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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신화 | 저승 이야기

강림을 사람 잡는 차사로 임명하노라

아이 신선 강림 ‘저승길 동반자’로 제격 … 지붕 상마루로 들어가 이름 세 번 불러 영혼 인도

  • 류이/문화평론가·연출가 nonil@korea.com

강림을 사람 잡는 차사로 임명하노라

강림은 원래 신선이다. 잠깐 등장하는 ‘전우치전’에서도 그랬듯, 강림은 도술로도 천하를 놀라게 할 만한 도령님이었던 것이다. 거지들을 벗삼아 천하를 주유하며 행각하는 ‘노닐파’이기도 하고, 못된 놈을 보면 서슴없이 나서서 징치하는 ‘행동파’이기도 한 강림도령. 세상에 거칠 것이 없는 아이 도령 강림!

염라대왕은 똑똑한 강림이를 모셔다 차사로 임명하고자 한다. 염라대왕이 강림이를 모시고 싶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승과 저승을 오가면서 수명이 다한 사람들을 저승으로 데리고 가는 역을 왜 강림이에게 맡기고자 하는가 말이다. 다른 이도 아니고 왜 하필 ‘아이 신선’ 강림인가?

사람들이 저승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저승 가는 길을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저승차사를 보내면 끝내는 안 간다고 버티며 싸우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승법보다 저승법이 맑고 깨끗하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아니, 더럽고 축축하더라도 이승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삶과 죽음의 경지(境地)를 그냥 그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자가 필요한 것이다. 술 한잔을 나누며 시를 읊기도 하고 함께 노닐다가 신선의 도를 가르쳐도 좋을 법한 자. 때로는 용력이 필요하기도 할 것이다. 강제로라도 데리고 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닐듯이 저승으로 안내해줄 자, 그런 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을까?

강림을 사람 잡는 차사로 임명하노라

하늘 땅 신인 천지왕과 3000년을 넘게 산 인간 쉬맹이가 대결하는 모습. 쉬맹이는 신의 권위를 무시하며 저승에 가기를 거부했던 마지막 인간이다.

그렇다. 염라대왕이 아닌 사람들이 가장 원했던 저승길의 동반자는 ‘무서운 저승차사’가 아니라, ‘아이 신선’인 강림도령인 것이다. 그래서 ‘아이 신선’ 강림도령을 데려다가 열여덟 각시를 거느린 ‘젊은 사령’으로 만들어놓고서도 여전히 강림도령으로 불렀던 것이다.



몸을 가질래? 혼을 가질래?

염라대왕이 김치원에게 말하기를,

“김치원님아, 강림이를 잠깐만 빌립시다. 저승에서 부리다가 보내리다.”

“아니됩니다.”

“그러면 우리 반 조각씩 나누어 가지세.”

“좋습니다.”

“몸을 가지겠습니까, 혼을 가지겠습니까?”

참으로 의미심장한 구절이 아닐 수 없다. 당신은 이 상황에서 어떤 답을 준비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당신은 당신의 몸과 혼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몸을 가질 것인가, 아니면 혼을 가질 것인가?

어리석은 김치원님이 말하기를,

“몸을 가지겠습니다.”

그제는 염라대왕이 강림사자 강파도 머리 위 가마의 머리털 3개를 뽑아서 저승으로 돌아간다.

그래, 정말 그렇다. 김치원이 아니고 ‘어리석은 김치원’이다. 몸을 가지겠다는 ‘어리석은’ 김치원이야말로 우리 인간들이 원하는 바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늘 몸으로 사는 존재들이니까. 혼은 어디에다 버려두고 남은 몸, 그 몸에 온갖 사랑과 애정을 쏟아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강림이 동헌마당을 걷다 말고 갑자기 능경대를 짚은 양 우두커니 서 있구나. 울럿이(얼빠진 자세로 멍청히) 서 있구나. 김치원이 술을 먹다 말고 말하기를,

“강림아, 이 술 한 잔 먹고 저승 갔다 온 얘기나 해봐라. 어디 한번 들어보자.”

한 번 말해도 펀펀, 두 번 말해도 펀펀 강림이 잠잠하다. 울컥하는 김치원.

“저놈 봐라, 저승 염라대왕을 오라지었노라 잡아왔노라 하고는 말대답도 아니하는구나.”

툭 건드리니 뎅그랑이 푸더지는구나(자빠지는구나). 입에 거품이요, 코에 송인(방금 죽은 송장의 콧속이 거무스름한 것)이 올라 강림이 죽어간다. 혼이 빠져나간 강림, 가까이 가서 보니 이번에는 진짜로 새파랗게 죽었구나.

강림의 큰부인이 동헌마당으로 달려나와 말하기를,

“원님아, 우리 낭군 무슨 못한 일 있습디까? 강림사자 강파도를 살려냅서!”

원님 앞으로 달려들어 허우 튿으는 게 원님도 죽고 보니 옛날에는 사람 죽어 대살법(代殺法)이 있었다네.

강림을 사람 잡는 차사로 임명하노라

조선시대 장례에 쓰였던 방상씨탈.

강림의 큰부인 섭섭해하여 대·소상 3년에 이르는 상을 치러 이때부터 기일 제사법이 마련됐다.

물명주 한 동을 내어주며,

“이걸로 낭군님 옷 해 입혀라.”

옷을 해 입히니 베 한 동을 내주며,

“이걸로 매치(시신을 감싸는 것)하라.”

삼베로 시신을 휘감아 묶고는 섭섭하여 적삼 들러 초혼하고, 없는 곡식 낭자하여 칠성판을 들러놓고,

“조관하고 입관하라.”

입관하고 섭섭하여 성복제나 해볼까? 성복제 하고 섭섭하여 이제는 묻자고 하니까 택일하고 섭섭하여, 일포제 하고 섭섭하여, 조관하고 들어내어, 동관하고 들어서 나가,

마흔여덟 상여꾼 말캐나무 상여화단 ‘어기낭창(상여노래에서 받는 소리)’하여도 섭섭하다. 하관하고도 섭섭하여,

“초우제나 지내라.”

묻어서 초우제 지내고 섭섭하여 재우제, 삼우제, 졸곡, 초하루 보름 삭망 시안상을 놓아서 아침 점심 저녁 식사상을 놓는구나.

그래도 섭섭하여 1년에 한두 번 잊어버리지나 말자고 세 명절 기일 제사법을 마련했구나.

“기일 제사 명절을 지내라.”

적배지 잊어버린 까마귀

저승에 간 강림에게 염라대왕이 분부하길,

“인간사람 여자는 칠십, 남자는 팔십에 차례차례 저승으로 데려와라.”

강림이가 적배지 붙여두려고 인간세상으로 내려오다가 길가에 앉아 쉬고 있으니 까마귀가 까옥까옥하며,

“그 적배지를 내 앞날개에 붙여주십시오. 인간세상에 가서 붙여두고 오겠습니다.”

강림이 적배지를 까마귀에게 줬더니 앞날개에 달아서 인간세상으로 날아간다. 까마귀가 가다 보니 말이 죽은 밭에서 말을 잡고 있으니, 말 피 한 모금 얻어먹고 가려고 까옥까옥 울어댄다. 이 소리에 말 잡던 백정이 말발굽을 끊어 까마귀에게 집어 던지니 까마귀가 놀라 날아오르느라 날개를 푸드덕거렸다. 그 바람에 적배지가 후두둑 떨어진다. 담꼬망에 있던 백구렁이가 그 적배지를 받아 재빠르게 먹어 들어간다.

그때 나온 법으로, 칠성(뱀·부를 주는 사신)은 죽는 법이 없어 아홉 번 죽어 열 번 환생하는 법이다.

까마귀가 옆을 쳐다보니 솔개가 앉아 있어 말하기를,

“내 적배지 돌려달라, 까옥.”

“아니 보았노라, 뺑고로록.”

그때 나온 법으로 지금도 까마귀와 솔개는 만나면 서로 원수지간이 되어 싸우는 법이라.

결국 까마귀는 적배지 없이 인간세상으로 내려왔네.

“아이 갈 데 어른 갑서.

어른 갈 데 아이 갑서,

부모 갈 데 자식 갑서.

자손 갈 데 조상 갑서.

조상 갈 데 자손 갑서.”

거은 물 거은 다리를 주었다네. 제 목숨이 다해 저승 가야 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뒤바뀌어버렸다네.

까마귀도 사납게 울어 사나운 법이라. 아침에 우는 까마귀는 아이 죽을 까마귀, 낮에 우는 까마귀는 젊은 사람 죽을 까마귀, 오후에 우는 까마귀는 망년 노인 죽어갈 까마귀, 지붕 위의 상(上) 가지에서 우는 까마귀는 상인 죽을 까마귀, 중간 가지에서 우는 까마귀는 중인 죽을 까마귀, 낮은 가지에서 우는 까마귀는 하인 죽을 까마귀, 꺅꺅! 듣기 싫은 소리로 우는 자장 까마귀는 싸움 날 까마귀, 동데레 앉아 우는 까마귀는 양식 없는 손님들이 올 까마귀, 서쪽에 앉아 우는 까마귀는 소문 기별 올 까마귀, 초저녁에 우는 까마귀는 불(화재)이 날 까마귀, 밤중에 우는 까마귀는 역적도문 살인 날 까마귀.

이리하여 저승 초군문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가득 찼다네. 깜짝 놀란 저승의 최판관이 강림이에게 묻기를,

“차례차례 오라고 했는데 어떻게 아이 어른 다 왔느냐?”

이에 강림도 놀라 급히 까마귀를 잡아서 문초하니 ‘적배지는 말 죽은 밭에 들어가서 잃어버렸다’고 이실직고한다.

강림이 밀대로 된 곤장 보릿대 형틀에 때죽나무 막대로 까마귀 아랫도리를 후린다. 그때의 법으로 ‘갈아놓은 밭의 까마귀 걸음’이라 하여 아장아장 앙기조침 걷는 법을 마련했다네.

강림에게 염라대왕이 분부하되,

“동방삭이를 잡으려고 아이 차사가 가면 어른이 되고 어른 차사가 가면 아이가 되어도 잡아오질 못하니 어찌된 일인고? 네가 동방삭이를 잡아오면 한 달을 놓아주마.”

“알겠습니다.”

강림이가 인간세상으로 내려와서 검은 숯을 냇가에서 발강발강 씻고 있으니까 동방삭이가 지나가다 말고 말하기를,

“어떤 일로 숯을 씻고 있느냐?”

“검은 숯을 백일만 씻으면 하얀 숯이 되어서 백 가지 약이 된다 하여 씻고 있습니다.”

“하하하! 이놈아, 나 동방삭이 삼천년을 살고 있지만 지금껏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강림이가 방긋 웃으며 옆에 차고 있던 홍사줄을 풀어 동방삭이 몸을 묶으니,

“어떤 차사가 와도 날 잡을 차사는 없더라만 동방삭이 삼천년을 살다 보니 강림의 손에 잡히는구나. 어서 저승에 가자.”

염라대왕에게 바쳤더니 염라대왕 말하기를,

“강림이 똑똑하고 엽렵하니 사람 잡는 인간 차사로 들어서라.”

이렇게 해서 강림이 드디어 인간사람 잡아가는 강림차사가 되었다네.

강림을 사람 잡는 차사로 임명하노라

조선시대 장례 행렬에 방상씨탈이 등장한 모습을 일본인 사진작가 무라야마 사토시가 찍었다.

봉황의 눈 서슬 퍼런 차사

느닷없이 오면서도 어김이 없고 비정하기로는 죽음의 사자, 차사만한 것이 없는 법이다. 차사는 염라대왕이 있는 저승으로 사람을 데려가기 위해 이승으로 내려온다. 차사는 복장부터 서슬이 퍼렇다. 남색 바지에 백색 저고리, 자주색 행전을 두르고 백색 버선에 미투리를 신고 있다. 머리에 까만 쇠털 전립(戰笠)을 쓰고 한산모시 겹두루마기를 두르고 남색 쾌자를 걸친다. 옆구리에는 붉은 오랏줄을 달고 옷고름에는 적배지를 달아매고 팔뚝에는 자신의 신분을 상징하는 석자 오치짜리 팔찌걸이를 찬다. 가슴에는 용(勇) 자, 등에는 왕(王) 자가 새겨져 있고 등뒤에는 상여의 용두머리를 매어 끌고 갈 행차배를 지고 온다. 눈은 부릅뜬 것이 봉황의 눈이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강림차사는 적배지(赤牌旨·붉은 천에 저승에 갈 자의 이름이 쓰여 있다)를 들고 마을 사람들의 생명을 관장하는 본향 당신에게로 가서 호적과 장적을 맞춰본 뒤 데리고 갈 사람의 집으로 간다. 그러나 집안의 신들이 지켜주기 때문에 영혼을 잡아가는 데 번거로움을 겪는다. 문 앞에는 일문전신이 있어 못 들어가고, 뒷문으로 들어가자니 뒷문전신, 부엌으로 들어가자니 조왕신이 앞을 가로막는다. 그래서 차사는 지붕 상마루로 들어가 죽은 자의 나이와 이름을 크게 세 번 부른다. 초혼(招魂) 이혼 삼혼. 그러면 육신에 묶여 있던 영혼이 홀연히 몸을 떠나 비로소 집 밖으로 나가게 된다. 강림차사가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 저승으로 가서 저승차사에게 인계하면 저승차사가 비로소 명부의 세계로 데리고 간다.



주간동아 439호 (p78~80)

류이/문화평론가·연출가 nonil@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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