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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 쇼윈도는 ‘동물의 왕국’

담비·카라쿨양·물왕도마뱀 등 다양한 모피·가죽 등장 … 직물·니트와 섞은 제품으로 소비자층 확대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올 겨울 쇼윈도는 ‘동물의 왕국’

올 겨울 쇼윈도는 ‘동물의 왕국’

동물의 꼬리 모양을 그대로 살린 러시안 세이블 모피 볼레로.
산고양이의 일종인 링스 모피로 만든 숄.
남성용 코트. 밍크에 폭스 모피로 장식한 디자인.

여우, 카라쿨양, 친칠라, 담비, 다람쥐, 상어, 악어, 이구아나, 물왕도마뱀…. 어느 동물원의 사육장 이름이 아니다. 이번 시즌 옷장 속에 들어가 있는 동물들의 이름이다. 매년 겨울 모피와 가죽은 패션의 주요 소재로 사랑받지만, 올 겨울엔 쇠가죽 점퍼나 밍크코트는 명함을 내밀지 못할 정도로 다양한 모피와 가죽이 거리를 휩쓸고 있다.

올 겨울 쇼윈도는 ‘동물의 왕국’

친칠라와 어민이라는 아주 다른 두 동물의 털을 섞어 과장된 라인을 만들었다.

컬렉션에서 공개된 1억원대 세이블(담비) 모피가 있는가 하면, 동대문시장에서는 3만9800원짜리 토끼털 후드코트가 불티나게 팔린다. 모피가 ‘사모님’의 상징인 건 개그 프로그램에서뿐이다. 10대를 타깃으로 하는 모든 내셔널 브랜드도 모피 제품을 내놓고 있으며 옷뿐 아니라 가방, 부츠, 숄, 브로치까지 거의 모든 아이템에 모피가 사용된다.

1925년 로마의 가죽과 모피 매장에서 시작한 대표적 모피 브랜드 펜디의 경우, 한국시장 규모가 최근 매년 200%씩 성장하고 있다. 모피 전문 브랜드 퓨어리의 이유형 디자인 실장은 “모피 전문 브랜드들은 세이블, 링스 같은 고가 소재를 또 다른 모피와 매치시키거나 직물, 니트와 섞는 등의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여 올해 소비자층을 크게 확대했다. 남성용도 뜻밖에 반응이 좋다”라고 말한다. 모피와 ‘사상적’으로 상극처럼 보였던 트렌치코트에 모피를 결합한 디자인도 패션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다.

‘야생성 과시’ 얼룩얼룩한 무늬 인기

모피는 ‘뚱뚱해 보이고 나이 들어 보인다’는 인식 때문에 짙은 색 모피를 가공해 벨벳만큼 부피감을 줄여온 게 최근까지의 경향이다. 그러나 올해 모피 트렌드는 ‘야생성의 과시’에 맞춰져 있다. 여우나 세이블처럼 길고 부피감이 있는 털과 산고양이의 일종인 링스나 너구리처럼 얼룩덜룩한 모피가 가장 인기 있다. 이는 과장과 과시가 유행한 80년대에 대한 향수이기도 하고, 원시 자연에 대한 동경이기도 하다. 모피가 인간의 동물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에 성적인 은유를 갖는다면, 얌전한 검은색 밍크보다 움직일 때마다 장털이 날리는 링스가 확실히 더 섹시해 보인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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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타조 가죽은 부위별로 아주 다른 특징이 있다. 다리는 부드러운 뱀가죽 같아 구두의 발등 부분에 쓰이며, 등은 특유의 돌출된 무늬 때문에 가방으로 만들어진다. 몸통과 다리가 연결된 부분은 코뿔소 가죽 같다고 한다.

이런 동물들의 모피는 밍크보다 3~4배 비싸다. 그만큼 저가 중국산 밍크코트와 차별화하려는 상위 소비층의 욕망을 만족시킨다. 그래서 최근에는 밍크나 송치(송아지털), 인조섬유에 레오퍼드나 산고양이 무늬를 염색해 둔갑시킨 제품이 하나의 트렌드를 이루고 있다. a.테스토니의 윤희성 씨는 “한국의 경우 외환위기(IMF) 때 생겨난 이른바 명품족들이 중산층 명품 소비자들과 차별화하려는 욕구가 커지기 시작한 2004년 무렵부터 고가의 특별한 동물 모피와 가죽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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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 이구아나, 타조, 상어 가죽에 대한 수요도 급증해 이번 시즌에는 악어가죽을 블루진처럼 염색한 가방이 나왔다. 값비싼 악어가죽을 노동자와 청소년 패션의 상징인 블루진처럼 만든 것이다. 이는 동물보호단체의 공격을 피하려는 사회적 ‘보호색’이 아니라, ‘과시적 소비’의 최대치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이 같은 가죽 아이템들은 모피보다 더 비싸다. 모피는 동물의 몸통을 거의 다 사용하지만, 가죽은 무늬를 맞추기 위해 가장 좋은 부분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악어 한 마리에서 악어 시곗줄이 단 한 개만 나오는 식이다. 특히 한국 소비자들은 희귀한 디자인보다 희귀한 가죽이나 모피를 선호해 불과 한두 해 사이에 옷장이 ‘동물의 왕국’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의 무자비한 사냥 부메랑 될 수도

질 좋은 모피나 특피를 얻는 가장 쉬운 방법은 동물이 다른 동물과 싸우거나 자갈밭에서 구르기 전, 그러니까 어릴 때 죽여서 가죽을 확보하는 것이다. 양이나 소에게는 나무상자로 옷을 만들어 입혀 털을 보호한다. 악어는 발톱과 이를 깎아내고 매끈한 대리석 풀장에서 사육한다. 이 같은 노력에 대해 동물보호론자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한다. 모피와 가죽 브랜드 경영자들과 디자이너들이 가장 난감해하는 부분도 ‘인도적인 가죽 채취’다. 다른 소재와 달리 모피와 가죽옷의 선택엔 소비자의 ‘정치적’ 판단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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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모피와 직물을 이용한 베스트. 어깨선을 부풀린 것과 안감을 없애고 재봉선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 특징이다.

올해도 밀라노의 펜디 컬렉션과 가죽전문 브랜드 a.테스토니 본사에서는 PETA(동물의 인도적 대우를 주장하는 사람들) 회원들이 ‘FUR KILLS’라고 쓴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 배우 파멜라 앤더슨은 모피에 반대하는 셀러브리티로 더 유명해졌다. 이 때문에 유명 모피 및 가죽 브랜드들은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대한 협약’(CITES)을 엄수하고 있음을 홍보하면서, 수익의 일정 부분을 야생동물보호를 위한 기금으로 내놓기도 한다. 모피반대운동이 극에 달하던 90년대 초 모피업체와 축산농들이 줄줄이 도산한 악몽을 재연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야생동물 모피와 특피의 새로운 공급처가 된 중국의 무자비한 동물 사냥은 업계에 부메랑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모피산업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동물보호운동이라기보다 소비자, 특히 여성들의 의식 변화였다. 90년대 중반, 일하는 여성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바뀌면서 ‘사모님’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 값비싼 캐시미어 코트를 입던 여성들이 2000년을 지나면서는 모피 코트가 비즈니스 우먼으로서 능력과 성공을 보여준다고 생각해 점점 더 비싼 모피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사육 시스템, 야생동물의 모피 거래 금지 노력과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가공기술의 발전이 보태졌다.

‘털 없는 원숭이’인 인간이 다른 동물의 털과 가죽을 탐하게 된 이유는 인간이 갖지 못한 생존 능력과 힘을 동물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물의 털은 죽어서도 뛰어난 원상 회복력과 윤기를 유지하며, 상어 가죽은 100% 방수이고, 타조 가죽의 모공에선 기름기가 나와 늘 부드럽다. 카우룸이란 도마뱀 가죽 신발은 기온에 따라 색과 무늬가 변한다고 한다. 동물이 인간에게 준 선물로 느껴질 수도, 어쩐지 으스스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스타일닷컴’(www.style.com)에선 디자이너들의 자존심을 건 이번 시즌의 환상적인 모피 컬렉션을, ‘PETA’(www.peta.com)에선 악몽 같은 중국의 모피 사육 현장을 볼 수 있으니, 선택에 참고가 되겠다.



주간동아 2007.01.02 567호 (p66~67)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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