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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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엄하고 무뚝뚝한 사랑 철들어서 아버님 마음 이해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입력2004-09-23 17: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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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 엄하고 무뚝뚝한 사랑 철들어서 아버님 마음 이해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은 검소하다. 유행 지난 넥타이, 거듭 빨아 목깃이 살짝 닳은 와이셔츠. 집무실 또한 연 매출 2조원 규모의 그룹 오너 방이라 하기엔 소박하기 짝이 없다. 방 안 이곳저곳에 놓인 인상적인 미술품들만이 그의 돈 씀씀이 방식을 가늠케 할 뿐이다. 요즘도 가끔 회사 인근 광장시장 좌판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윤회장은, 짐작대로 궁벽한 산골 빈농의 자손이다.

    “고향이 충남 공주예요. 더 정확히 말하면 거기서 70리 들어간 유근면, 다시 2km 더 들어가야 있는 만천리가 난 곳이죠. 아버님은 농사를 지으셨어요. 그런데 참 농군답지 않은 농군이었죠.”

    윤회장 부친은 15살에 장가를 갔다. 16살 동네 처녀를 맞아 18살에 첫딸을 봤다. 그 2년 뒤 태어난 이가 윤회장이다. 줄줄이 7남매를 낳아 그중 둘을 잃은 모친은 윤회장이 스무 살 나던 해 이승을 떴다. 다음해 들어온 새어머니도 아이들을 낳았다. 어찌어찌해서 윤회장은 9남매의 장남이 됐다.

    “어려웠지요. 농사라곤 논 조금, 밭 조금…. 그나마 아버님은 쟁기질보다 글 읽고 난 치는 데 더 능하셨어요. 다른 장정들처럼 소매 걷어붙이고 확확 일 해치우던 모습을 본 기억이 별로 없네요.”

    시문과 서예에 두루 뛰어났던 아버지는 그러나 유(柔)한 어른이 아니었다. “아버님 말씀은 법이었어요. 거역한다든가 설명을 해달라든가 그런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요. 오로지 참으로 엄하기만 해, 한번 껴안아주신 기억이 없으니까요. 또 그 궁핍한 살림에 이복남매까지 여럿이니 애들 어렸을 적엔 왜 소소한 갈등이 없었겠어요.”



    그럴수록 추석은 아이들에게 꿈속에서마저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시골 달력이라는 게 다 그 지역 국회의원이 나눠준 거잖아요. 거기 추석 날짜에다 동그라미를 쳐놓고 동생들과 날마다 하루씩 지워나가요. 그래 봐야 바지 한 벌, 고무신 한 켤레, 그도 아니면 양말 한 짝. 고기는 꿈도 못 꿨고, 그놈이 살짝 몸 씻고 간 국물이나마 먹을 수 있다는 게 참 좋았지요.”

    윤회장은 논산시 강경상고에 입학하면서 집을 떠났다. 그 후로도 한참 동안 아버지와의 관계는 서먹하기만 했다. 스물여덟, 스물아홉. 먹고사는 일에 좀 여유가 생긴 다음에야 비로소 아버지와 술상 사이에 두고 마주앉고픈 마음이 됐다.

    “그때부터 풀리기 시작해 나중에는 제법 가까운 부자간이 됐어요. 제가 ‘내일 친구들 데리고 시골 간다’ 하면 아버지는 나물 캐고 새어머니는 고둥 잡아다 참 맛난 상을 차려주시곤 했지요. 명절 때야 물론이고요. 동생들은 한참 후까지도 아버님에 대한 서운함을 다 씻어내지 못했지만 저는 가는 세월이 아쉬웠어요. 언젠가는 아버님도 떠나실 텐데, 그땐 또 의지 없고 외로워 어떻게 하나….”

    윤회장 부친은 99년 세상을 떴다. 향년 74살. 이후로도 추석이면 늘 고향을 찾고 있지만 맘이 영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부모는 잘났거나 못났거나 부모지만 그 부모 없는 고향은 더 이상 옛 고향이 아닌 거죠. 아버님 무뚝뚝한 사랑이 그립고, 때때로 못 견디게 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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