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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음식점 ‘도청과 전쟁 중’

X파일 이후 너도 나도 도청방지 장비 설치 … 유력 인사들 “여전히 정보 수집” 불안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유명 음식점 ‘도청과 전쟁 중’

유명 음식점 ‘도청과 전쟁 중’

앞다퉈 도청방지 장비를 설치하고 있는서울시내 유명 한정식집들.

야당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단골 밥집으로 유명한 서울 평동 한정식집 ‘수정’(사장 신수정)이 안기부 X파일이 공개된 직후 중대결단을 내렸다. 도청방지 장비 회사에 ‘도청 클리닉’을 신청한 것. 신 사장의 설명이다.

“방송과 언론에서 도청 문제가 터져나오면서 손님들이 ‘이곳도 도청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를 표명,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도청 클리닉을 신청했다.”

신 사장은 클리닉 결과에 따라 도청방지 장비 설치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그는 “주변의 많은 음식점들이 최근 도청방지 장비를 구입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지적대로 최근 서울시내 유명 한정식집을 비롯해 대형 식당들이 도청과의 전쟁에 나섰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찾는 손님들이 도청 공포를 털어놓고 있어 이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최첨단 도청감지기를 구입, 설치하고 있는 중이다.

한정식집 ‘장원’(서울 종로구 필운동)도 최근 안기부 X파일이 던진 후유증을 견디다 못해 도청과의 전쟁에 나섰다. 장원 측은 도청 유무를 확인하는 장비를 직접 구입, 수시로 점검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최근 언론에서 보도되는 내용을 들은 손님들이 도·감청 문제에 예민해한다”며 도청감지기 구입 배경을 설명했다.

손님들 도·감청 문제 예민한 반응



인근의 유명 한정식집 Y의 경우 최근 정치권 인사와 기자들이 찾아와 “과거 수시로 안기부의 도청장치가 설치되었던 집”이라고 알려와 혼비백산, 도청 클리닉을 신청했다. 한 관계자는 “사실 여부를 차치하고 그런 소문이 나면 누가 찾아오겠느냐”며 손사래를 쳤다. 이 식당 일부 종업원들은 도·감청 기계의 설치 및 적발 방법과 관련, 도청방지 전문업체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이들은 교육을 통해 실내용 대화 도청기나 야외용 고성능 마이크를 비롯해 만년필 뚜껑이나 반지 안에 숨기는 도청기, 전원 콘센트에 내장된 내장형 도청기 등 수없이 많은 도청기들이 음식점을 위협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도청에 대한 공포는 유명 호텔의 음식점도 마찬가지. 서울 중구 프라자호텔의 중식당 ‘도원’. 평소 중국대사관 직원들과 외교관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 유명한 이곳도 도청방지를 위해 호텔 차원의 보안작업을 하고 있다. 도원 한 관계자는 27일 전화통화에서 “호텔 통신실에서 도청감지기를 가지고 주 1회 이상 도·감청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은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룸 등의 도·감청 여부를 집중 점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한 관계자는 “외교가 등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경우 특히 도·감청에 대해 예민해한다”며 “그들에게 식당의 룸은 안전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도·감청 감지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명 음식점 ‘도청과 전쟁 중’

도청검색 전문업체 코세스코리아 한 직원이 도청 여부를 검색하고 있다.

삼성 계열사 임원 및 정치권 인사들이 즐겨 찾는 신라호텔 중식당 ‘팔선’도 과거보다 훨씬 강화된 시스템으로 도청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팔선 측 한 관계자는 특히 이번 X파일의 진원지가 신라호텔인 점이 부담스러운 듯 “호텔 차원에서 도청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며 일방적 도청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정치인들이 자주 찾는 서울 여의도 음식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국민일보 사옥의 서울시티클럽의 경우 회원제로 운영, 일반인들의 출입이 상대적으로 적다. 이 때문에 정치인들이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박근혜 대표는 이 건물 지하의 한식당(운산)을 자주 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의도 63빌딩 내 거버너스챔버의 경우 여의도 유력 인사들이 두루 자주 들르는 곳. 역시 같은 건물의 일식당 ‘와꼬’는 이만섭 전 국회의장 등 원로 정치인들이 자주 찾는다. 이들 식당 가운데 상당수는 오래전부터 도·감청 등에 대해 정기적으로 점검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청검색 전문업체인 코세스코리아 백봉현 사장은 “보통 도·감청 확인 비용은 평당 1만원대”라고 말했다.

음식점의 이런 눈물겨운 노력에도 정·관계 인사들은 언제 어디서 자신들의 대화가 새나갈지에 대한 부담감을 떨치지 못하는 눈치다. TK 출신 한 인사는 7월26일 정·관계에 포진한 고교 선후배들과의 만찬장소로 평소 자주 찾던 인사동 한 한정식집을 예약했다. 사장이 동향이라 평소 신뢰하던 집이지만 이날 참석자 가운데 상당수가 “왜 하필 그곳 한정식집이냐”며 문제를 제기, 급히 서울 마포의 한 이름 없는 중국집으로 장소를 바꿔 행사를 치렀다. 정치인들과 관계 인사들의 이런 불안감은 사실 뿌리가 깊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도청 등으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을 목격한 경우도 있다. 26일 행사에 참석하려던 한 고위 공무원은 “인사철이 되면 상사들의 이런저런 이력과 경력이 나도는데 술집에서 잡담처럼 한 얘기가 꼬리처럼 붙어다닐 때가 많다”면서 “경우에 따라 이런 출처 불명의 정보 첩보가 그 사람의 인사를 좌우할 때도 많다”고 말했다.

정치권 식사·음주 문화 변화

일부 정치인들은 ‘아직도’ 24시간 도청에 노출돼 있다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특히 정치적 활동 공간이 클수록 그의 주변을 감시하는 눈길과 수단이 더 많아진다고 본다. 국민의 정부 2인자로 군림했던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은 늘 정보기관 등의 촉수가 따라붙는다는 전제 아래서 약속을 잡고 이에 따라 적절한 대안을 마련했다. 권 전 고문은 약속 장소에 도착, 갑자기 예약한 방을 다른 방으로 바꾸는 경우가 허다하다. 도청과 관련한 피해의식 때문이다. 그의 한 측근은 “당시 청와대 등지에서 그의 움직임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해 도청에 대한 공포감이 엄청났다”고 말했다. 안기부 X파일의 최종 배달자로 거론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도 “오히려 도청당했다”고 항변한다. 그의 한 측근은 “당시 이곳저곳에서 김 소장(현철 씨)의 동선을 체크, 움직이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대구지법 형사6단독 김영준 판사는 7월23일 불법도청 사건으로 기소된 민주당 이정일 의원에 대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다. 그가 의원직을 잃을 위기에 몰린 것은 바로 총선 때 측근들이 자행한 도청 때문이었다.

정치인들은 ‘도청은 없다’는 현 정부에 대해서도 100% 신뢰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존안카드 인사철 등에 나도는 얘기를 종합해보면 술집과 밥집에서 나눈 사적 대화나 험담, 실수 등이 기록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정·관·재계의 유력 인사들이 즐겨 이용하는 고급 음식점 등은 여전히 주요한 정보수집처로 활용되지 않겠느냐”고 의혹을 제기한다. 과거처럼 불법이 아니라 하더라도 고위공직자 등의 동정은 계속 점검되고 있다는 것이다. 안기부 X파일과 미림팀의 실체를 처음 공개한 전 국정원 직원 김기삼 씨는 전화통화에서 “미림팀 공운영 팀장은 식당이나 요정, 술집 등의 사장과 종업원을 자기 사람으로 포섭하는 데 천재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능력이 뛰어났다”고 말했다.

X파일의 등장은 밥과 음주 문화에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이미 백세주와 식대 3만원 상한선이라는 노무현 정부의 음식문화로 인해 밥집과 술집 문화는 한바탕 홍역을 치른 상태. 그 뒤를 X파일이 후려친 격이다. 이 때문에 일부 음식점은 주요 고객이 물갈이되는 경우도 있다. 신문로 한정식집 ‘미당’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손님이 자연스럽게 물갈이되더라. 특히 도청 등이 문제가 되면서 정·관계 인사들이 거의 오지 않는다. 요즘 손님의 95%는 주변의 샐러리맨들이다. 이들은 도청에 대해 그다지 민감해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권위주의와 보스정치의 이면이었던 요정문화도 사라지고 있다. 안기부 X파일이 몰고 온 유일한 순기능이 아닐까.



주간동아 2005.08.09 497호 (p72~73)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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