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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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칠 선수 애마 안락사 모면 ‘새 삶’

  • 노주환 스포츠조선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입력2007-01-02 14: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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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칠 선수 애마 안락사 모면 ‘새 삶’
    사람들은 ‘내’가 죽은 줄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주인이 사고로 세상을 떠날 때만 해도 나는 함께 죽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는 아직 한국 땅을 밟지 못했다. 여기는 카타르 도하 인근의 한 목장이다. 12월7일 5년간 나와 함께했던 주인이자 한국 승마대표 김형칠 선수가 세상을 떠났다. 종합마술 크로스컨트리에 나갔다가 장애물 벽에 걸려 주인이 먼저 넘어졌고, 내가 그의 목 위에 떨어졌다. 주인은 작별인사도 못하고 세상과 이별했다. 나는 뒷다리를 다쳤다.

    당시 아시아경기대회가 열린 도하는 물론이고 한국은 이 사건으로 슬픔에 잠겼다. 비록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나의 마음도 쓰라렸다. 뜻하지 않게 ‘살인을 한 `말(馬)’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후 나는 철저하게 격리됐다. 다리를 다쳐 더 이상 경기용 말로서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주장과 함께 안락사 얘기가 돌았다. 하지만 이슬람 국가인 카타르에선 안락사를 할 수 없게 돼 있었다.

    그래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셰이크 알 타니 카타르 승마협회장 소유의 목장에서 치료를 받아 손상된 뒷다리 고관절의 실금이 서서히 붙고 있다. 아직은 조금 절뚝거리지만….



    한국으로 돌아가는 데는 최소 한 달에서 두 달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10시간 이상 비행을 할 수 있을 만큼 건강이 회복돼야 하고, 검역 등 까다로운 통관 절차를 밟아야 한다.

    최근 유족들은 나를 죽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안락사를 시키겠다는 사고 당시의 결정을 뒤집은 것이다. 주인도 바뀔 예정이다. 상속 원칙에 따라 고(故) 김형칠 선수의 부인이 나를 물려받게 된다. 새로운 주인은 나를 경기 용인시의 금안회 마장에서 키우기로 했다. 이제 나는 경기용이 아닌 승마용으로 새 삶을 살게 된다.

    대한승마협회는 대회 도중 다친 나에게도 보상을 해줄 예정이다. 안락사를 피했으므로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살아야 하는데, 새 주인이 나를 돌보는 데 상당한 비용이 들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동물보호주의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대한승마협회로 전화를 걸어 나를 죽이지 말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또 치료해서 살 수 있다면 죽일 것까지는 없다는 누리꾼들의 의견도 게시판에 올랐다. 이런 분들의 도움 덕분에 나는 길게는 10년 더 살게 됐다.

    나는 김형칠 선수와 2002년부터 함께했던 호주산 말 ‘밴더버그 블랙’(애칭 밴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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