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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쇠망치 살인의 충격

‘헛다리’ 초동 수사 ‘악소리’ 피해 불러

연쇄 살인 행각 실체 모른 경찰 1년간 허둥지둥 … 치밀한 범행 수법은 과학수사도 ‘조롱’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헛다리’ 초동 수사 ‘악소리’ 피해 불러

‘헛다리’ 초동 수사 ‘악소리’ 피해 불러

유씨는 이때부터 계속 자신이 만든 해머형 쇠망치를 범행도구로 사용했지만 경찰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씨는 1년 가까이 살인 행각을 벌이면서 경찰을 마음껏 비웃었다. 과학수사를 조롱하는 유씨의 주도면밀함 앞에 경찰은 우왕좌왕, 망연자실 자체였다. 더욱이 간질을 앓았던 김씨의 병력은 체포 후 도주의 길을 열어줌으로써 자칫 사건을 영원히 미궁에 빠뜨릴 뻔했다.

경찰은 이번 연쇄살인 사건 수사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초동단계의 실패는 수사를 수렁에 빠뜨린다. 연쇄살인범의 동선을 따라가며 경찰수사의 난맥상을 짚어보고자 한다.

2003년 9월24일 발생한 서울 강남구 신사동 모대학 명예교수 이모씨(73) 부부 살인사건의 경우 부부 모두 일격에 두개골이 함몰되는 상처를 입고 숨졌다. 범행도구는 끝이 뭉툭한 둔기(후에 무게 7kg의 해머형 쇠망치로 드러났다)였다. 경찰은 패물과 280만원의 현금이 열려 있던 장롱 안에 그대로 있었는데도 동네불량배 소행으로 추정했다. 부잣집에 침입한 불량배가 귀금속과 현금을 그대로 두고 가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또 동네불량배는 칼이나 과도 등 흔히 ‘연장’이라 불리는 흉기를 가지고 다니며, 혼자서 범행하는 경우도 드물다. 경찰은 이 사건에서 범인의 지문, 머리카락, 족적을 발견하고도 범인 추적에 실패한다. 범인의 뒷모습은 CCTV 화면으로도 남았다. 경찰은 계속 금품을 훔치러 온 불량배가 부부가 반항하자 엉겁결에 죽인 후 도망갔을 것이라는 추정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었다.

보름 사이 동일 수법 엽기 사건 연관 시키지 않아

보름 후인 10월9일 종로구 구기동 단독주택. 일가족 3명이 머리에 피를 흘린 채 발견됐다. 이번에도 육중한 둔기로 맞아 모두 두개골이 함몰돼 있었다. 머리를 일격에 가격해 죽인 뒤 몇 번씩 가격하는 잔인한 범행 수법으로 미루어 원한관계나 정신이상자의 소행이 의심되는 상황. 경찰은 이번에는 면식범의 소행이라며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면식범은 죽은 사람을 또 때리는 무자비함을 보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 범죄심리학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야기다.



보름 사이 두개골을 가격해 살인하는 동일 수법의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경찰은 두 사건을 연관시키지 않았다. 그것도 피해자 모두 수백억원대의 재산가였는데도 수사 주체인 강남경찰서와 종로경찰서는 따로 ‘놀고’ 있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10월16일 강남구 삼성동에서 60대 여인이 둔기에 머리를 맞아 피살됐다. 범인은 네 차례나 머리를 가격했으나 빗맞은 듯 피해자는 아들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옮기던 중 숨졌다. 경찰은 이번에도 앞 사건들과의 연관성을 눈치 채지 못하고 피해자가 숨지기 전 수십억원 규모의 부동산 거래를 한 점으로 미뤄 금전관계에 의한 살인으로 추정했다. 피해자 인척과 거래 대상자들이 용의자로 떠오른 것은 당연한 일. 강남경찰서는 이 사건을 다른 형사반에 맡겨 신사동 교수부부 살인사건과 독립적으로 수사토록 했다.

이 사건 한 달 후 종로구 혜화동의 저택에서 김모씨(87ㆍ여)와 파출부(51)가 둔기로 머리를 맞고 살해되는 사건이 또 발생했다. 많은 재산을 가진 노인들이 머리에 둔기를 맞고 살해되는 범죄 네 건이 두 달 안에 발생한 것. 물론 이번 사건은 앞의 사건과 좀 달랐다. 범인이 시신에 불을 질렀기 때문이다. 또 흉기에 찔린 상처도 있었다. 경찰은 이번에도 금품을 털러 들어왔던 강도 살인범이 증거를 없애기 위해 불을 지른 것으로 보고 새로 추적반을 만들었다. 그것도 불을 지르는 사람들이 대부분 면식범이라는 관행에 따라 주변 인물들에 대한 추적에 수사력을 집중했다. 유씨 검거 후 숨진 김씨의 맏며느리는 “뒤쪽 담이 낮아 좀도둑이 자주 드나든 적이 있어 모르는 사람의 범행일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경찰은 이를 묵살했다”고 오열했다.

“서울 경찰청 안 나섰으면 구역 다툼 심했을 것”

경찰이 네 사건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사건을 공동수사하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해 12월. 혜화동 살인사건 이후 언론에서 이들 사건의 유사성을 지적하며 동일범의 소행일 가능성을 제시하고부터였다. 경찰은 그래도 쉽게 연쇄살인을 인정하려 하지 않아 수사공조는 이루어졌지만 합동수사본부는 차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유씨가 ‘잠수’를 한 시점. 혜화동 살인사건 이후 그는 청혼했던 마사지사를 만나 4개월간의 동거에 들어갔고 경찰은 그의 종적을 추적할 수 없었다.

엽기적인 살인 사건에 서울경찰청이 직접 나서게 된 계기는 전화방 도우미와 마사지사가 차례로 실종됐다는 업주의 제보전화가 7월14일 서울경찰청에 접수되면서였다. 경찰은 그때까지 살해된 여인들의 실종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경찰 한 관계자는 “그래도 서울경찰청 기동수사대가 나섰으니 망정이지 일선 경찰서에 제보가 들어갔으면 또 구역 다툼이 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동수사대도 유씨를 검거하고 추궁하는 과정에서 큰 실수를 저질렀다. 유씨가 7월15일 밤 12시쯤 조사를 받다 3차례나 입에 거품을 물고 간질 증세를 일으키자 형사들이 수갑을 풀어준 것. 간질은 발작을 일으킬 때 누군가 옆에서 잡아주는 것이 큰 도움이 되지만 발작이 연속적으로 세 번씩이나 일어나는 일은 없다. 형사들이 의학적 상식이 없어 수갑을 풀어주었다 해도 그에 대한 감시의 눈길을 놓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경찰 관계자는 “유씨가 정신병력이 있는데다 진술이 횡설수설이어서 당시에는 진짜 연쇄살인범이라는 심증을 굳히지 못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유씨가 범죄 사실을 일목요연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모두 털어놓은 것은 도주 12시간 만에 체포된 뒤 모든 것을 체념하면서였다. 사실 도주한 유씨를 불심검문으로 붙잡을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이미 자살을 결심하고 경계심을 풀고 있은 탓이 컸다. 유씨는 체포 당시 수면제 360알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연쇄살인사건 수사과정에서 경찰이 이토록 헤맨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경찰의 과학수사를 비웃는 치밀한 범행수법이었다. 살인사건이 터지면 범죄수법과 수사기술, 증거수집 방법을 저인망식으로 보도하는 언론과 최근 쏟아지고 있는 미국의 과학수사 드라마 시리즈는 범인들에게 완전 범죄를 꿈꾸게 한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미국의 과학수사 드라마나 다큐멘터리는 범죄학 교과서라 할 만하다. ‘CSI 과학수사대’와 디스커버리 채널의 과학수사 사례 시리즈, ‘특수수사대 SVU’ 등은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살인기술과 수사기술 및 방법 등을 소개하며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IQ 143의 지능을 가졌다는 유씨가 이런 방송을 놓칠 리 없다. 유씨는 강남과 종로를 지그재그로 오가며 부유층 살인사건을 저질렀고, 구기동 살인사건 때는 두고 온 쇠망치를 찾기 위해 범행 현장에 다시 들어갔으며, 혜화동 살인사건 때는 지문과 혈흔을 없애기 위해 불을 지르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다. 범행도구를 구입한 곳에 대한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쇠망치도 직접 만들었고, 칼도 자신이 만들어 사용했다. 20대 여성 연쇄살인 때 토막 낸 시체를 옮길 때 쓴 봉지를 다시 가져온 것도 행여 지문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는 또 체포 당시 다리를 절며 정신병자인 척해 형사들의 긴장을 풀게 함으로써 도주의 틈을 마련하기도 했다.

경찰대 행정학과 표창원 교수는 “경찰의 범죄대응 능력 향상 속도가 범죄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과거 원한 치정 금품 등으로 단순했던 범죄 원인이 더욱 복잡해지고 예상 불능해진 것도 수사의 어려움을 가져오는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주간동아 2004.07.29 445호 (p18~20)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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