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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核 없는 核강국’ 일본이 있다

1985년 농축공장 가동 이어 재처리 공장 내년 완공 … 핵 주권 확보 유사시 원폭 제조 시간문제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核 없는 核강국’ 일본이 있다

6월26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폐막된 3차 6자회담에서 북한의 현학봉 대변인은 “미국이 북한에 대한 200만kW의 전력 지원에 참여하고,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하며,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와 봉쇄를 해제한다면, 북한은 영변의 5mWe급 실험용 원자로와 재처리시설인 방사화학실험실, 그리고 이 실험실에서 추출한 물질(플루토늄)로 핵연료를 만드는 핵연료 제조공장을 폐쇄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처리하지도 실험하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밝혀 주목을 끌었다. 이 제의가 매우 획기적인 것 같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2002년 2차 북핵 위기로 무너진 1994년의 제네바 합의 체제로 되돌아가자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미국 대표단도 지적했듯이 제의에는 2차 북핵 위기를 불러온 고농축우라늄 부분이 완전히 빠져 있다. 제네바 합의는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개발을 시도하는 2차 북핵 위기를 일으킴으로써 깨졌는데, 북한은 1차 북핵 위기를 일으킨 재처리 부분을 포기할 테니 자국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라고 주장한 것이다.

원자력 발전소 55기 보유 세계 3위

제네바 합의에서는 북한 핵을 동결시키기 위해 30만kW급 발전소를 1년간 돌릴 수 있는 중유 50만t 지원이 포함됐다. 그런데 이번에 북한은 7배 가까이 많은 200만kW의 전력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했다. 또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하고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와 봉쇄까지 풀어달라는, 제네바 합의에는 없던 새로운 요구까지 내놓았다. 북한은 왜 ‘말장난’을 거듭하며 핵개발을 포기하지 못할까. 이유는 핵이 김정일 정권을 보위해주는 거의 마지막 수단이기 때문. 핵으로 국가를 보위하겠다는 전략은 다른 나라에서도 채택되고 있다. 좋은 사례가 인도와 파키스탄이다. 두 나라는 NPT(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핵개발에 전력해 1998년 핵실험에 성공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으로 핵무장을 허가받은 UN 안보리의 5대 상임이사국은 두 나라에 대해 제재를 가하지 못했다. 북한은 두 나라의 성공을 따르고 싶은 것이다.

‘核 없는 核강국’ 일본이 있다

2005년 완공을 앞두고 마무리 공정이 한창인 일본 롯카쇼무라의 재처리 공장.

그러나 비슷한 꿈을 갖고 있었던 이라크가 미국의 공격을 받아 정권이 무너지는 비극을 본 만큼, 북한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북한과 180도 다른 방법으로 핵전략을 성공적으로 끌고 나가는 나라가 유일하게 원자폭탄을 맞은 나라인 일본이다. 현재 일본은 55기의 원전을 보유한 세계 3위의 원전 대국이다. 원자폭탄을 맞고 패배한 나라가 이렇게 많은 원전을 보유하고 있다면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눈에 불을 켜고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데 6월14일 “일본에 대한 핵사찰을 대폭 축소한다”는 전혀 다른 결정을 내렸다. 이날 IAEA 모하메드 엘바라이데 사무총장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IAEA 이사회에서 “일본의 원자력 개발계획에는 군사에 전용한다는 내용이 전혀 없으며 평화를 위해 이용하는 것으로 한정돼 있다”며 일본에 대한 핵사찰 축소를 공식화했다.

IAEA가 이런 결정을 내린 데는 속사정이 있다. 지금 IAEA의 최대 화두는 이란이 얼마만큼 핵개발을 했느냐를 밝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란에 투입할 사찰관이 모자라다 보니 그동안 IAEA의 핵사찰에 가장 솔직하게 대응해온 일본 담당 요원들을 빼내게 된 것. 일본에는 자체적으로 핵사찰을 실시하는 기관이 있는데, IAEA는 이 기관에 ‘믿고 맡기겠다’며 일본 주재 사찰관을 빼내기로 한 것이다. 일본의 행운은 이것만이 아니다. 지난 40여년간 일본의 원자력계는 핵 주권을 확보하기 위해 지독하게 노력해왔는데 최근 이러한 노력이 곳곳에서 결실을 맺는 ‘행복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세계 원자력계의 불문율 중의 하나는, 핵 농축은 5대 핵강국에서만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투명한 핵 정책 덕분에 IAEA의 신임을 얻어 1985년 일본 본토 최북단인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에 농축우라늄 공장을 짓는 쾌거를 이루었다. 물론 이 공장은 고순도를 요구하는 핵무기가 아니라 실험용 원자로에 쓰이는 저순도의 작은 핵연료를 만드는 것이지만, 일본은 5대 핵강국을 제외하고 최초로 농축공장을 가진 나라가 되었다.



지난해 전북 부안군은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유치를 선언했다가 공황에 가까이 내홍을 겪었다. 그만큼 처분장 건설이 어려운데, 일본은 농축공장을 완공한 덕분에 롯카쇼무라에 92년 처분장을 지었다. 물론 농축공장과 처분장을 짓던 시기 일본에서도 반핵운동이 거셌다. 그러나 롯카쇼무라는 이 문제를 롯카쇼무라 촌장(村長) 선거에 투영시켜 해결하는 지혜를 보였다. 롯카쇼무라 촌장 선거에서는 전통적으로 핵산업 단지라도 유치해서 지역을 발전시키자는 ‘친개발파’와 무원칙한 개발에 반대하는 ‘반개발파’가 맞붙어 왔다. 농축공장은 친개발파가 촌장을 하던 시절 추진되었기 때문에 큰 소동 없이 마무리됐다. 그런데 롯카쇼무라는 반개발파가 촌장을 하던 시절 ‘가장 어렵다’고 하는 처분장을 건설하는 기적 같은 일을 연출했다. 당시 롯카쇼무라 촌장은 쓰치다 히로시였는데 그는 지속가능한 개발을 내걸고 일본 원자력계와 끈질긴 협상을 벌여, 롯카쇼무라의 실리를 극대화하며 처분장 건설을 허가하는 재치를 보였다.

국민에게 막힌 한국의 핵전략

실리적인 반개발파 쓰치다가 촌장을 하던 시절 일본 원자력계는 원전에서 나온 사용후 핵연료를 영국과 프랑스로 보내 ‘MOX 연료’로 재처리하는 사업에 착수했다. 재처리 결과물로 나오는 MOX 연료는 우라늄 농축으로 만든 핵연료보다 17% 정도 값이 비싸다. 그런데 일본은 끈질기게 영국과 프랑스에 재처리를 의뢰했고, 95년에는 두 나라로부터 기술을 지원받아 롯카쇼무라에 MOX 연료 생산을 위한 재처리 공장 건설에 착수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공장은 내년 7월쯤 완공되는데 이 공장이 완공되면 일본은 5대 핵강국이 아닌 나라 중에서 농축을 하는 ‘선행주기’와 재처리를 하는 ‘후행주기’를 모두 갖춘 유일한 나라가 된다. 여기서 원자력 전문가들은 “안보가 극도로 불안해진다면 일본은 농축공장에서 농축 우라늄 원폭을 만들거나, 재처리 공장에서 플루토늄 원폭을 만들 것이다. 지난해 일본은 지구 정지궤도에 위성을 올려놓는 H-2 우주발사체 발사에 성공했다. H-2 우주발사체에 원폭을 올리면 바로 그것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이다. 일본은 평시에는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없지만 유사시에는 이를 가진 국가가 됐다”고 평가하게 되었다.

북한과 일본이 보여준 서로 다른 핵전략 중에서 한국이 선택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관계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한국은 일본 모델을 선택해 진행해오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전략은 ‘처분장 건설’이라는 장벽에 막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처분장 문제가 나올 때마다 폭동에 버금가는 내홍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관계자는 “북한의 핵전략은 미국에 막히고, 한국의 핵전략은 국민에게 막힌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산업자원부는 다시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처분장 유치 신청을 받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지난해 부안사태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단체가 유치신청을 검토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과연 처분장 고개를 넘어 일본처럼 핵은 없지만 핵이 있는 것과 같은 핵강국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한 원전 관계자는 “일본을 이기고 싶다면 북한 핵을 우리 핵으로 인식하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식 발상으로는 어림없다. 그보다는 투명한 핵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성공을 거둬나가는 일본의 예를 착실하게 따라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지적했다.



주간동아 442호 (p64~65)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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