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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Bye Bye 열린우리당

DJ·盧 오월동주 “정계개편 속으로”

궁지의 햇볕정책·지지율 바닥으로 위기타개 절실 … 동교동·여당인사 접촉 등 물밑 행보 분주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DJ·盧 오월동주 “정계개편 속으로”

DJ·盧 오월동주 “정계개편 속으로”
올해 나이 여든하나(1926년생). 실제로는 두 살 더 많은 그는 수시로 병원 신세를 진다. 그런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현장’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DJ는 당당하게 돌아왔다. 목포와 서울, 부산, 공주 등을 오가며 존재를 과시하는 그의 모습은 군사정권과 맞서던 30여 년 전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로이터’ ‘뉴스위크’ 등 유력지를 통해 해외로 자신의 소신을 실어나르는 방법도 그대로다.

요즘 그가 던지는 말은 파격적이다. 8년 만에 찾은 목포에서 그는 ‘무호남 무국가(無湖南 無國家 :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론’을 선보였다. 그리고 ‘열린우리당의 비극은 분당에서 시작됐다’는 말로 정계개편의 문을 열어젖혔다. 이를 시작으로 그는 스스로 정치의 바다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그는 왜 다시 돌아왔을까.

11월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S한정식집. 국민의 정부에서 국정원장을 지낸 이종찬 전 의원이 열린우리당 소장파 L 의원 등 몇몇 여당 의원과 마주 앉았다. 화두는 정계개편. 이 전 의원은 최근 지인들에게 “우리당과 민주당의 통합을 위해 역할을 맡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11월2일 저녁 여의도 한 음식점. 국민의 정부에서 장관을 역임한 K 전 의원이 민주당 인사들과 자리를 같이했다. 반주를 많이 한 그는 이날 민주당 인사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1급 정보를 흘렸다.



“노무현 대통령의 동교동 방문이 추진되고 있다. 정계개편 문제가 동교동 차원에서 논의될 것 같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여름에도 DJ를 찾은 사람들은 ‘움직일 때가 됐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동교동의 봄을 재촉하는 발걸음은 그렇게 분주했고, DJ는 그들의 요청에 화답하듯 마침내 길을 나섰다.

DJ 숨가쁜 정치행보 ‘햇볕정책’에 초점

숨가쁘게 이어지는 DJ의 정치행보는 대부분 ‘햇볕정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햇볕정책으로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그로서는 위기에 처한 햇볕정책을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 없었을 터.

햇볕정책의 지속 여부는 차기 대선과도 연결된다. 한나라당이 집권할 경우 햇볕정책은 상당 부분 수정되거나 폐기될 수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공과(功過)에 대한 총체적 재해석 작업이 불가피하다. 국민의 정부 당시의 대북 지원 내역에 대해서는 지금도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보수진영으로의 정권교체만은 막아야 한다는 게 동교동의 분위기다.

이런 점은 노무현 대통령의 이해와도 맞아떨어진다. DJ와 처지가 다르지만 노 대통령도 정치적 입지가 곤궁하기는 마찬가지. 10%대로 추락한 지지율은 국정 장악력을 현저히 약화시키고 있다. 자신이 창당한 우리당은 침몰 지경에 이르렀다. 정동영, 김근태, 천정배 등 창당 동지들은 자신과 다른 길로 떠나기 위해 보따리를 싸고 있다. 가히 사면초가 형국이다. 전통적인 지지층의 복원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안으로 대두됐다.

위협받는 햇볕정책을 지켜야 하는 DJ와 정치적으로 위기에 몰린 노 대통령. 그들의 만남은 필연일 수밖에 없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4일 회동에서는 정치적인 문제를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오동잎이 떨어지면 가을이 왔음을 아는’ 고수들이다. 굳이 말을 해야 대화가 되는 사이가 아닌 것이다. 두 사람의 만남 자체가 정치이자 메시지다.

DJ는 이미 ‘무호남 무국가’라는 지극히 정치적 언어로 호남인에게 신호를 보낸 바 있다. 30여 년 전 그는 “표로 뭉쳐야 한다”는 전략적 사고를 말과 행동으로 학습시켰다. 목포에서 선보인 DJ의 모습은 그때와 흡사했다. DJ는 ‘무호남 무국가론’을 통해 ‘無DJ 無大權(DJ가 없으면 대권도 없다)’이란 메시지를 정치권에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DJ가 작심하고 던진 말과 노 대통령의 파격적인 행보는 현실 정치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두 사람의 회동은 우리당+민주당+고건 구도의 통합신당론에 심대한 타격을 가했다. 두 사람을 배제하고 진행되던 정계개편 흐름은 일시적으로 중단됐다.

따지고 보면 현재 상황은 정계개편 국면이라기보다는 그 전단계인 헤게모니 쟁탈의 성격이 더 강하다. 누가 주도권을 쥐고 정계개편의 그림을 그리느냐에 대해 당과 청와대 그리고 동교동, 민주당 등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당 리모델링이냐, 통합신당이냐

정권 재창출 문제를 놓고 DJ와 노 대통령이 머리를 맞댈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그러나 방법이 서로 다르다. 노 대통령은 우리당을 리모델링하자는 입장이다. 지역주의 극복이 여전히 중심 가치다. 이는 명분 측면에서는 앞선다. 반면 ‘표’를 쥐고 있는 DJ는 통합신당에 방점을 찍는다. ‘표’는 현찰이자 실리다.

정권 재창출을 이루기 위해서는 누군가 자신의 의지를 굽혀야 한다. 동교동 회동이 추진되는 과정을 지켜보면 DJ의 실리가 노 대통령의 명분을 앞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노 대통령은 실리가 따라주지 않는 명분을 고집하는 일이 매우 위험하다는 점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더구나 양대 선거를 앞둔 예민한 시점이다.

이는 곧 노 대통령이 변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변화가 감지된다. 노 대통령의 변화를 처음 외부에 알린 사람은 김혁규 의원(우리당)이다. 11월2일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을 만난 그는 주목할 만한 이야기를 전했다.

“노 대통령이 민주당과의 통합 등 민주개혁 세력의 통합에 반대하는 것처럼 전해지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민주당과의 통합이 지역적인 연대나 정치공작 차원의 정계개편으로 이뤄지는 데에만 반대할 뿐이다.”

노 대통령의 변신을 대변하는 측근은 또 있다. 최측근인 안희정 씨다. 그는 최근 여당의 재선 및 386 출신 초선 의원들을 잇따라 만나서 “대통령의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 노 대통령이 정계개편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이광재, 윤호중 의원 등 ‘친노 직계’ 의원들도 노 대통령이 큰 틀에선 통합신당론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는 점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정계개편의 방향성을 맞추기 위해 전술적 유연성을 발휘했다는 말이다.

문제는 DJ와 노 대통령의 카리스마가 통하느냐 하는 점이다. 통한다면 DJ는 범여권 통합 중심에서 누구보다 강력한 킹메이커로서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 노 대통령도 당분간 정치지형을 유지하면서 차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초절정의 두 고수가 벌이는 오월동주(吳越同舟)는 과연 성공할 것인가.

DJ ‘부활’이 반갑지 않은 사람들

한화갑 대표, 인고의 3년 수확하려던 참인데…


DJ·盧 오월동주 “정계개편 속으로”

민주당 한화갑 대표(좌). 고건 전 총리.

예상치 못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고건 전 총리와 민주당 한화갑 대표가 딱하게 됐다. 한 대표는 DJ 은퇴 후 3년간 인고의 세월을 보내면서 민주당 재건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제 막 수확에 나서려는 순간 DJ가 등장한 것이다. 돌아온 DJ는 기존 질서나 한 대표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한 대표의 측근들은 그런 DJ가 서운하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내색은 않지만 한 대표는 내심 ‘대권’의 꿈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얼마 전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는 “(출마) 못할 것도 없다”며 속내를 드러냈다. 그 꿈을 이루자면 가장 먼저 넘어야 할 산이 ‘DJ’다. 그를 통해 호남의 대표성도 확보하고 민주당 대표로도 자리잡아야 한다. 그러나 DJ는 한 대표의 이런 꿈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눈치다.

한 대표 측은 DJ가 염두에 둔 차기 대선후보들이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면서 DJ의 첫 번째 후보 자리는 비어 있다고 말한다. 시기도 이르거니와 햇볕정책 등을 견인할 최적의 후보를 찾지 못했다는 의미다. 그래서 DJ가 염두에 둔 대선후보는 2번부터 이름이 떠오른다.

“2번은 아무래도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인 것 같다. 3번은….”

DJ-박근혜 연대론의 시작이다. 한 대표 측은 이 점이 불만이다.

“40여 년 비서이자 참모인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최근 민주당에서 터져 나오는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과 유종필 대변인의 ‘DJ 역할제한론’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닌 듯하다. 이런 불만이 쌓인 결과다.

민주당은 DJ가 노무현 대통령과 손잡고 그들만의 시나리오를 가동시킬 것으로 전망한다. 이 경우 민주당의 처지가 난감해진다. 한 대표가 설 자리도 급격히 좁아진다. 경우에 따라 주군을 밟고 가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정면돌파론은 소장파 인사들 주변에서 심심찮게 제기된다.

문제는 현실적인 ‘힘’이다. DJ를 밟고도 ‘호남의 민주당’으로 위상을 정립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누구도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신당 창당에 나섰다가 유탄을 맞은 고건 전 총리는 조건부 응전에 나선 데 비해, 민주당이 고개를 숙인 채 호흡만 고르는 이유도 이 문제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민주당과 한 대표의 다음 한 수는 무엇일까.




주간동아 561호 (p18~20)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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