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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Ⅰ|정치부 기자 대상 여론조사

李 청계천, 鄭 6자 회담 덕 ‘톡톡’

유력 대선후보로 손꼽힌 이유 … 시장·장관직 무난한 수행과 기자들과의 원만한 관계도 작용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李 청계천, 鄭 6자 회담 덕 ‘톡톡’

李 청계천, 鄭 6자 회담 덕 ‘톡톡’

열린우리당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는 정동영 상임고문.

주간동아’가 각 언론사 정치부 기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빅 매치의 주인공은 열린우리당 정동영 상임고문과 한나라당 이명박 서울시장으로 압축됐다. 이는 일반인들을 상대로 한 여타 여론조사 결과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이번 여론조사 결과는 정치권 사정에 정통한 정치부 기자들의 날카로운 현실 인식과 취재과정을 통해 확보한 정보가 녹아 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기자들의 취재 노트에 숨어 있는 정 고문과 이 시장의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정치부 기자들은 두 사람의 어떤 점을 보고 그들을 선택했을까.

이 시장은 하루 종일 바쁘다. 5분 단위로 스케줄이 잡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 시장과 면담을 하려는 기자들이 줄을 서지만 그를 만난 기자는 많지 않다.

이 시장, 원칙 있는 인사와 근면성에 직원들도 혀 내둘러

이 시장의 성격은 독특하다. 다정다감한 스타일이 아니다. 포항 출신인 그는 무뚝뚝한 편에 가깝고 본인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80년대 그가 재계에 몸담았던 시절을 취재했던 중견 기자들은 하나같이 불도저, 밀어붙이기, 독선 등 강성 수식어를 먼저 떠올린다.



정치권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도 그는 이 이미지와 습관을 버리지 않았고 자기 고집대로 밀고 나갔다. 그 과정에 ‘사고’도 쳤다. 1996년 총선 부정선거와 관련, 자기 식대로 해결하다 문제를 키웠던 것.

그러나 2002년 여름 서울시청 문을 들어선 그는 기자들 사이에 만연했던 ‘밀어붙이기식 경제관료’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서서히 걷어냈다. 주변의 요구도 컸지만 재계와 정계의 차이점을 인식한 결과 자연스럽게 나타난 변화라는 게 그를 지켜본 고참 기자들의 평가다.

이 시장은 말보다 행동으로 기자들의 신뢰를 쌓았다. 서울시에도 산하기관장이나 자문위원, 감사, 부사장이나 부위원장 등 시장이 마음만 먹으면 선심을 쓸 수 있는 임명직 자리가 많다. 이 시장은 그러나 누구에게서 추천이 들어와도 전문성이 없거나 자리에 적절한 인물이 아니면 과감히 거절했다. 이 때문에 아직도 공석으로 남아 있는 자리가 적지 않고, 인사에 관한 한 ‘칼’이라는 기자들의 평가가 덤으로 따랐다.

하루도 그냥 넘기지 않는 그의 근면·성실성에 기자들은 혀를 내두른다. 이 시장은 대부분의 출장을 주말을 끼고 잡아 평일 출장일수를 줄이고, 돌아오는 날도 새벽 3~4시경에 도착하도록 조정해 집에 잠시 들렀다가 곧바로 출근하는 강행군을 지속해왔다.

업무도 상당히 합리적으로 추진한다. ‘무대포’로 알려졌던 것과는 달리 사안마다 ‘되는 일인지 안 되는 일인지’ 앞뒤를 계산하고 누가 봐도 논리적으로 이해가 가는 수준에서 일을 진행시켰다는 게 시청 출입기자들의 평가다.

李 청계천, 鄭 6자 회담 덕 ‘톡톡’

서울시청 간담회장에서 동아일보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명박 서울시장.

서울시청 한 출입기자는 이 시장의 업무추진 방식에 대해 “‘쪽팔리다’는 것이 뭔지를 아는 사람이다. 말이 안 되는 것을 무조건 밀어붙인다든가 말을 쉽게 뒤집지도 않았다”면서 “그런 측면에서 기자들에게서 인정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시장은 간혹 있는 기자들과의 회식자리도 가급적 끝까지 자리를 지키려 노력한다. 기자들의 신뢰가 그 속에서 자연스레 쌓였다는 것.

물론 이 시장을 대신해 기자들을 관리하는 조직이 없는 건 아니다. 정무팀 소속 특보와 공무원들은 출입기자들과 지속적으로 접촉했고, 민원담당비서관은 한나라당 출입기자들을 관리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 시장은 언론사 사주와의 만남 등 주로 ‘고공 플레이’에 시간을 할애했다. 이 시장에 호의적인 언론사는 물론 비판적인 언론사의 경영진과 간부들과도 만나 사안에 따라 적극 협조하는 행보를 이어왔다.

그 결과는 이 시장의 임기 내 최대 치적으로 평가받는 청계천 복원에 대한 언론의 보도태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청계천 복원에 대한 언론의 관심과 보도는 지나칠 정도였다. 하지만 “‘뉴스’가 되기에 충분했고, 청계천은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주장에 반박 논리를 펴기가 쉽지 않다.

한 정치부 기자는 이 시장의 지지도 급상승에 대해 “언론사 관리를 잘해서 자신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는 줄이고 청계천과 같은 성과물에 대한 대대적인 보도를 이끌어낸 것과 함께 경제적 능력이 있는 인물을 찾는 시대의 요구와도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여론에 민감한 한나라당과 달리 서울시장의 위치가 외풍을 잘 타지 않는 것도 그의 지지도를 끌어올리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정 고문, 남북관계 개선에 일관성 유지 … 북핵 해법 가닥 잡아

이 시장이 서울 시정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면, 정동영 상임고문은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통일 지도자란 이미지를 쌓는 데 성공했다. 정 고문은 통일부 장관 임명 직후부터 2005년 9월19일 ‘6자 회담 합의문’이라는 성과를 얻어내기까지 철저히 정중동의 행보를 걸었다. 언론과의 인터뷰는 물론 기자들과의 접촉도 크게 줄였다.

6자 회담이 중단된 2004년 6월 이후 남북관계는 물론 북미관계는 오랫동안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답보상태에 빠졌다. 정 고문의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아무런 성과를 이루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정치권으로 복귀한다는 것만큼 최악의 시나리오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6자 회담 합의문은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날 이후 정 고문은 언론과의 인터뷰와 함께 강연 등 대국민 접촉을 크게 늘렸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정 고문의 행보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일부 기자들은 “장관으로서의 사명감보다는 당으로의 화려한 복귀를 위해 장관직을 이용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한다. 일례로

6자 회담 합의문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에서 임의적으로 기자와 참석자들의 박수를 유도하는 등 그동안 비판받아 왔던 가식적 행동을 또다시 보였기 때문이다.

반면 일부 기자들은 “몇 차례 의도적인 행동을 취한 적은 있지만, 대권 행보로 오해받지 않고 ‘이미지 정치인’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씻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남북관계에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통일부 한 출입기자는 “장관 재임 초기 수백명의 탈북자를 받아들여 남북관계가 경색돼 상당히 어려운 처지에 놓였는데, 끝까지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남북관계를 정상화한 점은 높이 살 만하다. 또 6자 회담을 통해 북핵문제 해법의 가닥을 잡은 것도 그가 쌓은 업적이다”라고 분석했다.

비판적인 기자들 중에도 “한미관계나 북핵 문제 등에서 전략적으로 아쉬움은 남지만 과거에 비해 안정감이 생겼다”며 정치인으로서 전보다 나아진 측면을 인정했다.

정당과 통일부를 오가며 오랜 기간 정 고문을 취재한 한 정치부 기자는 정 고문의 장관 재임 기간 중의 대권전략을 이렇게 분석했다.

“정 고문은 열린우리당 자체의 지지도를 올리기보다 기존의 당 지지층을 모으는 데 주력했다. 남북관계나 한미관계를 풀어가는 데 다소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기존 지지층이 선호하는 말과 정책을 고수했다. 그동안 불허했던 아리랑 공연이나 장기수 방북을 허용한 것이 그 예다.”

기자들이 여당의 대권후보로 정 고문이 선출될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 것은 바로 이런 부분까지 반영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주간동아 2006.01.31 521호 (p16~17)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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