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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드기 협박 … 만난 게 죄”

브로커 윤상림에게 마음고생한 前 고위 관료 “돈 줄 수밖에 없는 고위공직자가 밥”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진드기 협박 … 만난 게 죄”

추위가 채 풀리지 않은 2003년 2월 말 새벽 2시, 지리산 스위스관광호텔. 벤츠 한 대가 미끄러지듯 호텔로 들어섰다. 호텔 사장 윤상림 씨가 그들을 맞았다. M&A 전문가 등 5명은 “기업 인수 문제를 의논하자”는 윤 씨의 부탁을 받고 이 호텔을 방문한 것. 윤 씨는 이들을 부르면서 “내 호텔이니 아무 걱정 말고 3일 정도 푹 쉬고 놀다 가는 기분으로 내려오라”고 말했다.

새벽 2시경 차려진 음식상은 기름졌다. 토속음식 등 한정식 사이에 발렌타인 30년산이 눈에 띄었다. “오느라 고생했다. 마음껏 먹어라.” 윤 씨는 손님들에게 음식과 술을 권했다. 윤 씨는 손이 컸다. 식사를 마친 그들을 윤 씨는 지하에 있는 술집으로 모셨다. 이번에도 발렌타인 30년산 3병이 테이블에 차려졌다.

‘비싼 술을 왜 이렇게 많이 가져다 놨을까.’ 의문이 생겼지만 윤 씨는 “신경 쓰지 말고 푹 쉬다 가라”고 방문객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술을 마시려던 일행은 또 한번 멈칫했다. 3병의 술병 모두 뚜껑이 따져 있었던 것. 취기가 오른 일행은 그 술을 마시고 새벽 6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 점심시간, 윤 씨가 진면목을 드러냈다. 방문객들이 묵고 있는 호텔방문을 발로 차며 욕을 하기 시작한 것.

“×××들아, 왜 안 일어나. 점심때가 다 됐는데.”

사기, 협잡꾼에 저질 갈취범



술이 덜 깬 일행을 깨운 윤 씨는 휴지에 물을 묻혀 자신의 승용차 번호판에 던졌다. 번호판을 가린 윤 씨의 승용차는 이후 총알택시를 능가하는 속도로 지방도를 달렸다. 20여분간 달린 차는 한 음식점 앞에 멈췄다. 잉어찜과 장어구이가 나오는 식당. 사정기관의 고위 관계자를 비롯한 몇몇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윤 씨가 왜 욕설을 하며 자는 사람들을 깨웠는지 답이 나왔다.

윤 씨는 먼저 와 있던 사람들에게 “연봉 10억원이 넘는 M&A 전문가들입니다”라고 소개한 뒤 장황하게 보충설명을 했다. 그러나 윤 씨 얘기는 사실과 달랐다. 윤 씨가 M&A 전문가들의 실적을 한껏 부풀려 설명한 것.

자리를 끝낸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 “뭔가 이상하다”며 “서울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호텔로 돌아온 일행은 즉시 짐을 꾸렸다. 그때 윤 씨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의 뒤로 계산서를 든 웨이터가 들어섰다. 숙박비와 식대, 그리고 술값 총액은 350여만원. 일행이 문제를 제기했다.

“쉬고 가라고 해놓고 왜 술값을 달라고 하느냐.”

윤 씨가 말을 받았다.

“그래서 원가로만 계산했는데 뭐가 문제냐 ×××들아.”

발렌타인 30년산 3병이 문제였다. 일행은 모두 지갑을 꺼냈다. 현금 100여만원을 건네고 나머지는 서울로 돌아가 지불하기로 했다.

“진드기 협박 … 만난 게 죄”

윤상림과 돈거래를 한 것으로 알려진 최광식 경찰청 차장(왼쪽)과 전병헌 열린우리당 대변인.

윤 씨는 브로커다. 하지만 그는 여느 브로커와 다르다. 브로커라면 청탁하는 사람에게 돈을 받는다. 그 돈 가운데 일부를 자신이 갖고 나머지는 로비를 위해 쓴다. 그러나 윤 씨는 통상의 브로커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사회지도층, 특히 고위 공직자들을 상대로 돈을 받는 경우가 태반이다. 경찰청 고위 간부는 물론 판사, 고위 공무원 등이 윤 씨가 주로 상대하는 파트너들. 재계의 최고위층도 포함된다.

돈을 빌리면서 윤 씨는 상대방에게 “투자로 재산을 불려주겠다”거나 “급전을 빌려주면 이자를 붙여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윤 씨가 약속을 지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원금도 주지 않는다. 드러난 사실만 놓고 보면 그는 브로커라기보다 갈취범에 가깝다.

윤 씨를 사기, 협잡꾼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DJ 정권 시절 고위직을 지낸 A 씨가 1월18일 기자에게 털어놓은 경험.

“그 사람은 사기, 협잡꾼이다. 그 사람한테 걸려 고생한 고위 공직자들이 수십명이 넘는다. 고위 공직자에게 문제가 있거나 비리가 있다는 첩보가 있으면 이를 빌미로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웬만한 사람은 그에 못 이겨 돈을 내놓는다.”

A 씨도 윤 씨 때문에 한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다. A 씨가 윤 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00년 가을. 당시 신라호텔에서 대학원 멤버들과 조찬을 하던 그는 인근에서 식사를 하던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과 눈이 마주쳤다. 인사를 위해 권 전 고문에게 다가서는데 누군가 옆에서 ‘형님’ 하며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윤상림 씨였다.

얼마 후 A 씨는 윤 씨한테서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두어 차례 골프 모임을 가졌다.

윤 씨와 두어 차례 골프 모임을 가진 A 씨는 그 이후 과거 몸담고 있던 조직에 문제가 생겨 사정당국의 조사를 받는 위기에 몰렸다. 이를 눈치 챈 윤 씨가 전화를 했다.

“형님, 빌려간 돈 4000만원을 돌려주세요.”

야 4당 국정조사 추진 합의

A 씨는 윤 씨의 돈 요구를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표현했다. 돈거래가 전혀 없었다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A 씨는 난감했다. 공직시절 일로 사정기관의 내사를 받는 터에 윤 씨가 이런저런 말을 만들어 퍼뜨리면 자신에 대한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질 게 분명했기 때문. A 씨로서는 윤 씨에게 문제 제기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A 씨의 말이다.

“돈을 빌린 적이 없는데 돈을 달라고 하니 기가 막혔다. 돈을 주지 않자 이곳저곳 다니며 없는 말을 만들어내더라.”

윤 씨의 ‘작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A 씨는 사정기관의 내사에 대응하기 위해 가까운 학교 동창을 변호사로 선임했다. 그러자 윤 씨가 또 전화했다.

“왜 그 사람을 변호사로 쓰느냐. 고검장 출신 K 씨를 선임해라. 그 양반이 실력이 있다.”

‘위기’를 넘긴 A 씨는 그 후 정부 고위직을 맡아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런 그를 윤 씨가 다시 집적댔다. ‘씹는다’는 소리가 직·간접적으로 전해졌다. 더구나 없는 말까지 만들어 보탰다.

A 씨는 사정기관을 통해 윤 씨의 뒤를 캤다. 올라온 보고서의 결론은 간단했다. ‘절대로 가까이해서는 안 될 인물 1호’라는 것. 사정기관을 통해 ‘경고’를 보낸 A 씨는 윤 씨와의 접촉을 차단했다. 그러나 윤 씨는 끈질기게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공직을 끝낸 A 씨는 1년 정도 예정으로 외국 연수를 떠났다. 그렇지만 “왜 내 돈을 주지 않느냐. 가만있지 않겠다”는 윤 씨의 협박은 외국까지 따라왔다. A 씨는 귀국 후 윤 씨를 만나 “언제 내가 당신 돈을 가져갔느냐”고 따졌다. 이후 A 씨는 윤 씨와의 관계를 끝냈다.

“윤 씨에게 돈을 준 사람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윤 씨의 이런 협박을 이겨내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윤 씨가 고위층들에게 협박을 하며 배짱을 부릴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윤 씨와 첫 만남을 가진 고위 공직자 중에는 윤 씨를 대단한 ‘거물’로 아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이후 만남은 ‘부적절한 만남’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금전 거래가 있거나 필요 이상의 접대를 받은 경우 공직자로는 치명적 흠결이 되고 문제는 심각해진다. 윤 씨가 갑의 위치에, 공직자는 을의 위치에 서게 돼 윤 씨의 눈치를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경찰 한 관계자는 윤 씨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겠다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중심당은 1월18일 국회에서 야 4당 원내대표 회담을 열어 법조 브로커 윤상림 로비의혹 사건에 대해 공동으로 국정조사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윤 씨에게 놀아난 대한민국 고위 공직자들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주간동아 2006.01.31 521호 (p26~27)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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