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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Ⅱ|펀드 투자시대의 명암

간접투자 시장, 덩치 커졌지만…

증시 체질 바꾸는 데 기여 … 리스크 관리 시스템 검증 등 숙제 여전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간접투자 시장, 덩치 커졌지만…

간접투자 시장, 덩치 커졌지만…

삼성투신운용 펀드매니저들의 회의장면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한국 증시에서 차지하는 외국인 투자가의 영향력이 점점 확대되고 있는데, 우리 증시에 투자하는 글로벌 펀드매니저들을 찾아가 만난 적이 있습니까?”

2000년 가을 무렵 외국계 금융기관 출신의 한 대형 투신운용사 감사 C 씨가 이 회사 사장, 주식운용본부장과 함께 얘기를 나누다 이런 질문을 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묵묵부답이었다.

“적어도 3개월에 한 번씩은 그들과 어울려야 그들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한국에 앉아서 보는 외국계 증권사들의 리포트는 이미 ‘죽은’ 정보입니다.”

C 감사의 주장이 설득력 있다는 평가를 했는지 곧 주식운용본부 직원 몇 사람이 팀을 짜 미국과 홍콩 등으로 해외 출장을 떠났다. 그러나 출장은 한 번으로 끝났다. C 감사는 해외 출장을 특혜라고 생각하는 사내 분위기 때문이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얼마 후 진짜 이유를 알게 됐다. C 감사가 부임 이후 처음으로 해외 출장을 가기 전날 관련 부서 직원이 현금을 들고 찾아와 ‘출장비’라고 내놓았다. C 감사가 깜짝 놀라 “무슨 출장비를 현금으로 주느냐”고 묻자 그 직원은 “회사 관행”이라고 답했다.



외환위기 이후 펀드 운용의 투명성 강화 노력은 ‘긍정 평가’

“현금으로 받으면 당연히 출장비를 남기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할 것이다. 해외의 펀드매니저들을 만나 제대로 된 정보를 얻는 게 중요하지 출장비 아끼는 게 목표가 돼서는 곤란하지 않는가. 당장 사후 정산제로 바꿨다.”

문제는 이 사례가 몇 년 전 일이라고 무시하기도 힘든 게 우리 투신운용사들의 상황이라는 점이다. 시장 관계자들은 “펀드 투자 붐으로 자산운용산업의 도약 계기는 마련됐지만 여전히 과거와 같은 패러다임으로 고객 자산을 운용하고 있는 곳이 있다”고 말한다. C 감사는 “구체적인 주식 운용 기법을 개발하기보다는 철저하게 시장에 맞춰 기업문화를 형성해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2005년 말 현재 펀드 설정 잔액은 204조3330억원으로, 2000년 이후 연말 기준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년도에 비해서는 9.27%, 금액으로는 17조3430억원이나 증가했다. 채권형 펀드는 감소했지만 적립식 투자 확산 및 주가 상승에 따른 주식형 펀드의 증가(17조6260억원)가 큰 영향을 미쳤다. 펀드 수도 신규 상품 출시 등으로 작년 한 해 841개나 증가해 총 7320개가 됐다.

2005년 말 현재 자산운용을 업으로 하고 있는 회사는 47개사. 고객이 투자하는 펀드의 수익률은 이들 자산운용사의 운용 능력에 따라 결정된다. 다행히 자산운용산업은 외환위기 이후 채권 시가평가제 도입, MMF의 자산운용 건전성 강화, 내부 통제 기준 및 준법감시인 제도 신설, 투자자의 신뢰 회복과 펀드 운용의 투명성 강화를 위한 다양한 공시제도 등의 실시로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간접투자 시장, 덩치 커졌지만…
그러나 숙제도 많다. 제도가 선진적이라고 해도 이를 제대로 운영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리스크 관리만 해도 그렇다. 법적으로는 ‘10% 룰’(펀드 자산총액의 10%를 초과해 동일 종목의 투자증권에 투자하는 행위 금지), ‘20% 룰’(자산운용사가 운용하는 전체 펀드의 자산총액으로 동일 회사가 발행한 주식 총수의 20%를 초과해 투자하는 행위 금지) 등이 있고, 각종 감독 규정도 많다.

그러나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적립식 펀드 열풍 이후 리스크 관리의 문제점이 드러날 정도의 폭락 장이 한 번도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펀드평가회사 제로인㈜ 신중철 상무는 “국내 투신운용사들은 리스크 관리 개념이 제대로 설정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리스크 관리의 핵심은 최고 경영자나 최고 운용책임자를 견제하는 것이다. 일선 펀드매니저들보다 이들이 ‘사고’를 치면 훨씬 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업문화 현실에서 과장급 리스크 관리팀장이 최고 경영자에게 할 말을 다 할 수 있겠는가.”

일부 전문가들은 펀드 산업이 활성화되기 위한 사회적 기반이 취약하다고 주장한다. 한성대 무역학부 김상조 교수는 “과거 ‘바이 코리아 펀드’처럼 고객 돈으로 자기 계열사를 지원하는 일은 없어졌지만, 아직도 수탁자가 고객 자산을 운용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자산운용업의 대원칙이 우리 사회에 제대로 뿌리내렸는지는 의문이다”면서 “펀드 산업의 규모 확대가 또 다른 금융시장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일각의 우려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감독 당국은 기우라고 일축한다.

자산 운용 능력의 강화도 중요한 과제로 지적된다. 미래에셋생명 서래호 퇴직연금전략팀장은 “운용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각 회사의 특성을 반영한 투자 철학과 펀드 유형에 맞는 분명한 투자 원칙과 투자 프로세스를 정립해야 한다. 또한 펀드매니저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내부 교육 및 투자에도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한 중견 펀드매니저는 “리서치 인력에 대한 투자도 병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 펀드매니저들 역량 뛰어나지만 경험 부족”

간접투자 시장, 덩치 커졌지만…
삼성생명의 투자 관련 한 임원은 “우리나라 펀드매니저들의 개인적 역량만 따져보면 미국과 비교해 별 차이가 없다”고 평가했다. 다만 “다양한 경험을 쌓지 못했다는 점이 취약한 대목인데, 이는 시간이 흘러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 물론 그동안 간접투자를 기피해온 우리 국민의 투자 성향 때문에 펀드매니저들이 충분한 경험을 쌓을 수 없었다는 변명도 있다.

펀드 판매 채널 직원에 대한 교육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는 주로 감독 당국에서 나온다. 자산운용산업이 고객의 신뢰를 꾸준히 높여가기 위한 출발점은 투자자 성향에 맞는 상품을 제대로 파는 것이고, 이를 위한 판매사 직원 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고객이 자신의 능력이나 투자 성향에 맞는 펀드를 선택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라고 말했다.

시장 관계자들은 요즘 “적립식 펀드 열풍으로 우리 증시의 체질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입을 모은다. 적립식 펀드의 장점이 주가가 조정을 받을 때라는 사실도 투자자들에게 상당히 인식된 만큼 올해 설사 증시가 조정받더라도 적립식 펀드 자금 유입으로 곧 활기를 되찾을 것이라는 낙관론도 많다. 과연 그럴까.



주간동아 2006.01.31 521호 (p56~57)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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