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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北, 중국식 개혁·개방 시동?

김정일 위원장 깜짝 방중 통해 모종의 협약설…신의주·단둥 중심으로 본격 개발 가능성

  • 송문홍 기자 songmh@donga.com

北, 중국식 개혁·개방 시동?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이번 중국 방문은 앞으로 북-중 관계, 나아가 한반도 주변 정세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변수가 될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북한은 그동안 주저해오던 중국식 개혁·개방을, 중국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동북 3성(省) 지역개발을 본격 추진할 것이다.”

김 위원장의 연초 ‘깜짝 방중’에 대해 중국과 북한의 내부 정보에 두루 밝은 한 민간 정보통은 이렇게 평했다. 한마디로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은 이전의 중국 방문(2000년 5월, 2001년 1월, 2004년 4월) 때와는 무게가 다르다는 의미다. 북한은 과거 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한 뒤마다 경제정책에 변화를 가져오곤 했다. 하지만 나중에 보면 그 변화의 폭은 항상 제한적이었다. 그렇다면 이번 방중은 어떤 점이 어떻게 다르다는 말인가. 공개된 정보가 부족한 가운데 김 위원장의 과거 방중과 이번 방중의 차이를 제대로 읽으려면, 최근 몇 년간 북-중 관계 일지(日誌)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2002년 신의주특구 문제로 불화 겪어

2001년 초 김 위원장은 상하이를 방문해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 국가주석과 회동했다. 김 위원장은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로 중국의 경제발전에 경외감을 표현했고, 장 주석은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을 단행한다면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한다.

그러나 북한이 2002년 신의주특구 계획을 발표하면서 두 나라 간 불화가 노출됐다. 중국 당국은 북한이 임명한 양빈(楊斌) 행정장관을 연행했고, 그 후 신의주특구 계획은 흐지부지됐다. 당시 중국은 양빈이 신의주에 카지노를 개설하려고 한 것에 대해 심한 거부감을 가졌다고 한다. 신의주 개발이 인근 동북 3성 지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소지가 크다고 봤기 때문. 중국은 신의주특구를 저지함으로써 북한의 개발 방식이 자국의 이해에 반하지 않는 형태여야 함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 같은 내재적 갈등 상황에 변화를 가져온 전기(轉機)는 2004년 11월 중국에서 먼저 나왔다는 것이 한 중국 측 정보통의 말이다. 이때 중국은 △북한에 중국식 개발모델이 도입돼 양국 간 경제노선에 충돌이 없어야 하고 △북한의 개발은 중국 측 동북 3성의 개발과 연계돼야 하며 △중국 측 대북(對北) 투자의 안전성이 확보돼야 한다는 등의 원칙을 확정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중국의 정책 결정에는 겉으로 드러난 내용 이외에 치밀한 ‘심모원려(深謀遠慮)’가 숨어 있다고 이 정보통은 해석했다. 중국 지도부에게 동북 3성 지역의 정치적 안정은 북한 문제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중요한 과제다. 서부 지역에선 대역사(大役事)가 진행되고 있는 터에 동북 지역은 경제적으로 낙후된 상태로 남겨둘 수만 없는 이유다. 더욱이 이 지역에는 한국어를 사용하고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조선족 사회가 뿌리내리고 있다. 이래서는 한반도에서 무슨 일이 있을 때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중국으로선 자국 영토의 안정을 도모하고,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유지·확대를 위해 동북 3성과 북한을 우선 경제면에서 긴밀하게 연계시킬 필요가 있었다는 것. 비유하자면, 단둥이 홍콩이 되고, 신의주는 홍콩에 인접한 선전(深川)과 같은 존재로 개발되는 게 중국 지도부 입장에서는 바람직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사실 중국은 동북 3성 개발을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해왔다. 중국이 헤이룽장(黑龍江)성 무단장(牧丹江)시에서 지린(吉林)성, 랴오닝(遼寧)성의 북-중 국경지역을 거쳐 다롄(大連)으로 이어지는 동변(東邊)철도 건설에 나선 것도 그 일환이다. 2008년 말경에 완공 예정인 동변철도는 기획에서부터 건설까지 지방정부가 아니라 베이징 중앙정부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북한은 이러한 중국의 방침에 대해 지난해 초 박봉주 내각총리의 방중 때 첫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총리는 중국의 4세대 지도부에게 “2001년 장쩌민 주석의 ‘약속’이 여전히 유효한지” 문의해 재차 확인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이어 10월에는 후진타오 주석이 방북해 20억~30억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경제지원을 약속했다. 이는 북-중 간에 향후 경제개발의 방식과 원칙에 대한 모종의 타결이 이뤄졌음을 의미한다.

북-중은 지난해 12월 서한만 원유 공동개발을 위한 협정에도 서명했다. 앞으로 양국 간 경제협력이 자원개발 분야에 집중될 것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서한만 원유는 90년대 중반 이래 양국 간 잠재적 갈등의 소재였다. 원유매장 지역의 영해권을 둘러싼 다툼의 소지가 다분했다는 것. 당시 서한만 석유탐사 작업을 지휘했던 재미동포 박모 박사는 “바다 위에서 작업할 때 북한 측은 중국을 의식해 해군 함정과 공군기를 동원했다”고 회고한 적도 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이 벌어진 뒤인 올 초, 김 위원장의 네 번째 방중이 이뤄졌다. 양국은 이미 지난해 말에 일정까지 합의해놓은 상태였지만 외부 세계에선 이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특별열차를 탄 김 위원장은 단둥과 선양, 베이징을 거쳐 ‘중국 기계공업의 요람’이라는 우한(武漢)을 경유하고, 중국 남단 홍콩 인근의 광저우와 주하이, 선전을 둘러봤다. 그동안 북-중 간에 이뤄진 일련의 경제교섭을 최종 확인하는 행보로 보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를 놓고 국내 한 정보통은 “김 위원장은 중국에 춘제(春節) 인사를 간 것”이라고 촌평했다. 중국이 요구해온 개발방식을 주저해온 북한이 이번에 그 수용 의사를 확실하게 밝혔다는 의미다.

위폐 문제로 압박하던 미국은 ‘당혹’

북-중 간의 이 같은 움직임은 주변국, 특히 미국을 당혹케 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김 위원장의 방중 사실을 사전에 몰랐고, 중국 내 행적에 대해서도 거의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고 복수의 정보 관계자들은 말했다. 북-중 간의 중요한 교섭은 일반 국가들처럼 외교당국을 중심으로 이뤄지지 않고 당(黨) 대 당(黨) 차원에서 이뤄진다. 당연히 외부에선 그 은밀한 움직임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지만, 미국은 이번에 대북·대중 정보력의 한계를 절감했을 것이다.

미국은 사실 올 들어 위폐 문제를 무기로 대북 압박을 더욱 강화할 태세였다. 미 재무부가 지난해 12월 워싱턴에서 관계국을 불러 북한의 위폐 실태를 설명한 데 이어, 연초에 이미 위조달러 담당 실무팀을 한국에 보내기로 결정했었다는 게 단적인 증거다. 1월21일 국내에 입국한 이들은 애초엔 공개적인 언론 브리핑을 고려했으나 김 위원장의 방북 사실이 알려진 뒤 이를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급박하게 돌아가는 분위기는 향후 미국의 태도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러면 김 위원장의 방중을 계기로 나타날 수 있는 일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일까. 여러 정보통들은 신의주-단둥을 중심으로 한 본격적인 개발계획이 발표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원유와 무연탄, 희소 광물 등 자원개발 외에도 양국을 잇는 도로 등 인프라 구축, 양국 간 유통망 강화 등이 가시화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북한의 ‘중국식 개발방식 수용’이 곧 외부 세계가 생각하는 북한의 개혁·개방과 동의어가 될지는 좀더 두고 볼 일이다. 중국과의 경제관계가 긴밀해질수록 북한은 이를 대미(對美) 협상에 지렛대로 활용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으로 핵문제를 포함한 올해 한반도 기상도는 더욱 예측하기가 어렵게 됐다.



주간동아 2006.01.31 521호 (p28~29)

송문홍 기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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