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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프랑스판 CNN 설립 ‘아리송’

2002년 대선 때부터 공론화 … 추진 둘러싸고 부처 갈등 심화, 예산 문제로 백지화說까지

  • 파리=지동혁 통신원 jidh@hotmail.com

프랑스판 CNN 설립 ‘아리송’

CNN이 영어권을 대표하고 알 자지라가 아랍어권을 대표한다면, 불어권을 대표하는 뉴스 전문채널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기 위해 프랑스가 산고(産苦)를 겪고 있다. 프랑스 정가에서는 ‘프랑스판 CNN’이라 불릴 만한 뉴스 전문채널 설립 문제를 둘러싸고 하루가 멀다 하고 엇갈리는 말들이 오가고 있다.

가칭 ‘CII(국제뉴스채널)’라 불리는 위성방송 설립 계획은 7월 말 거대한 암초에 부딪혔다. 미셸 바르니에 외무장관이 국회 외무위원회에서 “2005년 예산 중에서 이 프로젝트에 할애할 예산은 없다”고 발표한 것이다. 거기에다 “2006년에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말까지 덧붙이자 발언은 일파만파로 번져나가 온갖 추측을 낳았다. ‘CII 프로젝트’가 무기한 연기되었다는 해석부터 전면 백지화되었다는 논평까지. 관계자들은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바르니에 외무장관의 발언이 있은 지 일주일 뒤 르노 돈디요 드바브르 문화장관은 AFP와 한 회견에서 “이 프로젝트는 어떤 범위에서 관련 당사자를 선정하고 이들과 어떻게 조율하는가의 문제”라며 CII 설립 추진의 불씨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강조했다.

공영 VS 민영, 주도권 다툼 벌여

CII 설립 프로젝트는 10여년 전부터 추상적으로 언급돼오다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공론화되었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CII 설립을 대선공약으로 내세워 유권자들한테서 폭넓은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그는 취임 후 총리실 주재로 방송설립 계획안을 공모하는 등 2004년 탄생을 목표로 한 프로젝트 진행은 순조로운 듯 보였다.



시라크 대통령은 올 초 신년사에서 프랑스판 국제뉴스채널의 중요성을 재차 역설하며 “2004년이 탄생 원년이 되길 바란다”고 말함으로써 많은 이들의 기대를 부풀게 했다. 그러나 6월 들어 국정지출 낭비요인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가 시작되면서 ‘프랑스판 CNN 설립 계획’이 검토 대상으로 전면에 떠올랐다.

사실 CII 프로젝트는 추진 단계에서부터 총리실과 외무부, 문화부 사이에 끊임없는 마찰을 일으켜왔다. 한편에서는 CNN이나 BBC World 같은 24시간 뉴스채널 형태를 염두에 두고 접근한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RFI(프랑스 국제 라디오)나 TV5 (불어 위성채널) 같은 기존 불어권 국제방송의 발전된 형태로 밑그림을 그려 큰 의견 차이를 나타냈다.

이와 더불어 공영방송인 프랑스 텔레비전과 민영방송인 TF1, Canal+ 등의 주도권 물밑 싸움이 진행됨에 따라 프로젝트 진행은 더뎌졌다. 이런 시점에서 불거져나온 재정 부담 문제는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CII 프로젝트는 더욱 불투명해졌다.

여러 가지 해결책이 논의되는 가운데 현재 가장 유력한 방안은 베르나르 브로샹 의원의 제시안. ‘공영방송 프랑스 텔레비전과 민영방송 TF1의 공동출자 형태로 CII를 출발시키고, 운영을 교대로 맡게 하자’는 것이다. 브로샹 방안에 따르면 CII의 1년 예산 추정액은 7000만 유로(약 1000억원)이며, 200명의 정규직원을 필요로 한다.

한편 신규방송의 더욱 원활한 기능을 위해 기존 유사매체들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유럽방송연합(EBU)의 주도로 1993년 탄생한 뉴스전문채널 Euronews나 불어권 국가연합 위성방송인 TV5, 전 세계에 걸쳐 송출되고 있는 RFI 라디오, 세계 3대 통신사 중 하나인 AFP 등의 기술과 정보망을 이용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방안은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소지가 있어 신중하게 검토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TV5의 경우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는 벨기에, 캐나다, 스위스 등과의 협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 걸림돌로 부각되고 있다. 또한 위성을 통한 해외송출을 주된 목표로 삼는다 하더라도 기존의 국내 뉴스전문채널인 LCI 방송과 어떤 관계를 구축해야 하는지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설립 땐 국제 여론 형성에 영향력

이러한 현실적 어려움에도 시라크 대통령의 의지는 굳건하다. 국가간 정보-커뮤니케이션 전쟁이 점차 치열해져가는 지구촌에서 프랑스를 하나의 축으로 다져놓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의지는 CII 프로젝트에 대한 세인의 기대를 뒷받침하고 있다.

1991년 걸프전을 계기로 CNN은 일약 ‘뉴스전문채널’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주위의 회의적 시각에도 테드 터너 사장은 ‘24시간 국제뉴스방송’이란 모험을 시도,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뒀다. CNN은 미국 국내에서 Fox News TV, MSNBC 등과 경쟁하는 위치로 떠올랐고, 영국 BBC World나 유럽 Euronews 등 잇단 뉴스전문채널의 등장을 이끄는 선구자 구실을 했다.

한편 CNN에는 ‘미국의 눈에 비친 세계’만을 보여준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국제정보가 미국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을 CNN이 더욱 심화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아랍권을 대표하는 알 자지라 방송이다. 알 자지라는 빈 라덴을 독점적으로 방영하는 등 2001년 9·11 사태를 등에 업고 세계적인 지명도를 얻었다.

미국과 이슬람 세계 사이의 극명한 대립은 이들간의 정보를 둘러싼 갈등관계 또한 심화시키고 있다. 여기에서 뉴스 전문채널들이 차지하는 기능은 간과할 수 없다. 이들이 국제 여론에서 발휘하는 영향력은 점차 확대되는 분위기다. 지구촌 곳곳에서 동시 시청이 가능하다는 특성은 자국민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수많은 잠재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불러모아 메시지를 직접 전달할 수 있는 강점으로 통한다. 특히 주요 시청자가 각국의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 등 여론 주도층이란 점 때문에 상당한 파급 효과를 얻는다.

이러한 배경에서 프랑스는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미디어 탄생을 꿈꿔왔다. 특히 지난해 이라크 전쟁 발발을 전후해 반전 목소리를 높여왔던 프랑스로서는 국제 여론 형성에 어떤 매체보다 효과가 클 ‘프랑스판 CNN’의 존재가 절실했던 것이다.

한편 8월26일 바르니에 외무장관은 CII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를 공식석상에서 또 한번 꺼냈다. 그는 프랑스 외교관 회의에 참석, “CII 설립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문화부와 긴밀한 검토과정을 거치겠다”고 발언해 그간의 우려를 불식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1835년 세계 최초의 통신사인 AFP의 전신 아바스(Havas)를 설립한 프랑스는 뉴스의 국제교류를 주도했다는 자부심을 지녀왔다. 과연 프랑스 정부가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국제정보와 커뮤니케이션 질서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인지, ‘프랑스판 CNN’ 프로젝트의 앞으로의 향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주간동아 454호 (p102~104)

파리=지동혁 통신원 jidh@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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