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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칼럼

나는 왜 한국인이어야만 하는가

  • 김갑수 문화평론가 dylan@unitel.co.kr

나는 왜 한국인이어야만 하는가

나는 왜 한국인이어야만 하는가
나는 왜 나여야만 하는가? 청소년기에 어지간히 자주 던져본 질문이다. 나는 왜 하필 저곳이나 그곳, 혹은 다른 어떤 곳이 아닌 여기 이곳에 소속돼 있는가? 20, 30대 내내 끊임없이 되물었던 물음이다. 물론 탄식과 자조 섞인, 건강하지 않은 질문이었다.

더 이상 자아 정체감에 대해 되묻지 않게 된 중년의 나이에, 게다가 손쉽게 해외여행이 가능해진 시기에 집요하게 찾아오는 질문이 있다. 감상적 동기나 과학적 인식에서 출발했다기보다는 다분히 생활체험을 통해 생겨난 질문인즉, ‘나는 왜 한국인이어야만 하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흡사 생득적 진리인 양 일본과 일본인을 미워하는 풍토 속에서 성장해왔다.

요즘은 꽤 달라졌지만 영문을 모른 채 중국인을 멸시하는 분위기에도 젖어왔다. 몇 해 사이 미국이라면 거의 막무가내로 혐오하고 분노하는 기운이 전 사회를 휩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스멀스멀 찾아드는 의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제사회서 한국인 평가 ‘거칠고 극성스런 졸부’?



우선 미워하고 멸시하고 분노하는 감정의 정당성을 따지기 이전에 그네들은 우리를 어떻게 볼까를 추측해본다.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먼저 ‘무시’라는 반응이 첫 번째로 꽂힌다. 예를 들어 ‘한·중·일 삼국’이라는 표현이 담긴 외국 자료를 찾아보기 매우 힘들다.

국제사회에서 동아시아를 거론할 때면 으레 ‘중·일’ 내지 ‘일·중’이라는 표준이 있을 뿐 한국이 동격으로 자리를 차지하는 예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한·중·일’은 우리끼리 쓰는 표현일 뿐이다. 적나라하게 말해 국제사회에서 한국인은 ‘거칠고 극성스러운 졸부’쯤으로 비쳐지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러한 미움와 멸시, 분노, 무시 같은 감성적 반응을 여실히 깨버리는 경우가 있다. 바로 외국인과 사귀어 깊은 친분이 생겼을 때다. 살다 보니 친구라고 부름직한 다른 나라 사람들도 꽤 생겼다. 우정 속에서 국가간의 감정적 편견이란 참으로 거추장스러운 벽일 따름이라는 걸 체험한다. 상대방도 그런 눈치다. 그렇다면 국가 혹은 민족이라는 갑옷을 좀 벗어버리면 되지 않겠는가.

건강한 사회라면 맹렬한 국가주의자가 한 10%, 열렬한 계급주의자가 또한 10%쯤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들 극우 극좌를 제외한 온건한 양식의 소유자(the moderates)가 80%는 돼야 진보된 사회인 것이다. 이념 성향으로 분류할 때 한국인은 과연 어떤 분포를 보일까.

나는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인 내 외동아들을 중학교부터 태국에 있는 인터내셔널 스쿨에 보내기로 결심했다. 초·중·고가 함께 있는 학교에 한국인은 단 두 명뿐이라는데, 그중 한 아이의 학부모가 절친한 친구다. 전 세계 온갖 인종이 다 섞여 있는 학교에 4년째 다니고 있는 그 아이에게 한국은 모국이고, 거주지는 태국이고, 소속은 세계일 것으로 나는 짐작한다.

돌이켜보면 나는 뼛속까지 한국인이고, 김씨 집안의 손이고, 출신학교의 졸업생이었다. 단 한 번도 이 모든 소속으로부터 놓여난 독립된 개인인 적이 없었다. 더 나아가 나는 언제나 다른 나라 사람을 그가 속한 국가나 민족의 이미지에 투영시켜보았을 뿐 인류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이라는 관점을 세워본 적이 없다.

나는 내 아이가 성장해 그의 모국이란 어릴 적 고향 같은 애틋함 정도로 자리하기를 희망한다. 욕심을 부리자면, 안으로는 전 우주와 맞먹는 독립적이고 개성적인 자아의식이 뿌리내리고, 밖으로 눈을 돌리면 국가 울타리를 뛰어넘어 인류라는 시선으로 미국인도 이라크인도 또한 소말리아인도 벗 삼기를 소망한다. 더욱이 눈앞에 다가오는 유비쿼터스(ubiquitous) 시대에 거주지가 어디인지는 거의 문제 되지 않을 것 아닌가.

인류 사회라는 관점이 100여년 전 제국주의적 팽창주의의 유산이란 걸 모르지 않는다. 독립된 혹은 고립된 개인이라는 설정 역시 낡은 실존주의의 그림자일지 모른다. 그러나 ‘대’한국인들은 개인이면서 인류라는 시야를 가져볼 기회가 너무도 없었다.

그 바람에 생겨난 병증이 바로 턱없는 자존망대와 제노포비아(xenophobia·외국인 혐오증 내지 공포증) 사이를 극단적으로 오가는 것 아닌가?



주간동아 2004.07.29 445호 (p96~96)

김갑수 문화평론가 dylan@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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