ 등의 이름으로 유통되고 있었다.

피해를 보는 것은 여자들만이 아니다. 엉뚱한 여자 이름과 함께 전화번호가 무작위로 유통돼 피해를 보는 남성도 많았다. 3~4년 전부터 이런 전화 때문에 피해를 봤다는 42세 한 남성은 “24살의 강쭛쭛이 아니냐는 전화가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온다. 그런 전화가 왜 오는지 (기자가) 말해줘서 오늘 처음 알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나 문자를 받으면서도 이런 연락이 오는 이유를 전혀 몰랐다”며 “어떻게 하면 이런 전화를 안 받을 수 있는지 가르쳐달라”고 사정했다. 그는 사업상 전화번호를 바꿀 수도 없다며 답답해했다.

또 다른 35세 남성은 작고한 아버지가 쓰던 전화번호라 쉽게 바꿀 수도 없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도 자신의 연락처가 ‘여대생’ ‘원조교제’ 등으로 둔갑한 이유를 전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구글 검색에서는 사진이 첨부된 개인의 이력서가 통째로 유통되는 경우도 수십 건 발견됐다. 강원도에 살고 있는 공립유치원 교사 김모(25·여) 씨는 대학 졸업 후 지난해 4월 한 지방자치단체에 원서를 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낯선 사람들에게 전화가 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구글과 P2P 사이트를 검색해본 결과 자신의 이력서가 인터넷 공간에 떠돌아다니는 것을 확인했다. 김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관심 있다. 만나자’며 전화를 하는 사람부터 ‘취직시켜준다’는 사람까지 다양해요. 이게 도대체 있을 수 있는 일인가요”라며 울분을 토했다.



주간동아 2007.01.09 568호 (p36~37)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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