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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주말에만 ‘베이비 시터’ 더 못 참아!

호주, 이혼한 아빠들 양육권 비율 개정 준비 … “사실상 편모 슬하 기형적 성장 이혼 대물림”

  • 애들레이드=최용진 통신원 jin0070428@hanmail.net

주말에만 ‘베이비 시터’ 더 못 참아!

주말에만 ‘베이비 시터’ 더 못 참아!

호주 애들레이드시의 어린이집 풍경.

“부정(父情)도 모정(母情) 못지않게 강하다.” 호주에 사는 대부분의 이혼한 남자들이 아이의 양육권을 50대 50으로 해달라며 법정에서 호소할 때 자주 인용하는 말이다. 호주는 이혼 후 아이의 양육권이 일방적으로 어머니에게 귀속해 있어 아버지들은 자녀들을 마음 편히 볼 수조차 없다. 특히 가정법률상 이혼 후 아이 어머니와 아버지의 자녀양육권 비율이 80대 20으로 돼 있어, 아버지가 어머니보다 경제적 능력이 있어도 양육권을 자유롭게 주장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동안 숨죽이며 살아온 아버지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나섰다. 더 이상 아버지 노릇을 포기할 수 없다며 이혼한 아버지들이 연합해 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는 것. 현재 호주의 이혼 아버지들이 연대해 조직한 모임은 여러 개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모임이 ‘부정(不正)에 맞서는 아버지’다. 이들은 자녀 양육비율 균등을 요구하며 정기적으로 가정법원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80대 20’에서 ‘50대 50’으로

특히 건강한 자녀 양육법에 관한 리서치 조사에서 부모 모두한테서 충분히 사랑받으며 자란 자녀가 한쪽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보다 탈없이 잘 자란다는 결과가 발표되자, 이혼 아버지들은 이제부터라도 아이 양육권이 50대 50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아이 아버지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일정한 기간의 제한된 시간 내에서만 아이를 볼 수 있는 현행법 제도는 ‘남녀 모두에게 균등한 권리를 부여한다’는 호주의 사회이념에도 어긋난다는 게 이들 아버지의 주장이다. 따라서 호주의 이혼 아버지들은 주말에만 아이를 돌보는 ‘베이비 시터’로서의 노릇에 머물지 않고, 진정한 아버지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호주는 사회 전반에 걸쳐서 권리와 의무에서 평등을 특히 강조하는 복지국가다. 그런데 이러한 평등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 분야가 바로 여자의 권리를 더욱 강조하는 가정 관련 법률이다. 특히 법률적으로 성인 남녀가 이혼 후 자녀 양육을 담당하는 법정비율은 균등이 아닌 독점에 가깝다. 현재 법률상 이혼한 남녀에게 적용되는 80대 20의 자녀양육권 비율은 30여년 동안 변함없이 지켜져왔다. 따라서 호주에서 태어난 대부분의 아이들이 부모가 이혼하면 아버지 없이 편모 슬하에서 자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주말에만 ‘베이비 시터’ 더 못 참아!

이혼율 증가로 고민하고 있는 호주 애들레이드 시의 모습.

게다가 호주는 한국 못지않게 최근 이혼율이 늘어 고민하고 있다. 2001년 호주에서는 대략 10만3000쌍이 결혼했고, 5만5000쌍이 이혼했다. 결혼한 커플 가운데 반수가 넘는 커플이 이혼으로 결말을 맺는 셈이다. 이혼율이 줄기는커녕 점차 늘어나면서, 60%가 넘는 성인이 결혼 후 바로 헤어지는 실정이다. 결국 이혼 가정의 자녀들은 ‘80대 20 법률’로 인해, 부모 모두의 사랑을 충분히 받으며 자라기보단 편모 슬하의 가정환경에서 아버지의 정을 느끼지 못한 채 성장하기 쉽다. 호주의 이혼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받고, 아버지와 충분히 만날 수 없는 가정환경으로 인해 더욱 큰 상처를 받고 있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왜곡된 아버지상’을 가슴속에 간직한 이들이 성장해 새로운 가정을 꾸린 뒤 인내심를 갖고 생활하지 못하고 이혼을 쉽게 되풀이한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이혼의 대물림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 호주 정부는 이혼한 어머니들에게 상당한 액수의 국가 보조비를 지급함으로써 그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전남편한테서 독립할 수 있게 도와준다. 법률상으로도 전남편이 자신의 이혼 가정을 지속적으로 부양할 의무가 있어 이혼 어머니가 경제적으로 별 어려움 없이 아이들을 키울 수 있다. 이렇게 어머니의 권리가 아버지보다 법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앞서고 있다. 그러나 아이를 돌보고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자유롭게 보고픈 심정은 어머니 못지않게 아버지도 강하다. 따라서 현재 자녀양육권을 50대 50으로 바꾸자는 목소리가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는 분위기다.

이혼 어머니들 “이기적 발상” 반발

주말에만 ‘베이비 시터’ 더 못 참아!

방송 중 눈물을 글썽이는 트래버 아더손씨.

‘부정에 맞서는 아버지’ 모임의 회원인 트레버 아더손씨의 경우 5년 전 아내와 헤어졌다. 이혼하기 전 아더손씨는 날마다 딸을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한 달에 두 번, 그것도 아이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는 주말에만 볼 수 있다. 이혼으로 딸이 성장하는 모습을 마음껏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그는 딸과 헤어질 때마다 현재 존재하는 80대 20 자녀양육권 법률이 무척 원망스럽다고 말한다. “내가 범법자도 아닌데 친자식을 마음껏 볼 수 없는 법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혼 어머니들은 50대 50 자녀양육권 주장이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다. 가정에서 ‘자녀를 키운다’는 것은 단지 잠자리에서 동화책을 읽어주는 노릇만이 아니라 부모 자신의 인생 일부를 포기하는 헌신의 삶이 필요하다는 것. “이혼 후 남자가 여성보다 자녀에 대해 더 헌신할 수 있는지 보장할 수 있느냐”는 게 이들 어머니의 되물음이다. 특히 “현재 호주의 이혼 아버지들은 아이의 장래는 생각하지 않고 단지 아이와 함께 있고 싶다는 자신의 희망만 생각한다”며 “이혼 아버지들의 주장은 이기적인 발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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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아버지들' 모임의 로드 하드윅씨.

이에 대해 이혼 아버지인 로드 하드윅씨는 “현재 자녀양육권 비율에 관한 논쟁은 구시대의 논쟁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현재 호주에 사는 많은 이혼 아버지들이 아이들을 헌신적인 자세로 돌보고 키울 준비가 되어 있지만, 호주의 가정법 자체가 이를 막는 게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자녀양육권 비율을 충분히 조정할 수 있는데도 법률상 ‘80대 20’으로 못박아놓아 바꾸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현재 하드윅씨는 호주의 서부 도시인 퍼스에서 매주 라디오 쇼 프로그램‘아버지의 목소리’를 통해 자녀양육권 비율 개정을 여론화하고 있다. 또 자신의 의견에 동감하는 아버지들을 모아 ‘호주의 아버지들’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현재 정식으로 법적 절차를 밟아 자녀양육권 비율을 개정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호주 정부 역시 자녀양육권 비율의 불균등이 남녀 차별의 소지가 있다는 여론의 지적이 계속되자, 의회를 중심으로 자녀양육권 비율 개정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30년 동안 지켜온 현재의 자녀양육권 비율을 빠른 시일 내에 개정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그에 따른 여러 가지 법적 절차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호주의 이혼 아버지들은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계속해서 다양한 방법들을 동원해 법 개정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아버지나 어머니나 모두 똑같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442호 (p66~67)

애들레이드=최용진 통신원 jin00704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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