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1

2006.11.21

논술 사고 첫걸음, ‘정답’을 피해가라

  • 이도희 경기 송탄여고 국어교사·얼쑤 논술구술연구소 http://cafe.daum.net/hurrah2

    입력2006-11-20 10: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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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술 사고 첫걸음, ‘정답’을 피해가라
    학생들에겐 대상의 속성을 통한 통합적 사고가 부족하다. 학생들은 대상의 현상을 보고 나름대로 생각을 연결할 수는 있지만, 대상의 속성을 통한 사고의 연결은 어려워한다. 창의적 사고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상들의 속성을 관련시키는 사고는 창의적 사고와 맥이 닿아 있다. 학생들은 외형적으로 조합이 가능하다고 생각되면 이를 그대로 수용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는 상식적인 사고에 해당한다. 이것이 학생들에게 창의적 사고가 싹트기 어려운 일차적인 이유가 된다. 다음 글을 보자.

    사물과 사물 사이에 나타나는 연결고리를 둔다. 사물들의 최초의 결합이다. 가장 최소단위의 사실이라고 해서 ‘원자적 사실’이라고 부를 수 있다. 사태들이 지닌 속성은 이미 사물들에 포함되어 있다. ‘그릇’이라는 사물과 ‘뼈’라는 사물이 만나면 거기에서 다양한 사실들이 생겨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실들은 각각 사물들이 지닌 속성의 연관관계, 즉 사태(원자적 사실)가 없다면 성립될 수가 없다. ‘그릇’이 지닌 ‘담는다’라는 원자적 사실과 ‘뼈’가 지닌 ‘담긴다’라는 원자적 사실이 만나면 ‘뼈가 그릇에 담겨 있다’라는 하나의 사실이 된다. 이 사실(혹은 명제)은 두 사물이 만들어낼 수 있는 수많은 사실 중에서 단 하나다. - 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논고’

    위 글은 심오한 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논술적 사고의 측면에서 ‘속성’의 측면만을 생각해보기로 하자.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릇과 뼈’는 이질적인 대상이다. 그러나 이 두 대상의 많은 속성을 염두에 두고 사고하면 관련성을 읽어낼 수 있다. ‘담는다’와 ‘담긴다’의 속성이 그중 하나다. 학생들이 사고를 확장시켜 여러 속성들을 상상해내고, 이를 서로 관련지으면 다른 대상들을 창출해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창의성을 일으키는 발상이다.

    우리는 애완동물이라고 하면 상식적으로 개를 먼저 떠올린다. 그 근거로 강아지의 귀여운 외모와 행동을 든다. 현상적 측면에 의한 판단이 상식적인 사고를 가져다준 결과다. 그러나 오늘날 일부 사람들에게는 뱀도 애완동물로 각광받고 있다. 그들은 뱀의 속성이 깨끗함을 즐겨 한다는 것을 주된 이유로 댄다.

    우리는 대부분 애완동물로 개를 키운다고 하면 관심을 갖지 않다가 뱀을 키운다고 하면 흥미를 보인다. 왜 그럴까? 흥미의 뿌리를 상식적이고 외형적인 현상에서가 아니라 내부적 속성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외형적인 모습과 내부적인 속성이 정반대일 때 더 큰 흥미를 유발한다는 점이다. 인간과 뱀은 외형적으로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이는 상식적 사고다. 그러나 속성적으로 판단하여 그 관계의 여러 가닥을 잡아내면 잘 어울릴 수 있는 관계를 새롭게 창출해낼 수 있다. 이것이 창의적 사고다.

    우리는 ‘맛없는 집’이라는 상호가 붙은 음식점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눈에 보이는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정말 ‘맛없는 음식점’이다. 이는 상식적인 판단이다. 일반적으로 음식점은 음식이 맛있다는 점을 극대화해 미식가들의 입맛을 당기게 이름을 짓는다. 즉, 맛을 강조하기 위해 간판의 내용과 음식의 맛을 일치시켜 짓는다. ‘맛없는 집’이라는 간판은 외형적으로는 그 반대 경우다.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맛없는 집’이라는 간판 속에서 ‘당당함’이라는 속성을 읽어낼 수 있다. 얼마나 음식맛이 좋으면 ‘당당하게’ 맛없는 식당이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우리는 이런 창의적 발상에 호기심을 느낀다.

    통합논술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이여, ‘논술적 사고는 정답을 피해가야 한다’는 말을 명심하기 바란다. 우리가 아는 정답이란 상식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김경범 서울대 입학관리본부 연구교수는 “2008학년도 서울대 통합논술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려면 정답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당연하고 획일적인 답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생각을 바탕으로 학생 고유의 의견을 펼쳐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이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학생의 자유로운 생각과 독자적인 의견은 ‘대상에 대한 다양한 속성 파악’에서 나온다.

    학생들이여, 이 글을 읽는 지금 외형적으로 대조되는 두 대상을 떠올려보자. 그 두 대상에서 가능한 한 많은 속성들을 상상해 연결해보자. 또한 속성들의 관계를 연결짓고, 이를 나만의 생각으로 ‘사실화’해보자. 그런 과정을 통해 ‘원시인과 문명인의 통합’을,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통합’을, ‘수학과 문학의 통합’ 등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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