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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칼럼

역사를 다시 만들 수 있는가?

역사를 다시 만들 수 있는가?

역사를 다시 만들 수 있는가?

박 광 성
도서출판 ‘생각의나무’ 대표

역사는 옛날이야기다. 옛날이야기는 재미있다. 하지만 요즘의 역사 이야기는 도통 재미가 없다. 그 이유는 역사를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이야기라고 열렬히, 심지어 화를 내면서까지 주장하는 사람들, 특히 지식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현재적 관심과 결단에 따라, 과거 역사에 대한 선택과 해석이 달라진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거에 대해 선택과 해석, 그리고 변화가 가능하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즉, 역사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역사 다시 쓰기’라는 말을 한다. 역사는 끊임없이 다시 쓰이고, ‘마땅히’ 다시 쓰여야만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내가 보기에는 (흔히 서로 비난하는 말로) ‘수구꼴통’들이나 ‘진보 빨갱이’들 모두가 동의하고 있는 정서적 공통분모인 것 같다.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바람직하고 훌륭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 언제든지 역사는 다시 쓰이고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격렬한 어조로 주변 사람들에게 주입하면서 감염시키려 한다.

‘역사 다시 쓰기’ 이해 안 돼 … 역사의 사실 존중해야

그러나 그 큰 목소리에도, 그들의 주장은 가뜩이나 재미없는 내 일상과 더불어, 요즘 세상에 대한 나의 낮은 지적 호기심을 더욱 시들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그들의 ‘이유’가 아니라, 도대체 역사라는 것이 다시 만들어질 수 있는, 다시 쓸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하는 점이다. 흘러간 옛 유행가가 가르쳐주듯 역사는, “과거는 흘러갔기” 때문이다.

이미 지나간 것을 어떻게 돌이킬 수 있는가. 이미 만들어진 것을 어떻게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는가.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결국 그들은 “사실로서의 역사와 씌어진 역사가 동일하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즉 ‘씌어진 역사’를 바로 세우면, 사실로서의 역사도 바로 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수구나 진보 모두 역사를 도덕적 가치판단으로 엄격하게 다루고자 하며, 자신들의 역사에 대한 불타는 사명감으로 역사를 다시 쓰고자 한다.

우리는 어린 시절 수업시간에, 판단에는 ‘가치 판단과 사실 판단’, ‘선악 판단과 진위 판단’이라는 두 가지 영역이 있다고 배웠다. 다시 말해, 무엇이 ‘옳다/그르다(right or wrong)’는 판단과 ‘맞다/틀리다(true or false)’는 판단 두 가지가 서로 다른 판단 영역으로 나뉘어 있다는 것을 안다.

역사에 대한 판단에도 가치의 영역과 사실의 영역이 있을 것이다. 가치의 영역에서 볼 때 역사는 바라보는 이의 처지에 따라, 말하는 이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다를 수 없다. 우리가 역사에 대해 어떤 도덕적 태도를 취할 때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게다가 가치도 도덕적 가치만이 우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善)’이라는 도덕적 가치 외에도 과학(眞), 예술(美), 종교(聖) 등 여러 가지 가치들이 다른 영역과 층위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삶과 그 총화로서의 역사는 이 모든 영역과 층위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역사의 ‘사실’을 쉽게 무시하고 가치를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지, 그리고 그 가치도 ‘도덕적’ 가치뿐이라고 외치는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제의 내가 싫다고 어제의 나를 바꿀 수는 없다. 또한 어제의 내가 좋다고 오늘의 내가 어제와 계속 같을 수도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역사가 새로워지기를 바라지만, 역사가 ‘새롭지 않을 때’ 그런 바람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하루가 간신히 어제와 다르게 지나가고, 어제와 같게 지나가듯이 말이다.



주간동아 2005.06.14 489호 (p8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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