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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人기행(23)|우암 송시열

정직을 맹세하는 깨끗한 차 한잔

김장생 문하에서 공부하며 차와 인연 … 조선 주자학 최고봉 ‘宋子’ 칭호 받아

  • 정찬주/ 소설가

정직을 맹세하는 깨끗한 차 한잔

정직을 맹세하는 깨끗한 차 한잔

우암 송시열이 제자를 가르쳤던 남간정사.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이다. 당파에 따라 칭송과 비판이 극명하게 갈리는, 조선 후기의 학자 우암 송시열의 생애도 그렇다. 그러나 서인의 영수였던 송시열은 사후에 그를 제향하는 서원이 전국적으로 70여 개소, 사액서원만도 37개소에 이르게 되었고 영조 20년에는 문묘에 배향됨으로써 당파 간의 상반된 평가를 잠재운다.

우암이 차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그가 김장생의 문하에 들어가 공부하면서부터였다. 잘 알다시피 김장생은 예학을 정립한 자신의 저서 ‘가제집람’에 차를 다루는 지식도 정리해놓았을 뿐 아니라 차 심부름을 하는 다동(茶童)을 두고 차 살림을 했다. 그러니 스승의 예학을 충실하게 발전시킨 우암도 자연스럽게 차 살림을 했을 터다. 우암은 자신의 문집인 ‘송자대전(宋子大全)’ 권78서에 다음과 같이 차를 권장하는 글을 남기고 있다.

‘우리나라는 차에 대한 풍속이 없다. 그래서 숭늉으로 이를 대신할 수밖에 없으니 부득이한 일이다. 이를 이른바 손(飡)이라 하는데, 이는 밥을 물에 만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번거로우니 차를 사용하는 의례를 따르도록 하고, 밥을 물에 말지 않도록 하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당쟁 한복판 파란만장한 생애

제사 때 번거로움을 피해 밥을 물에 마는 ‘손(飡)’을 차(茶)로 대신하라는 권유는 스승 김장생의 영향을 받은 것이겠지만, 우암 자신도 이미 차의 정갈한 맛을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제사에서는 정성이 최고의 덕목인 바, 차야말로 제사상에 올라가는 어떤 음식보다도 맑고 향기로운 재물이 된다.



우암은 충청도 옥천군 구룡촌 외가에서 태어나 26세 때까지 살았다고 한다. 학문은 8세 때 친척인 송준길의 집에서 시작하여 12세 때는 부친에게서 ‘격몽요걸’ 등을 배우며 주자, 이이, 조광조 등을 마음에 새긴다. 혼인한 뒤부터는 김장생 문하에 들어가 예학을 배우고, 김장생이 죽고 난 뒤에는 김집(김장생의 아들) 밑에서 학문을 마쳤다. 27세 때 생원시에 장원급제했고 곧 봉림대군(효종이 임금이 되기 전의 이름)의 사부가 되어 깊은 관계를 맺었다.

이후 봉림대군과 소현세자가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가자, 우암은 낙향하여 10여년 동안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한다. 훗날 효종이 즉위하자 우암은 다시 관직에 나아가 효종과 은밀하게 독대하며 북벌 의지를 다진다. 효종은 대군 시절 병자호란의 치욕을 갚고자 하는 원한이 깊었고, 우암은 명나라의 주자학을 신봉하고 실천하는 차원에서 청나라를 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김자점 일파가 이를 청나라에 밀고함으로써 북벌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우암은 다시 재야로 돌아가 또 10여년을 고향마을에 묻혀 산다. 다시 효종의 간곡한 요청으로 이조판서에 오르지만 효종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조대비의 복제(服制) 문제로 예송(禮訟)이 일어나자 남인과의 당쟁을 피해 또 낙향한다. 이후 현종 때 좌의정과 영의정에 임명되었으나 잠시 관직에 나아갔을 뿐이었다.

효종비 상으로 인한 제2차 예송에서도 서인들이 패배하자 그 역시 관직이 삭탈되고 유배를 떠난다. 이후 서인들의 재집권으로 정계에 복귀했다가 기사환국 때 제주도로 유배를 가 있다가 83세 때 서울로 압송돼오던 중 정읍에서 사약을 받고 죽는다. 예송이 일어날 때마다 “예가 문란하게 되면 정치가 문란하게 된다”며 서인과 남인, 또는 서인 중에서도 노론과 소론 등의 당쟁의 한가운데에 섰던 우암에게 차 한잔은 어떤 의미였을까. 주자의 교의를 실천하는 덕목 중에서 정직(正直)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았던 그이고 보면, 그에게 차 한잔은 정직을 맹세하는 상징이었을 것이다.



주간동아 2005.07.12 493호 (p57~57)

정찬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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