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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장 떼고 한잔 ‘욕설·오버’는 안주

고관대작과 출입기자들 술자리 百態 … 속내 털어놓는 자리, 도 지나치면 화 불러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계급장 떼고 한잔 ‘욕설·오버’는 안주

계급장 떼고 한잔 ‘욕설·오버’는 안주
X도 아닌 XX 네 놈이 이 신문 저 신문 돌아다니면서 칼럼을 쓴다. 옛날 같으면 당장 구속시켰다. 나도 서울대 나왔지만 서울대 나온 XX들이 상고 나온 대통령을 조롱하고 있다. 헌법학의 기본도 모르는 XX들이 헌법 전문가입네 하고 떠들고 있다.”

최근 파문을 일으킨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술자리 발언 내용이다. 특정 언론과 특정인을 향한 욕설이 끊임없이 이어져 나온다. 평소 천 장관의 모습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수위의 발언이다.

이와 비슷한 경우는 종종 있었다(상자기사 참조).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창자 발언을 비롯해 추미애 전 민주당 의원의 욕설 발언, 이해찬 총리의 베를린 발언 등은 대부분 술을 마시고 취한 상태에서 나왔고, 그 내용은 평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져온 언론을 향한 욕설과 저주에 가까운 비판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불가근불가원 관계 적절한 활용

정치인과 장관, 검사장 등 고관대작과 출입기자는 공생관계다. 좀더 명확히 표현하자면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이다. 너무 가까우면 서로 피곤하고, 너무 멀면 서로에 대한 적절한 활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출입기자에게는 정치인이나 해당 부서 장관만한 취재원이 없고, 정치인이나 장관에게는 자신의 이미지와 업적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 기자만한 수단이 없다. 고관대작과 출입기자들의 술자리는 그래서 자주 만들어지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에피소드와 실수담, 그리고 해프닝이 벌어지는 것이다.

고관대작과 기자들의 술자리 대화는 기본적으로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한다. ‘술자리에서 한 이야기는 술집을 나서는 순간 없었던 이야기’가 되는 것이 관례다. 그래야 솔직한 속내와 편안한 술자리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자리에서 욕설은 그리 특별한 것도 아니다.

평소 행동과 발언이 유난히 자유로운 정치인 A 의원은 주당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2003년 1월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폭탄주 몇 순배가 돈 후 적당히 취기가 돌자 특유의 욕을 섞어가며 평소 소신을 적나라하게 피력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한 기자의 전언.

“A 의원은 이라크 파병과 관련해 미국에 대해 노골적으로 욕을 하면서 강하게 성토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부시 X 같은 XX, XX놈. 이라크 파병 해야지. 이라크 민중과 함께 미군을 몰아내야지. 그런데 이런 것도 기사로 쓰는 양아치 같은 놈들이 있더라.’”

그날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아무도 이를 기사화하지 않았다. 비보도를 전제로 소신을 솔직하게 이야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일정한 선이 있다. 천 장관이 이번 술자리 발언으로 곤혹을 치른 건 발언의 수위가 도를 넘었기 때문이다.

고관대작 중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술자리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평소와 다른 엽기적인 행동을 하거나 ‘오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청와대 전직 수석 B 씨의 술버릇과 실수담은 기자들과 청와대 및 검찰 관계자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이들에 따르면 B 씨는 출입기자들과 폭탄주를 마실 때마다 그만의 독특한 묘기를 보여준다. 남들과 달리 평평하면서 살짝 파인 머리 윗부분에 자신이 직접 제조한 폭탄주 잔을 올려놓고 양팔을 벌려 나비처럼 날갯짓을 하며 마실 순서가 된 사람 앞으로 배달한다는 것.

1995년부터 시작한 이래 무사고였던 그는 얼마 전 치명적인 실수로 오점을 남겼다. 2004년 6월 고건 전 총리 퇴임 술자리인지 다른 술자리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고 전 총리를 포함해 청와대 몇몇 수석들이 합석한 술자리에서 B 씨는 특유의 묘기를 보여주다 그만 술잔을 떨어뜨리는 ‘낙주사고’를 내고 만 것이다. 그날 참석했던 인사들은 B 씨의 묘기를 보고 폭소를 터뜨리다가 ‘낙주사고’에 자지러졌다는 후문이다. B 씨는 그 직후 물의를 빚은 데 책임(?)을 통감하고 다시는 폭탄주를 머리로 돌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술자리 발언 파문 일지

。이해찬 총리(2005년 10월19일 독일 베를린 특파원 및 동행기자 간담회)
“동아·조선은 역사에 반역하지 말라. 정권을 농락하지 말라. 노무현 대통령이나 나나 끝까지 맞서 싸울 것이다. 동아·조선은 내 손안에 있다.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은 용서해도 지금도 계속되는 조선의 역사에 대한 반역죄는 용서 못한다.”

。추미애 민주당 의원(2001년 7월6일 서울 광화문 한정식집 출입기자 간담회)
“이문열 같은 가당찮은 놈이 X 같은 조선일보에 글을 써서….”
(인터뷰 중 어떤 부분을 쓰느냐는 기자의 몫이고, 기사 비중은 회사에서 판단한다는 동아일보 기자의 발언에 대해)
“회사가 판단해? 그러면 사주의 지시냐? 이놈, 이 XX, 한심한 기자….”

。진형구 대검찰청 공안부장(1999년 6월7일 서울 서초동 대검 사무실을 방문한 기자들에게)
(점심때 마신 폭탄주로 취기가 남은 상태)
“조폐공사 파업은 사실 우리(검찰)가 만든 것이다. 공사 같은 곳의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점이었는데, 어떻게 할까 하다가 거기(조폐공사 노조)에서 조짐이 있어 우리가 아래에 지시해 복안을 만들었다. 사실 우리가 유도한 거다. 강희복 사장(조폐공사)이 고교 후배인데, 얘기가 통하더라. 그래서 옥천에서 경산으로 기계도 옮기고…. 공기업 파업에 ‘우리가 이렇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그랬는데, 그쪽(노조)이 너무 일찍 손을 들고 나와버렸다. 그게 잘됐으면 지하철 파업도 없었을 텐데….”

。이회창 신한국당 총재(1997년 7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중국요릿집 출입기자 간담회)
(일부 언론사 기자를 향해) “내 기사 잘 써줘, 그렇지 않으면 자네 창자를 뽑아버리겠다. …씨를 말려버리겠다.”


계급장 떼고 한잔 ‘욕설·오버’는 안주

김혁규 의원, 이해찬 국무총리

폭탄주를 무척 선호하는 B 씨에 대해 문재인 민정수석은 기자들과 사석에서 “그는 폭탄주를 너무 좋아해 자녀들도 집에서 콜라하고 사이다를 섞어 마신다더라”고 평해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사람이던 전직 정치인 K 씨도 술버릇이 유별나기로 유명하다. 용산의 한정식집이 단골인 그는 적당히 술이 들어가면 곧바로 심하게 망가지는 스타일이다. 머리에 넥타이를 두르고 바지를 벗은 채 팬티 차림으로 술 마시는 것을 즐긴다는 게 그와 자주 동석했던 한 중견기자의 전언이다. 고향이 경상도인 K 씨의 애창곡이 ‘내 고향은 충청도’라는 것도 특이사항.

국회부의장까지 지낸 전직 정치인 K 씨는 술에 취하면 옆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의 손가락을 깨무는 버릇이 있다. 그의 옆에 앉은 기자들은 손가락을 조심해야만 한다. 긴장을 늦추는 순간 어김없이 K 씨의 선명한 이빨 자국이 손가락에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K 씨도 70세가 넘는 고령에 접어들다 보니 요즘은 과도한 술자리를 피해 과거의 술버릇은 보기 힘들어졌다고 한다.

아무리 술이 센 기자라도 폭탄주의 융단폭격을 버티는 데 한계가 있다. 간혹 고도로 계산된 정치인의 분위기 띄우기에 무의식중에 편승하는 경우가 있다.

2001년 여름, 당시 이회창 총재는 공천 물갈이에 대한 박근혜 의원을 중심으로 한 반대파의 반발을 평정한 직후 한나라당 출입기자들과 저녁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당과 이 총재에 대한 지지도가 1위를 차지하자 한껏 고무된 이 총재는 식사 초반부터 폭탄주를 거세게 돌리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합석했던 이 총재 측근들이 ‘이회창! 이회창!’을 외치며 분위기를 띄웠고, 취기가 오른 한 기자는 ‘이회창 만세!’를 외치며 이 총재를 등에 업고 술자리를 한 바퀴 도는 촌극을 벌였다. 마치 대선에서 승리한 것처럼. 이 기자는 결국 소속 언론사에서 징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관대작들 중에는 술깨나 마신다는 기자들도 두려워하는 ‘주신(酒神)’이 있다. 열린우리당 김혁규 의원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무자비하게 돌리는 ‘살인 폭탄주’로 유명한 그는 한번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끝장을 본다. 그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다.

살인 폭탄주 … 텐텐주 악명(?) 높아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방문 마지막 날 일정을 모두 마친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이 모스크바의 한 한국 식당에서 동행 취재한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저녁식사를 사기로 했다. 그런데 식사를 마칠 무렵, 노 대통령과 동행한 김혁규 의원이 일부 장관과 함께 양손에 양주를 들고 씩씩하게 식당 안으로 들어오는 게 아닌가. 대부분의 기자들이 그 자리를 피하고, 식사 이후 이어진 술자리에 남은 기자는 두세 명뿐이었다.

‘폭탄주의 원조’로 자처하는 박희태 국회 부의장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폭탄주를 돌리는 스타일이다. 또 그와 처음 술자리를 한 기자들은 어김없이 ‘폭탄주의 기원’에 대한 강의를 들어야 한다. 그런 그가 집에서는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는다. 실제로 박 부의장은 1월1일 신년을 맞아 개방한 집을 찾은 기자들에게 술을 권하면서도 자신은 “집에서는 마시지 않는다”며 기자들의 권유를 모두 거절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애처가? 아니면 공처가? 기자들 사이에선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전·현직 검찰 고위급 인사 중에도 주신급 주당들이 많다. 이들 중 요즘 검찰 출입기자들이 기피인물 0순위로 꼽는 인물은 바로 C 지검장이다.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C 지검장은 기자들이 한잔하자고 하면 허름한 그의 단골 카페로 데리고 가서 아예 문을 잠가놓고 폭탄주를 돌린다. C 지검장은 대부분의 술자리에 그가 만들어놓은 악명 높은 ‘폭탄주 3대 원칙’을 적용한다. 화장실에 가면 벌주 한 잔, 폭탄주 한 잔을 세 모금에 다 마시지 못하면 벌주 한 잔, 일대일로 마셔서 늦게 마시는 사람도 벌주 한 잔. 폭탄주의 비율은 속칭 ‘텐텐(ten-ten, 양주 가득 한 잔+맥주 가득 한 잔)’이다.

한 대검 출입기자는 “얼마 전 C 지검장의 악명을 미처 모르는 일부 기자들이 그에게 한잔하자고 했다가 술 마시기 시작한 지 2~3시간 만에 전멸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C 지검장과 술 마신 기자들은 두 번 다시 마시자는 소리를 못한다”고 전했다. 기자들 사이에서 C 지검장은 필리핀의 반군 지도자 ‘호나산 대령’으로 통한다.

고관대작과 출입기자들 간의 술자리에서는 이처럼 다양한 일들이 벌어진다. 따지고 보면 고관대작과 기자들 간의 술자리라고 해서 일반인들의 술자리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다르다면 공(公)과 사(私)가 충돌하는 공간이라는 것. 이 때문에 지나친 인신공격이나 저주에 가까운 비판, 폭력행사 등 ‘주도(酒道)’를 벗어나는 순간, 사적인 자리에서의 발언이나 행동이라도 곧바로 공적인 문제로 비화하는 것이다.



주간동아 2006.01.31 521호 (p22~24)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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