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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은 지금 아이템쇼핑 삼매경

초등생들 유료 아바타 꾸미기 열풍 … 부모들 모르고 있다 요금 청구에 ‘화들짝’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동심은 지금 아이템쇼핑 삼매경

동심은 지금 아이템쇼핑 삼매경

요즘 최고의 대박게임으로 꼽히는 ‘메이플 스토리’. 동시접속자 수가 많을 뿐 아니라 매월 아이템 판매만 15억원에 이른다.

서울 서대문구 H초등학교 1학년생인 수영이는 요즘 쇼핑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여름방학인데 밖에 나가 놀지도 않고, 만화영화를 보러 가자거나 바닷가에 가자고 조르지도 않는다. 수영이가 날마다 사들이는 것은 문방구에서 파는 필통이나 딱지가 아니다.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에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온라인 게임 ‘메이플 스토리’의 아바타를 꾸미거나 능력을 키우기 위해 ‘아이템’을 구입하는 것이다. 수영이는 한번도 예쁜 옷이나 가방을 사달라고 투정 부린 적이 없었다. 그러나 온라인 게임 속에서 ‘궁수’(활 쏘는 캐릭터)로 살고 있는 자신의 분신, 아바타를 꾸미기 위해 거의 날마다 엄마와 아빠를 조르고 있다. 사이버 ‘공간’이라고 하지만 어쨌든 부모가 보기에는 그림에 지나지 않는 인형의 머리를 염색 하고 옷을 바꿔 입히고 그림 ‘강아지’와 ‘토끼’-돈을 재충전해주지 않으면 몇 달 후 죽는 애완동물들이다-를 사기 위해 수영이는 두 달 동안 진짜 돈을 2만원 넘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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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아이템을 살 수 있는 선불카드.

수영이는 2만원이란 돈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단지 아이템을 얻으려면 컴퓨터 화면의 아이템에 해당하는 액수(숫자)를 누르고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면 부모의 휴대전화로 ‘승인번호’가 도착한다는 것만 안다. 수영이에게 게임 속의 세상은 현실과 똑같은 의미이며, 자기가 맡은 ‘롤(role)’인 아바타는 수영이 자신이다. “멋있잖아요. 이렇게 꾸미고 다니면 다른 애들이 부러워해요.”

아이템 쇼핑 열풍은 수영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수영이 반 아이들 중 ‘특별한’ 한두 명만이 온라인 게임에서 제외돼 있고, 온라인 게임을 하는 아이들은 남녀 구분 없이 1~2주의 초보단계만 지나면 곧 아이템 쇼핑에 나서게 된다. ‘메이플 스토리’는 궁수, 전사, 마법사 등의 직업을 가진 귀여운 이등신 캐릭터들이 이국적인 나라들을 ‘옆으로’(횡스크롤 방식) 나아가면서 달팽이, 독버섯, 박쥐 등을 잡으며 능력을 키워가는 ‘무료’ 게임이지만, 게임 시작할 때 주어진 캐릭터 그대로인 유저들을 보기 어렵다. 게임 자체는 무료지만 모두들 ARS나 휴대전화, 신용카드, 문화상품권 등으로 돈을 내고 아이템을 사서 한껏 치장을 하고 싸움을 한다.

게임업체들엔 짭짤한 수익원

자신의 아바타가 걸어가다 보면, 저 앞쪽에 한눈에 봐도 부티가 줄줄 나는 다른 아바타가 싸움을 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샘도 많고 승부욕에 불타는 게임 유저라면 열이 받을 수밖에 없다. ‘메이플 스토리’처럼 동시접속자 수가 17만명에 이르는 초대박 게임 외에 ‘크레이지 아케이드’, ‘겟 앰프드’, ‘디지몬 온라인’ 같은 게임을 하는 아이들은 대개 아이템을 사는 데 재미를 붙인다. 아이템 가격은 대개 수백원에서 수천원 사이지만 1만원이 넘는 ‘럭셔리 아이템’들이 흔하고, ‘거상’이라는 온라인 게임에서 장수를 5명까지 거느리는 ‘손자병법’ 아이템은 2만4000원에 이른다.



동심은 지금 아이템쇼핑 삼매경

게임업체에서 마련한 가족캠프. 온 가족이 게임에 참여함으로써 아이의 인터넷 중독을 막을 수 있다는 게 업체의 설명이다.

초등학교 4학년생인 딸이 휴대전화로 매월 5만~6만원씩 아이템 쇼핑을 해온 사실을 뒤늦게 안 학부모 송모씨는 “화가 나 아이의 휴대전화를 부숴버리고 게임업체와 모 텔레콤 업체에도 항의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게임업체와 아이들은 부모의 항의와 분노에 대한 대비책을 한발 앞서 연구한 듯하다. ‘메이플 스토리’를 만든 넥슨사는 메이플 스토리 공략집이라는 책을 내놓았는데, 이 책은 10만부가 팔려나가 아동 부문 베스트셀러가 됐다. 성공 비결은 1만2000원짜리인 이 책을 사면 게임에서 4000원에 해당하는 아이템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책’을 사주면 게임업체가 아이들에게 일종의 ‘리베이트’를 주는 셈이다. 초등학교 6학년생인 정석이는 “엄마가 게임한다면 돈을 안 줘도 책 산다면 얼마든지 돈을 주기 때문에 공략집을 세 권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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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어린이들. 게임만큼이나 아이템 쇼핑을 재미있어한다.

그래서 게임 아이템으로 1만2000원을 얻었다”고 털어놓는다. 또한 아이들이 집 전화로 무분별하게 ARS에 접속하여 게임 아이템을 사면서 게임업체와 학부모들 사이에 분쟁이 끊이지 않자, 최근 게임업체들은 선불카드를 내놓았다. 게임산업협회 우형오 부회장은 “정보통신부가 내년부터 아이들 게임에 공인인증서를 도입하는 안을 내놓았다. 게임업체로서는 최악이다. 거기까지 가지 않는 대책으로 선불카드나 이용액의 상한선 제한 등이 포함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선불카드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대책’을 넘어섰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게임용 선불카드는 아이들 사이에서 최고의 생일선물로 꼽힐 만큼 반응이 폭발적이다. 게임업체는 일일이 팩스로 부모 동의서를 받을 필요가 없고, 부모로서도 미리 돈을 내고 카드를 사주면 아이들이 매월 게임에 쓰는 돈을 관리하기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메이플 스토리’ ‘크레이스 아케이드’ 등 초등학생 대상의 인기 게임을 잇따라 개발한 넥슨사 선불카드의 경우 전체 매출액의 1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안정궤도에 들어섰다. 게임업체들은 ‘대책’으로 마련한 선불카드 유통 시장이 뜻밖에 PC방을 잇는 차세대 마케팅 채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몇백 원, 몇천 원의 ‘코 묻은 돈’은 현재 게임회사를 먹여살리는 힘이다. 원래 채팅사이트인 ‘세이클럽’에서 발원한 것으로 알려진 아바타 장식 아이템은 어린 유저들이 주로 사용하는 온라인 게임 아이템으로 옮겨 게임회사 매출액의 절반을 차지하는 성공적인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이 되었다. “게임업체 수익은 원칙적으로 보면 유저들이 게임을 즐기는 대가로 내는 월정액이다. ‘리니지’, ‘뮤’ 등이 대표적인 월정액 게임이다. 그러나 월정액을 내면 유저들이 떨어져나가기 쉽다.

그런 점에서 ‘부분 유료화 모델’이, 게임 자체는 무료라 유저들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으면서 수익도 창출하는 혁신적인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같은 ‘부분 유료화’ 게임이 처음 개발된 것은 초고속 전송망이 집집마다 다 깔려 있어 현금결제 인프라가 매우 좋다는 점 때문이다. 대신 아이들도 돈 쓰기가 너무 쉽다. 그만큼 분쟁의 위험도 크다.”(‘더 게임스’의 장지영 기자)

게임과 자녀 마음 이해하려는 노력 필요

문제는 돈에 대한 개념도 없고, 게임의 중독성을 인식하기 어려운 어린아이들이다. 게임업체나 문화관광부, 정보통신부 등 정부에서는 고육책으로 전화 1회선당 현금지불액 또는 월 사용액을 제한하거나 게임 가입시 부모동의서를 받도록 하고, 아이의 게임 시간을 부모에게 통지해주기도 한다. 또 게임업체가 돈을 써가면서 가족게임 캠프를 마련해 어린이들이 무분별하게 게임에 중독되는 것을 막으려 한다.

그러나 ‘규제’가 결코 어린이들을 위한 근본 대책이 되지는 못한다. 자제력이 없는 아이들은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부모와 선생님을 속이고 온라인에 접속하며, 야단을 맞더라도 아이템을 산다. 게임 전문가들은 “어린이들이 게임에 중독되거나 그래서 부모가 분쟁까지 일으키는 경우를 보면 거의 모두 부모가 컴퓨터나 게임에 대해 무지하고 아이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단지 전화요금이 수십만원이 나왔기 때문에 아이들을 야단칠 뿐이다”라고 말한다. 이런 부모의 경우 반대로 “아이들이 학교에서 기 죽을까봐” 마구 온라인 게임에 돈을 집어넣어 주기도 한다.

주부 윤선미씨는 “아이가 숙제와 학교 공부 등에서 최선을 다했는지 확인하고, 아이가 게임에서 원하는 레벨이 무엇인지도 알아본다. 다음, 게임시간을 합의한다. 그러면 아이도 약속을 지킨다”고 말한다. 부모들이 과거 탈선의 온상으로 여겨졌던 ‘오락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무조건 컴퓨터 접속을 금지한다면 아이들과 정서적 장벽만 쌓게 된다는 것이다. 7월22일 열린 ‘청소년의 인터넷 중독 벗어나기’ 심포지엄에서 김현수 디지털청년의사회 소장은 “아이들이 컴퓨터 게임 외에 다른 분야에서도 유능하다는 것을 경험하게 해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한 게임 아이템을 구입할 때도 부모가 진짜 물건 사는 것과 똑같이 지도하는 것이 좋다. 문화와 산업적으로 온라인 게임의 성장은 눈이 부실 정도다.

게임은 영화 못지않게 다양한 철학적 담론을 생산하고 있으며, 영화에 원작을 제공하는 등 영화보다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부분 유료화’ 게임 역시 국내에서의 규제 논란에도 일본과 중국에서 이미 많은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캐릭터 산업이 발달한 일본에서는 ‘메이플 스토리’의 유료화 아이템이 큰 환영을 받아 월 5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크레이지 아케이드’의 동시접속자 수가 65만명을 넘어섰다. 넥센의 이재교 홍보팀장은 “중국 현지 파트너가 처음엔 누가 그림 ‘무기’나 ‘애완동물’을 사겠냐며 정액제를 요구했으나 우리가 부분 유료화 모델을 강력히 밀어 결국 대성공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온라인, 즉 사이버 공간의 아바타와 유료 아이템들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권에서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데 비해 미국 등 서구 게임에선 여전히 수익을 낼 수 없는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사이버 공간에 대한 동•서양의 심리적 차이를 보여주는 동시에, 사이버 공간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단지 유치함과 성숙함, 아이와 어른을 구분하는 데서 기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기도 한다.



주간동아 446호 (p72~73)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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