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昌, 대선 2000만 표 위력 아직도?

옛 측근들 비롯 지방선거 출마 후보자들로 단암빌딩 ‘북적’ … 행사 참석 요청도 잇따라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昌, 대선 2000만 표 위력 아직도?

昌, 대선 2000만 표 위력 아직도?

서울 중구 남대문로 5가에 있는 단암빌딩.

3월2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뉴라이트 부설 목민정치학교 창립식에 참석해 축사를 할 예정이었다. 이 전 총재는 2월23일 자신의 비서실장이었던 권철현 의원의 출판기념회 때처럼 이번 ‘외출’에서도 좌파정권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할 계획이었다. 이 전 총재는 “연이은 이념 발언이 부담스럽다”는 측근들의 지적에도 “친북 좌파가 대권을 다시 잡는 일은 막아야 한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이 전 총재의 두 번째 외출은 무위로 끝났다. 심한 몸살감기로 바깥나들이가 불가능했기 때문. 이 전 총재 측은 빛을 보지 못한 이념의 화두를 다른 장소에서 공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한 측근은 “이 전 총재가 몇몇 대학의 강연 요청을 받아놓은 상황”이라며 언제든 치고나갈 공간이 있음을 시사했다.

대선 패배 후 3년간 칩거로 일관해온 이 전 총재 주변에 변화의 바람이 분다. 이제 이 전 총재 측은 ‘하고 싶은 말은 하고, 가고 싶은 곳은 가겠다’는 입장을 스스럼없이 드러낸다. 대선 패배 후 침묵했던 때와는 사뭇 다른 표정이다. 한 측근은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모두 무혐의로 밝혀진 만큼 발걸음이 가벼워졌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 전 총재의 언론특보였던 이종구 씨도 이런 설명에 동의한다. 그는 “원로로서 나라의 중심을 잡으라는 요구가 이 전 총재의 사무실로 몰리고 있고, 이 전 총재도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전 총재의 주변에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음을 알리는 일은 많다. 그런 일들은 대부분 그의 사무실이 있는 서울 중구 남대문로 단암빌딩을 둘러싸고 일어난다. 우선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아졌다. 그들을 맞는 단암팀들의 반응도 호의적이다. 권철현 의원의 출판기념회에 이 전 총재가 참석한 사실이 보도되면서 사무실을 찾는 사람들은 더욱 늘고 있다. 영남지역에서 시작된 행사 참석 요청은 3월 들어 충청권과 수도권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보 출신 현역 의원들도 자주 찾아



누구보다 표심의 향배에 민감한 출마 후보자들이 단암빌딩을 찾아 도움을 요청하는 현상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 경기도 기초단체장 선거에 출마하려는 K 씨는 이를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이 전 총재가 획득한 2000만 표와 연결시켜 설명한다.

“이 전 총재가 정계은퇴를 선언했지만 2000만 표가 갖는 상징성은 남아 있다. 정치를 떠날 수 없는 것이 그분의 운명이다.”

지방선거 출마 후보자들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단암빌딩을 찾는다면 ‘왕년의 인사’들은 꾸준하게 이 전 총재 곁을 지키면서 말벗 노릇을 해주었다. 이 전 총재와 함께 대선전에 나섰던 양정규, 현경대, 김기배 전 의원 등이 그 주인공. 비슷한 시기에 정계를 떠난 이들은 ‘정계를 떠난 사람들’이란 모임을 만들어 이 전 총재와 자연스럽게 회동을 해오고 있다.

昌, 대선 2000만 표 위력 아직도?

2월23일 부산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나라당 권철현 의원(가운데)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이회창 전 총재(오른쪽에서 두 번째).

과거 이 전 총재의 특보를 지낸 인사들도 단암빌딩을 자주 찾는다. 이들 역시 ‘이회창 특보들의 모임’을 만들어 자연스럽게 만난다. 원내 진출에 성공한 김정훈, 최경환, 서상기, 이혜훈, 박진, 유승민, 나경원 의원 등이 주요 멤버. 김정훈 의원은 “20여명 정도가 이 전 총재와 가끔 만나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눈다”고 말했다.김기춘 의원은 특보단장 자격으로 이 자리에 참석하고 박희태 국회부의장, 강재섭 전 원내대표 등 당 중진들도 이 전 총재와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눈다. 김무성, 공성진, 서상기 의원 등도 마찬가지.

이들 외에도 이 전 총재의 배려로 원내에 입성한 인물들이 이 전 총재와 식사자리를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언론특보는 “이 전 총재의 현역 시절 당직을 맡았거나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던 사람들이 수시로 단암빌딩을 찾는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단암빌딩을 찾은 전·현직 의원의 수는 40여명이 넘는다.

이 전 총재를 후원했던 후원회 간부들도 단암빌딩을 방문하는 주요 손님들이다. 특히 해외후원회 간부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 연말과 연초 후원회 간부 수십 명이 단암빌딩을 찾은 적도 있다. 후원회 조직은 지금도 이 전 총재의 국내외 주요 인맥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는 게 한 측근의 설명이다.

지인들이 단암빌딩을 찾는 이유는 제각각 다르다. 그러나 회동의 마지막은 항상 “큰 뜻을 다시 한 번 펼치라”는 주문으로 끝난다. 이 전 총재가 2007년 대선에 다시 한 번 출마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홍문표 의원도 “병풍(兵風)과 기양건설 및 최규선 씨 20만 달러 수수 사건 등과 관련한 의혹이 해소된 만큼 이 전 총재가 다시 한 번 국민의 평가를 받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5월 지방선거와 한나라당의 7월 전당대회를 앞둔 요즘 단암빌딩에는 이 전 총재의 ‘역할’을 요구하는 건의가 이어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전 총재의 반응. 홍 의원의 설명이다.

“과거 같으면 손을 내저었을 정치 얘기도 끝까지 경청한다. 나라가 어려우니 나서 달라고 하면 신중하게 듣는다. 비서가 인터넷과 신문을 뒤져 이 전 총재 관련 기사를 정리, 보고하면 옆에 쌓아놓고 정독한다. 3월 중순쯤 이 전 총재를 찾아가 다시 한 번 역할을 요청할 계획이다.”

정계복귀론·지방선거 역할론 ‘솔솔’

이 전 언론특보가 전하는 분위기도 비슷하다. 그는 “정치를 재개한다, 대선에 출마하려 한다는 등의 지적을 부담스럽게 생각하지만 국가 정체성 등에 대해 아무도 얘기하지 않을 때 할 말은 하겠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전 언론특보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방북에 대한 이 전 총재의 문제 제기도 이런 맥락에서 풀이했다.

단암빌딩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런 움직임은 정치적 ‘오해’로 연결되기 십상이다. DJ와 한나라당을 질책한 ‘부산 발언’에 대해선 이 전 총재의 정계복귀론과 지방선거 역할론이 퍼지고 있다. 몇몇 대선후보 진영도 이 전 총재의 언행에 대해 의아한 눈길을 보낸다. 한 대선후보 진영은 이 전 총재의 부산 발언에 대해 “의도가 뭐냐”며 취재기자들에게 확인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런 정치권의 반응에 이 전 총재 측은 ‘확대 해석’이라고 해명한다. 이 전 특보는 “이 전 총재는 무엇을 하겠다는 입장이 아니라 무엇을 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 중”이라며 “이를 정치행위로 보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이런 정치권 반응을 모를 리 없는 이 전 총재는 정치적으로 확대 해석될 소지가 있는 사안에 대해선 전혀 입에 올리지 않는다고 한다. 얼마 전 단암빌딩을 찾은 지인들이 이 전 총재에게 “차기 대선주자인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가운데 누가 좋냐”는 유도성 질문을 하자 그는 답변 대신 앞자리에 앉은 한 원로 정치인의 빈 술잔에 술을 가득 채웠다고 한다. ‘그런 질문을 하지 말라’는 메시지였던 셈.

이 전 총재는 오전 10시경 단암빌딩에 모습을 드러낸다. 오전에는 사람을 만나거나 책을 보며 점심때는 일정에 따라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별다른 약속이 없으면 오후 4~5시경 사무실을 나선다. 요즘은 찾는 사람이 많아 퇴근 시간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전 총재는 이들과 함께 단암빌딩에서 5월 지방선거와 7월 한나라당 전당대회를 지켜볼 예정이다. 상황에 따라선 단암팀이 여의도로 자리를 옮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 경우 단암팀은 지방선거와 전당대회의 또 다른 태풍으로 등장하게 된다.



주간동아 2006.03.14 526호 (p10~11)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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