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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우리풍수 | 공민왕과 충남 금산군의 용호석(龍虎石)

왕릉 아니면 도읍? … 명당 미리 찜!

  • 김두규/ 우석대 교수 dgkim@core.woosuk.ac.kr

왕릉 아니면 도읍? … 명당 미리 찜!

왕릉 아니면 도읍? … 명당 미리 찜!

용의 석상

충남 금산읍과 이웃한 제원면 천내리 강변에는 호랑이와 용을 새긴 길이 1.5m의 석상이 있다. 석상에 문외한일지라도 재질이나 생김새의 품격에 찬탄이 절로 나오는 완벽한 예술품이다. 금산읍과 제원면 천내리를 이어주는 ‘제원대교’ 다리에서 보면 곧바로 보인다. 용이 새겨진 ‘용석(龍石)’은 꿈틀거리는 몸체와 여의주를 문 모습으로 남쪽을 쳐다보고 있으며, 그곳에서 500m쯤 떨어져 있는 호랑이 석상(虎石)은 앞발을 세우고 몸은 서쪽을, 머리는 북쪽을 향해 앉아 있다.

언제 무슨 까닭으로 ‘용호석(龍虎石)’이 이곳에 세워졌을까?

“공민왕이 홍건적 침입을 피해 안동으로 피난 왔다가 이곳의 훌륭한 명당 터를 보고 자신의 능 자리로 잡아뒀는데, 난이 평정되자 개경으로 돌아가고 나서는 그대로 방치했다는 전설을 어려서부터 들었다”고 주민 황운학씨(70)가 전해준다.

홍건적의 침입을 피해 공민왕이 안동까지 내려왔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금산까지 들렀다는 기록이 없어 ‘용호석’에 대한 진실은 가리기 어렵다. 그렇지만 ‘용호석’의 조성 시기를 고려 말이나 조선 초로 추정하고 있고, 또 용호석이 매우 세련된 예술품임을 감안하면 국가 차원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추측은 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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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석상

공민왕과 용호석이 풍수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역사에서 패자는 늘 나쁜 점이 부각돼 전해진다. 고려 공민왕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왕으로 재위하고 있을 때 시해를 당한 것도 그가 부정적으로 평가받는 이유일 수 있지만, 그보다는 고려를 멸한 조선이 ‘고려사’를 다시 쓰면서 그의 좋은 점들을 일부러 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방적으로 나쁘게만 서술되지 않은 것을 보면 공민왕은 대단한 인격과 능력을 가졌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원나라 노국 공주와 결혼한 뒤 왕이 되어 귀국한 공민왕(생존 1330∼74, 재위 1351∼74)은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고려를 부흥시키기 위한 개혁정책을 적극적으로 펴나갔다. 원나라 기황후(주간동아 440호에 소개)를 등에 업고 설치던 기철(奇轍) 등 친원세력을 제거해 왕권 회복을 꾀하고, 원나라에 점령당한 철령 이북 땅을 되찾아 영토를 확장하기도 했다. 또 승려 신돈(辛旽)을 내세워 권신들을 축출하고 신진사대부를 등용했으며, 토지의 재분배를 시도하고 억울하게 노비가 된 자들을 모두 해방시켜 주었다. 하지만 기득권 세력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면서 개혁은 실패로 끝나고 시해를 당하는 불운을 겪는다.

혁명에 가까운 개혁정치를 시도한 공민왕은 풍수지리를 하나의 개혁 수단으로 활용한다. 그의 풍수 실력은 당대 최고였다(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의 평). ‘고려사’에 기록돼 있는 토목공사, 사랑했던 왕비 노국 공주의 무덤터 선정과 단장, 개경의 지기가 쇠했다는 이유로 세운 평양 및 충주 천도 계획 등에서 풍수 식견을 엿볼 수 있다. 평양이나 충주로 천도를 꾀한 이유는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약화해서 개혁정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다. 그러나 처음부터 평양과 충주 두 곳만을 천도 후보지로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새로운 도읍지를 위해 전국의 좋은 땅을 수소문하거나 해당 관리를 시켜 찾아 다녀보게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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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석’ 뒤의 혈처로 추정되는 천내리 일대.

충남 금산 일대는 도읍지로 손색이 없을 만큼 드넓은 땅과 이를 병풍처럼 감싸주는 높은 산들, 그리고 그 사이를 흐르는 맑은 물이 있는 곳이다. ‘용호석’ 터는 공민왕 자신의 능 자리가 아니라 여러 천도 후보지 가운데 한 곳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용호석’은 일종의 후보지 표지석인 셈이다. 풍수에서는 대개 ‘좌청룡우백호(左靑龍右白虎)’라 하여 핵심처의 왼쪽에 용의 형세, 오른쪽에 호랑이 형세의 산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용호석’을 기준으로 할 때 현재 천내리와 그 뒤로 이어지는 구릉지대를 핵심처로 본 듯하다. 앞으로는 금강이 휘감아돌고, 뒤로는 성주산(623m) 월영산(529m) 양각산(565m) 등이 감싸며, 강 건너 금산읍의 드넓은 들판이 펼쳐지는 그야말로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땅이다.



주간동아 452호 (p90~90)

김두규/ 우석대 교수 dgkim@core.woos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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