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4

2004.09.30

예의범절 어른 공대 중시 가풍 확실히 물려받았죠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입력2004-09-23 17: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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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의범절 어른 공대 중시 가풍 확실히 물려받았죠
    서울대 법대 조국 교수(39)는 예스러운 사람이다. 젊고, 진보적이고, 남다른 여성의식을 가진 그에게 ‘예스럽다’는 표현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아 뵌다. 그렇더라도 단정하고, 말 가려 쓸 줄 알고, 어른 모심에 실수가 없는 그에게선 분명 예스러운 맛이 난다.

    “집안 분위기 때문일 겝니다. 할아버님은 유학자셨고, 아버님은 교사셨어요. 예의범절 익히고 어른 공대하는 것을 중시하셨지요.”

    조교수는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그러나 고향 하면 진해와 김해 사이, 조씨 집성촌이 있던 응동이 떠오른다. “거기 조부모님이 사셨거든요. 할아버지는 아침마다 할머니께서 빳빳하게 풀 먹여놓은 새 옷을 입고 동네 한 바퀴를 도셨어요. 산책도 할 겸 마을 기강도 잡을 겸. 제일 어른이셨거든요.”

    추석이 오면 그의 어머니는 아들 둘에게 양복을 입히고, 넥타이며 행커치프, 모자에 구두까지 일습을 갖춰 시댁 나들이에 나섰다. 큰숙부댁에 들러 함께 시골로 가 성묘를 돌고 집안 어른들에게 두루 인사를 올리다 보면 하루해가 다 가곤 했다.

    조교수는 “부모님께 두 번 큰 걱정을 끼친 적이 있다”고 했다. 첫 번째는 결혼이었다.



    “어머님도 젊어서는 교사셨어요. 그런데 주부와 어머니 일에 충실하기 위해 꿈을 접으셨지요. 그런 만큼 맏며느리도 어머니처럼 영남 반가 자손으로 집안 예절에 밝고, 남편 봉양에 전념할 수 있는 여성이길 바라셨어요. 하지만 제 아내는 서울내기에 나이도 저보다 많고 앞으로 공부를 계속할 사람이었거든요.”

    늘 순종해온 아들이 고집을 꺾지 않자 부모는 크게 상심했다. 그렇더라도 자식 이기는 부모가 있겠는가. 4년 넘는 설득 끝에 그는 마침내 사랑하는 아내와 혼례를 치를 수 있었다.

    “평생 할아버지 그늘에서 숨죽이고 사신 할머니, 직장과 가사를 병행하느라 힘겨워하시던 어머니를 보며 알게 모르게 ‘우리 세대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마침 아내가 여성학에 관심이 많아 함께 책도 읽고 토론도 했지요. 전 제사 때라도 아내에게 공적인 일이 있으면 저 혼자 고향 집에 내려가곤 했어요. 부모님은 무척 섭섭해하셨지만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제가 아내 강간 문제의 법적·사회적 공론화에 적극 뛰어든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1993년 울산대 전임강사 시절, 그는 또 한 번 부모님께 불효를 저질렀다.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남한사회주의과학원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6개월간 옥고를 치른 것이다.

    “마침 추석이 얼마 안 남은 때였어요. 난생 처음 성묘를 거르게 됐죠. 집안 어른들 걱정이 무척 크셨을 겁니다. 하지만 면회를 오신 부모님은 별 말씀을 하지 않으셨어요. 언제나처럼 절 믿고 제 의견에 따라주셨지요.”

    첫아이 출산 뒤 한결 부드러워졌던 어머니와 아내의 관계는 함께 옥바라지를 하면서 친모녀 사이처럼 정다워졌다.

    조교수는 ‘감옥에서 보낸 한 철’을 제외하곤 지금껏 추석 성묘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명절 때는 무조건 가는 거지요.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없어요. 제게 고향은 ‘바다가 보이는 마을’입니다. 그곳에 가 푸른 산이며 탁 트인 바다를 마주하면 가슴속에 쌓인 때가 다 씻겨나가는 듯해요. 또 모여 앉은 조상님네 산소를 보면 뭐랄까, 아 내가 여기서 왔구나, 언젠가 다시 여기로 돌아오겠구나 하는 묘한 감정, 어떤 애틋한 감동 같은 것이 몰려오기도 하고요.”

    그는 “젊은 사람치곤 너무 고루해 보이지 않느냐”며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진다고, 그렇게 대답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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