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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한 흑인의 오만인가, 오해인가

동계올림픽 氷速 1000m 金 샤니 데이비스 … 선수들과 불화, 모친의 과도한 치맛바람 구설수

  • 공종식/ 동아일보 뉴욕 특파원 kong@donga.com

삐딱한 흑인의 오만인가, 오해인가

미국에서 농구, 아메리칸풋볼 등의 스포츠 스타는 대부분 흑인이다. 하지만 얼마 전 막을 내린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미국 선수들을 보면 ‘백인 일색’이다. 흑인 선수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스키, 스케이트 등 동계올림픽 종목은 배우는 데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2월18일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사건’이 벌어졌다. 동계올림픽 사상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스피드스케이팅 스타 샤니 데이비스가 개인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것이다. 그는 ‘스피드스케이팅의 꽃’으로 불리는 1000m에서 메달을 획득했다.

백인 일색 선수들 … 미국 전역 흥분

미국 전역이 흥분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미국에서 단독 중계권을 얻어내 올림픽 중계를 해온 NBC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 데이비스가 딴 금메달에 의미를 부여했다. 금메달 확정 직후 메달 수상자에게 으레그랬던 것처럼 NBC 기자는 데이비스에게 마이크를 갖다댔다.

-축하합니다. 소감은?



“좋아요.”(아무 표정도 없이)

-그게 전부인가요?(머쓱해진 표정으로)

“예.”

-동계올림픽 사상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개인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는데요. 지금 기분이 어떤가요?

“글쎄요.”(역시 무표정한 얼굴로)

-혹시 화나셨나요?(기자도 데이비스의 말투 때문에 언짢아져서)

“아니요.”(억지로 인터뷰에 응한다는 투로)

이날 데이비스의 우승 소감 인터뷰는 ‘전형적인 금메달리스트의 인터뷰’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데이비스는 동계올림픽 개인종목 첫 흑인 금메달리스트라는 점 외에도 여러 가지 면에서 논란과 이야깃거리를 낳았다. 가장 큰 논란은 미국 스피드스케이팅팀 주장 격인 채드 헤드릭과의 불화였다. 스피드스케이팅 5관왕을 꿈꿔온 헤드릭은 5000m 경기에서 대회 첫 금메달을 따냈다. 그런데 5000m에서 부진했던 데이비스가 단체 추발 경기 출전을 포기하고 1000m에 주력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두 사람의 불화는 표면화됐다.

미국팀은 데이비스가 불참한 가운데 치러진 단체 추발 경기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대회에서 에릭 하이든 이후 다시금 5관왕을 노리던 헤드릭은 “데이비스 때문에 5관왕의 꿈이 무산됐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1000m에서 데이비스가 금메달을 땄을 때 축하인사도 건네지 않았다. 데이비스 또한 “나는 첫날 헤드릭이 우승한 뒤 그를 껴안아주고 축하인사를 건넸다”며 헤드릭의 태도에 분노했다.

이들은 2월21일 열린 1500m 경기에서 이탈리아의 엔리코 파브리스에게 금메달을 내준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 경기에서 데이비스는 은메달을 땄다. 헤드릭은 데이비스에게 축하인사를 건네지 않은 데 대해 “마이클 조던은 승산이 없을 경우 코트에 나가지 않는다”며 데이비스의 단체전 물참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데이비스는 이에 대해 자신은 조던과 같은 시카고 출신이며 그의 열렬한 팬이라면서 “그러나 조던은 경기에 졌을 때 헤드릭과 같은 태도를 보인 적은 결코 없었다”며 맞받아쳤다.

둘 사이의 불화는 팬 사이에도 찬반이 엇갈리면서 언론사들이 데이비스의 단체전 불참에 대해 찬반투표를 할 정도였다. 데이비스는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한다. 내가 1000m에서 금메달을 딸 기회가 있어 그것에 집중한 것인데 뭐가 문제냐”며 반박하기도 했다.

1982년 시카고에서 태어난 데이비스는 홀어머니(세리 데이비스) 밑에서 자랐다. 만 두 살 때 롤러스케이트를 처음 타기 시작했고 6세 때 코치의 권유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종목을 바꿨다. 그가 성공하는 데에는 어머니의 헌신이 결정적이었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비서로 일했던 어머니 세리는 고된 직장생활 속에서도 매일 아침 데이비스를 깨워 스케이트를 타도록 독려했다. 형편에 맞지 않게 세계 최고의 스케이트화를 사주기도 했다. 명문 스피드스케이팅 클럽을 찾아 이사까지 하는 등 미국판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하기도 했다. 데이비스도 나중에 “당시 어머니 수입으로 1000달러짜리 스케이트화를 신는 것은 큰 사치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한국 음식”

세리는 흑인 스케이트 선수라는 점 때문에 데이비스가 어려움을 겪을까봐 그를 강하게 키웠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1마일(약 1.6km)을 달리도록 했다. 하지만 세리의 지나친 치맛바람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데이비스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 좋은 기사가 나오면 이를 문제 삼으며 언론과 마찰을 빚었다.

데이비스의 매니저이자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는 세리는 미국스케이트연맹과도 충돌했다. 스폰서 문제로 갈등이 생기자 그는 미국스케이트연맹에 홈페이지에서 데이비스에 관한 내용을 모두 빼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데이비스가 단체전에 불참한 것도 ‘어머니의 결정’으로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현재 데이비스는 ‘피부색으로 인해 시카고 경찰에 이유 없는 수색을 당했다’며 시카고시 경찰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그는 지금까지 거리를 걷다가 경찰에게 최소한 3번 이상 이유 없는 검문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이 소송의 경우도 인종문제가 제기되면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이 때문에 세리 데이비스에 대해 ‘성인이 된 아들 문제에 너무 간섭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많다.

세리는 ‘실패’에 대해서는 데이비스에게 가차 없는 비판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번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선발전에서 데이비스가 탈락하자 ‘패배자’라고 몰아붙여 언론에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어머니에 대한 아들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데이비스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어머니는 지금까지 한 번도 당신의 일을 우선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 성공의 대부분은 어머니 덕이다. 어머니는 내 커리어를 계속 관리해주고 있고, 항상 나를 위해 존재하신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 스케이팅 선수 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흑인 선수 샤니 데이비스. 그는 스케이팅을 가장 좋아하는 국가로 알려진 네덜란드에서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질 정도로 ‘스타’다. 동시에 끊임없이 ‘뉴스’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못 말리는 스타다. 데이비스는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가장 좋아하는 도시로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과 서울을 꼽았고,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한국 음식이라고 밝혔다.



주간동아 2006.03.14 526호 (p60~61)

공종식/ 동아일보 뉴욕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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