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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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여, 디자인을 따르라”

기술성과 디자인의 미학성 ‘관계 역전’ … 제품 성능은 평준화, 디자인은 차별화 심해져

  • 중앙대 겸임교수 mkyoko@chollian.net

    입력2005-07-28 15: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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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이여, 디자인을 따르라”

    ‘Digital Design A to Z’에 소개된 프리젠테이션용 노트북.

    그림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역사화, 인물화, 정물화, 풍경화와 같은 세계의 그림이다. 오랫동안 예술은 ‘자연의 모방’으로 여겨져왔다. 그럼 추상화는 어떤가? 언뜻 보기에 아무것도 묘사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추상화도 어떤 의미에서는 세계의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추상화가들은 감각적 대상의 바탕에 깔려 있는 어떤 근원적 형태를 가시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는 다른 종류의 그림도 있다. 가령 건축 설계도면이나 제품의 제작도면을 생각해보라. 이런 것은 ‘세계’의 그림이 아니라,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의 머릿속에 든 ‘생각’의 그림이다. 생각은 도면으로 옮겨진 뒤 건축이나 제품으로 실현된다. 이미 있는 세계를 베끼는 게 아니라 아직 없는 세계를 있게 하는 이 ‘생각의 그림’. 이를 흔히 ‘디자인’이라 부른다.

    오랫동안 디자인은 회화에 비해 격이 떨어지는 것으로 여겨져왔다. 이 편견은 회화란 예술에, 디자인은 기술에 속한다는 관념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예술과 기술의 격조를 가르던 경계선은 흐려지고 있다. 예컨대 60년대에 ‘팝아트’를 들고 나와 현대예술의 획을 그은 미국의 작가 앤디 워홀. 광고사진을 닮은 작품을 만든 그는 전직이 광고 디자이너가 아니었던가.

    예술이 된 기술

    “예술과 디자인을 굳이 구분해서 설명하는 일은 그리 중요한 것 같지 않다. 우리는 일상에서 경험하는 멋진 디자인을 ‘예술’처럼 이해하고 그것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 김영세가 쓴 ‘이노베이터’라는 책에 나오는 말이다. 그는 빌 게이츠가 극찬한 MP3 플레이어 ‘아이리버’를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하다.

    서울대 미대의 김민수 교수는 언젠가 “디자인에 관한 논의를 인문학의 중요한 콘텐츠”로 흡수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순수예술에 대한 철학적 논의는 ‘미학’이라는 별도의 학문이 있을 정도로 풍부하나, 디자인에 관한 인문학적 논의는 그동안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여기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아이리버’의 디자이너는 이렇게 말한다.

    “논리와 감성의 균형을 완벽하게 유지해야만 좋은 디자인이 나오는 것이다. 포스쉐를 보면서 나는 ‘디자인은 감성의 논리학이다’는 말을 실감하곤 한다.” 여기서 ‘감성의 논리학’이라는 말에 주목해보자. 공교롭게도 이는 ‘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독일의 철학자 바움가르텐이 내린 미학의 정의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그렇다면 디자인이야말로 그 자체가 미학이 아니겠는가?

    “기술이여, 디자인을 따르라”


    “기술이여, 디자인을 따르라”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와 결합된 아이리버 MP3 플레이어 IFP-1000.

    디자인이란 제품이 충족시켜야 할 기능과 그것의 실현에 필요한 기술, 이 두 가지를 아름다운 형(形)으로 결정화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기능을 실현하는 기술은 그동안 비약적으로 발전해왔다. 도처에 아직 사용되지 않은 기술이 널려 있고, 그것은 실용화를 기다리고 있다. 디자인의 세계가 펼쳐질 비옥한 토양이 이미 형성돼 있는 것이다.

    “기술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 문제는 수많은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여 어떤 콘텐츠로 만드는지에 달려 있다. 다양하고 융합이 가능한 기술을 소비자에게 쉽고 편리하게 전달하는 방식이 바로 디자인이다. 즉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의 진짜 이슈는 누가 창의적인 스토리를 ‘먼저’ 만들어낼 수 있느냐 하는 데 달려 있다.”

    작곡가는 음표를 조합해 곡을 만들어내고, 소설가는 낱말을 이어 텍스트를 짠다. 마찬가지로 기술은 디자이너의 레퍼토리이고, 그 레퍼토리들을 짜서 창의적인 스토리를 만드는 게 바로 디자인이다. 한마디로 디자인은 기술을 재료로 한 예술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디자인이 창의적인 스토리텔링이 될 때, 그것은 의미와 상징의 차원을 획득하며 인문학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된다.

    미학성과 기술성

    어떤 기능을 가진 물건을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기술적 가능성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형(形)이라도 기술적으로 실현이 불가능하다면 소용이 없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디자인의 미학성은 기술성에 종속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기술적 난점이 극복되면, 디자인의 미학성과 기술성 사이에 전도현상이 일어난다.

    “디자인이 새로운 기술을 제안하고 실현하는 데 앞장서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디자이너라면 기존 시장에 없는 새로운 상품을 제안해내야 하는데 때로는 기술이 미처 쫓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있기 때문이다.”

    미학이 기술을 끌고 나가는 대표적인 예로 MP3 업계에서 전설처럼 회자되는 얘기가 있다. MP3를 프리즘 형태로 디자인해놓았더니, 엔지니어들이 이를 기술적으로 풀어내는 데 고생을 했던 모양이다. 고민 끝에 기술진이 경영진을 찾아가 제품 사이즈를 1mm라도 늘려줄 수 없냐고 했더니, 그때마다 그 회사의 경영진은 이렇게 잘라 말했다고 한다. “구겨넣어!”

    블랙박스

    중세의 장인들은 물건을 만들 때 성직자들의 견해를 참조했다. 값진 공예품의 주문자는 주로 교회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때 공예품의 형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성직자들이었다. 하지만 르네상스 이후에 장인들은 시장을 위한 생산을 하게 된다. 시장 소비자들은 미리 형을 주문하지 않고, 이미 완성된 형을 사후적으로 ‘선택’한다. 이때부터 장인들은 제품의 형을 결정하는 것은 자신이라는 의식을 갖게 된다. 중세 장인이 현대적 의미의 디자이너가 된 것이다

    “기술이여, 디자인을 따르라”
    “기술이여, 디자인을 따르라”

    태극 문양의 도자기 세트(좌측). 쌈지의 텅 슈즈.

    현대에 들어와 제품 제작은 분업화된다. 하나의 제품을 만드는 장인의 작업도 여러 개로 쪼개지고, 디자인은 그중의 단지 한 부분으로 자리를 잡기에 이른다. 분업화한 디자이너는 다시 주문자의 요구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어렵게 얻은 자율성이 다시 사라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최근 여기에도 역전현상이 일어나는 모양이다. 디자인이 외려 주문자의 요구를 앞서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영세는 ‘블랙박스’라는 새로운 디자인 방식을 제안한다. 블랙박스란 “클라이언트의 구체적인 디자인 의뢰를 받지 않고도 가까운 미래의 소비 시장을 예측, 디자이너가 먼저 상품을 제안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실제로 LG 스마트폰을 만들 때 그와 디자이너들은 “계약이 체결되기 전부터 회사의 주문을 기다릴 필요 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로 앞서 나갔다”고 한다.

    제품과 제품 사이

    소스타인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에서 상류층은 물건을 사용가치로 소비하기보다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기호’로 소비한다고 말했다. 100여년 전에 상류층의 소비행태였던 것이 오늘날에는 대중의 소비행태가 되었다. ‘기호의 경제학’에서 장 보드리아르는 현대의 소비자는 상품을 기호로 소비한다고 말한다. 10년 쓸 수 있는 휴대전화를 1년 만에 갈아치울 때, 우리가 지불하는 돈의 90%는 기호를 사는 데 들어갔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소비자는 사용가치를 소비하는 게 아니라 제품과 제품의 차이, 상품과 상품의 사이를 소비한다. 바로 그 ‘사이’ 혹은 ‘차이’를 만드는 데 점점 더 결정적인 구실을 하는 것이 바로 디자인이다. 10여년 전 대우전자 슬로건은 ‘탱크주의’였다. 당시만 해도 ‘탱크처럼 튼튼하다’는 것이 제품의 우수성을 가리는 기준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어떤가? ‘탱크주의’라는 말은 우악스러움을 넘어 무식하게까지 들린다.

    과거 소비자에게는 ‘브랜드’가 중요했다. ‘브랜드’가 제품의 우수한 성능을 말해주는 지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제품의 성능은 급속히 평준화하고 있다. 아무리 새로운 제품도 불과 몇 달 만에 비슷한 성능을 가진 다른 제품의 도전을 받는다. 성능만으로는 비슷한 제품의 홍수 속에서 변별성을 갖기 어렵다. 그래서 제품들의 차이는 점점 더 디자인에 따라 결정되는 경향이 생긴다. 한마디로 “브랜드의 구속력이 약해지고 디자인의 구속력이 강력해지고 있는 것이다.”

    디자인의 존재미학

    김영세 대표에 따르면 오늘날 디자인은 기업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매체가 되었다고 한다. “회사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CI 작업이나 홍보, 광고 등 엄청난 노력을 하는 경우는 많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이 생산하고 있는 상품 디자인에는 기업의 철학이 담겨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앞서가는 선진 기업은 제품을 통한 기업의 이미지 전달에 디자인의 기초를 두고 있다.”

    얼마 전 삼성이 밀라노에서 ‘디자인 선언’을 한 것은 아마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미래의 진로를 디자인에서 찾았다는 점에서 삼성은 과연 앞서가는 기업이다. 하지만 그 장한 선언을 하기 위해 패션 도시 밀라노까지 날아간다는 발상의 진부한 상투성은 과연 삼성의 디자인에 앞으로 어떤 철학이 담길지 적이 의심스럽게 한다. 참고로 ‘소니’는 일본의 전통 디자인을 현대화하는 쪽으로 제품 디자인의 방향을 잡았다고 한다.

    ‘스타일, 그것이 인간이다’라는 프랑스 속담이 있다. 디자인을 통한 정체성의 형성은 기업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자신의 정체성을 아름답게 형성해나가는 디자이너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디자인은 존재미학으로 확장된다. 언젠가 철학자 니체가 예언한 예술가적 인간의 시대, 그 시대가 디자인의 형태로 이미 우리 눈앞에 와 있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멋있게 디자인하는 유능한 디자이너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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