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7

2007.01.02

아기자기한 축제 현장 ‘마레 지구’

  • 파리=김현진 패션 칼럼니스트 kimhyunjin517@yahoo.co.kr

    입력2006-12-27 18: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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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자기한 축제 현장 ‘마레 지구’

    마레 지구의 뒷골목엔 패셔니스타의 눈길을 끄는상점이 즐비하다.

    예술과 낭만,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파리에서 가장 파리다운 곳으로 꼽는 곳은 마레(Marais) 지구다. 하지만 파리를 스쳐가는 많은 관광객들은 이곳을 간과하기 쉽다. 루브르 박물관, 노트르담 성당 등 대표적인 문화·역사 중심지에 비해 덜 알려졌고, 생토노레나 애비뉴 몽테뉴 등 명품 패션거리보다 덜 화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일컬어지는 보주 광장(Place des Vosges)과 프랑스 문화유산협회가 있는 쉴리 저택(Hotel de Sully), 감각적인 멋이 묻어나는 피카소 미술관 등이 자리잡고 있다.

    ‘에 부’ ‘콩투아 데 코토니에’ ‘디젤’ 등 유럽 스타일의 유명 패션 브랜드 매장도 즐비하다. ‘키엘’ ‘맥’ ‘록시땅’ 등 트렌드세터들이 즐겨 찾는 화장품 브랜드 역시 파리 특유의 나지막한 건물 안에서 손님들을 맞는다.

    트렌디 옷가게에서 동성애 카페까지 골목 따라 볼거리 가득

    아기자기한 축제 현장 ‘마레 지구’
    마레 지구는 파리 시내 지하철 생폴(Saint Paul)역 일대를 일컫는다. 최근에는 생폴역 북쪽, 현대미술 갤러리들이 많이 모인 누보 마레까지 포함해 마레 지구라 부른다. 다른 관광지들처럼 눈에 띄는 대로변에 볼거리들이 모여 있는 게 아니어서 고색창연한 건물 사이의 골목길들을 열심히 뒤져봐야 재미있고 특이한 상점들을 찾아낼 수 있다. 지도를 들고 이리저리 간판을 살피며 다니다 보면 보물찾기라도 하는 기분이다.



    마레 지구의 가장 큰 매력은 아이덴티티를 규정하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동성애를 뜻하는 국제적 심벌인 무지개색 스티커가 눈에 띄게 붙어 있는 카페에서 뜨거운 시선을 교환하는 동성 연인들의 곁을 지나다 보면 어느새 검은색 옷에 엄숙한 표정을 한 유대인 가족이 집을 나서는 모습도 목격하게 된다. 트렌디한 옷가게들과 손때 묻은 앤티크 소품점, 오래된 건물 속에 자리한 각종 박물관과 현대미술 갤러리 등도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다.

    패션 거리로 가장 활기를 띠는 곳은 프랑 부르주아 거리다. 가슴 부분에 풍성한 러플을 단 여성용 셔츠 전문 브랜드 ‘앤 퐁텐’의 신상품이 먼저 눈에 띄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들이 사이좋게 손을 잡고 찾아와 가게 곳곳을 둘러보는 모습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 이웃의 패션 상점 ‘아부다비 바자’는 니트 소재 검은색 원피스에 짙은 팥죽색 재킷, 황금색의 화려한 액세서리를 매치해 놓았다. ‘홈 오투르 뒤 몽드’는 패션, 인테리어 아이템들과 부피가 작은 가구, 향초 등을 솜씨 좋게 구성한 일종의 편집 숍. 이곳에서는 무릎 밑까지 내려오는 날씬한 겨울 코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유화로 그린 커다란 액세서리 브로치의 스타일링한 센스가 돋보였다.

    색감과 디자인이 매우 ‘파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브랜드 ‘에 부’에는 파티용으로도 손색없는 금색 민소매 톱에 몸에 딱 붙는 스키니 팬츠, 짙은 갈색의 가죽 블루종 점퍼를 내세운 쇼윈도 마네킹을 전면 배치했다.

    마레 지구의 또 다른 골목길에서는 국내 남성복 디자이너 우영미 씨 등의 매장도 만나볼 수 있다. 장미꽃과 장미로 만든 스낵 등을 파는 매장인 ‘오 농 드 라 로즈’는 ‘장미의 이름으로’라는 뜻의 간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장미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루는 곳.

    마레 지구를 빠져나가다 프랑 부르주아 거리 한가운데에서 빨간불이 하트 모양인 독특한 신호등 하나를 발견했다. 디자인과 예술, 사랑의 거리다운 미장센이다.

    파리에서 7년을 산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당신이 젊을 때 파리에서 살아보는 행운을 가졌다면, 파리는 이동하는 축제(moveable feast)처럼 남은 일생 동안 당신과 함께 머무를 것이다.”

    적어도 마레 지구에서만큼은 발길 닿는 곳곳에서 ‘이동하는 축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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