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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한국 경제 빨간불? 파란불?

한국경제 위기 “과장 됐다 vs 무슨 소리”

정부, 수출 잘되고 지표상 괜찮은 성적 … 투자 급감, 체감 경기 바닥 국민들 “위기다” 논란 가열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한국경제 위기 “과장 됐다 vs 무슨 소리”

한국경제 위기 “과장 됐다  vs  무슨 소리”

현재 우리 경제는 겨우 수출로 버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출용 자동차를 선적하고 있는 모습.

인천 남동공단에서 전자부품을 제조하고 있는 중소기업 대표 K씨. 그의 회사는 현재 한 대기업에 부품 한 개당 100달러씩 납품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 대기업에서 중국에서 생산된 같은 부품을 들고 와서 “중국산 부품은 개당 57달러에 불과하니 70달러로 낮춰달라”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K씨는 “우리 회사 부품을 중국산과 비교하는 것은 난센스”라면서 “품질에서 그만큼 차이가 있는데 단가 인하는 말도 안 된다”고 거절했다.

K씨의 판단으로는 중국산 부품의 품질 수준은 자기 회사의 80~90% 수준. 외형상으로는 거의 차이를 느낄 수 없지만 중국산은 내구성이나 신뢰성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 K씨는 “전자부품의 특성상 이 단계 이후부터는 1%의 품질 향상을 위해서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2~3년 동안은 자기 회사 부품이 중국산에 비해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

문제는 이후다. 그 역시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중국의 몇몇 시에서 어떻게 K씨 회사를 찾았는지 부시장 등을 파견해 각종 인센티브를 제시하면서 경쟁적으로 중국 이전을 권유하고 있을 정도다. K씨는 “남동공단에서 50명이 넘는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업체의 대표 가운데 ‘중국행’을 고민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K씨 같은 중소기업인들의 한국 탈출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올 들어 국내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의 해외 직접투자는 각각 6억800만 달러(620건)와 1억2300만 달러로, 이를 합칠 경우 대기업의 6억6200만 달러보다 많았다. 중소기업의 해외투자는 금액 기준으로 전년 동기보다 55.9%나 늘었다. 지역적으로는 전체 중소기업 해외투자의 55%인 3억3481만6000달러가 중국 지역에 집중됐다.

경제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도 여기에 있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들의 한국 탈출이 이어지면서 국내 투자가 줄어들어 장기적으로 성장잠재력을 좀먹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 경제가 자칫 투자 부진→고용 감소→개인소득 감소→소비 감소의 악순환에 빠져드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일각에서 주장하고 있는 ‘경제위기론’은 이런 우려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업 한국 탈출 가속도 고용 감소쭻소비 감소 악순환 우려

물론 현재 우리 경제가 ‘위기’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도 적지 않다. ‘위기’라는 말은 경제학의 전문용어도 아니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 위기인지에 대해서는 개인마다 천차만별이다. 그런 점에서 ‘경제위기’ 논란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다. 다만 이를 계기로 우리 경제의 실상을 정확히 진단하고, 이에 대한 처방이 무엇인지에 대한 공론의 장으로 삼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위기론’에 대한 시각이 ‘사리’에는 맞지만 ‘도리’에는 맞지 않다고 말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노대통령은 최근 언론의 ‘경제위기론’ 주장에 대해 자주 “의도를 갖고 위기를 부풀리고 있다”고 말해왔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이에 대해 “노대통령이 그런 말을 하기 때문에 경제학자들이 입을 다물고 있다”면서 “나중에는 우리 경제의 실상과 미래를 긍정적으로 채색한 자료만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경제의 실상은 어떤가. 한국은행이 5월21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올 1·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3% 늘었다. 지난해 2·4분기의 2.2%를 저점으로, 3·4분기 2.4%, 4·4분기 3.9%로 경제성장률이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전 분기 대비로는 1·4분기 GDP 성장률(계절 변동 조정)이 0.8%에 그쳐 지난해 4·4분기의 2.7%에 비해 크게 둔화됐다.

그럼에도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기는 ‘최악’이다. 일부 자영업자들은 “1997년 말 외환위기 직후보다 더하다”는 얘기까지 한다. 이는 지표상으로도 어느 정도 확인된다. 우리 GDP의 거의 55% 수준에 달하는 민간소비가 올 1·4분기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 줄어 지난해 2·4분기 이후 4분기째 감소세를 보였다. 또 전분기인 4·4분기와 비교해도 0.3% 감소해 소비 위축이 심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민간소비와 함께 경제성장을 뒷받침해주는 또 하나의 축인 투자 역시 부진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투자 중에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올 1·4분기 설비투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3% 줄어 4분기째 마이너스 행진을 계속했다. 전 분기보다는 1.5%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일시적인 경기 부양에는 효과적인 건설투자 역시 정부의 부동산 규제 강화 영향으로 지난해 4·4분기에 비해 1.3%가 줄어 2001년 4·4분기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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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다한 가계 부채는 극심한 내수 침체의 원인 가운데 하나다. 손님이 없어 썰렁한 재래시장

다만 재화와 서비스의 수출은 1·4분기에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6.9%나 급증해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무역협회 김재숙 무역진흥팀장은 “중국 수출이 급증하고 있는 데다 반도체 휴대전화 자동차 컴퓨터 조선 등 5대 수출 품목의 수출 증가율이 높아 전체적으로 수출 급등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최근의 유가 급등 등 원자재가 인상이 반영되는 7월 이후에는 수출 급증세가 꺾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수출은 외부 환경에 워낙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항상 안심할 수는 없다. 최근에는 ‘중국 쇼크’와 국제유가 급등, 미국 금리인상 가능성 등의 요인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또 반도체 휴대전화 등 수출이 잘되는 품목의 경우 대기업들이 자동화를 통해 생산해내기 때문에 일자리 창출에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한마디로 수출이 늘어도 내수로 연결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처럼 수출에 의존하고 있긴 하지만 경제 지표상으로는 그런대로 괜찮은 성적을 내고 있음에도 경제전문가들이 우려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투자가 부진하기 때문이다. 투자야말로 단기적으로는 생산능력을 증가시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서민 중산층의 소득능력을 높여 신용불량자 문제나 청년실업을 해결할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증대시켜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킨다. 정부가 올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를 ‘투자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로 정한 까닭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투자가 부진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무엇보다 그동안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가 상당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LG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우리 기업들의 현실상 적어도 1조원이 넘는 대단위 신규 투자는 오너들의 최종 결심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검찰 수사로 오너들의 신변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데, 누가 감히 오너 책상 위에 투자안을 올릴 수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나아질까. 경제전문가들이나 재계 관계자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단기적으론 투자 확대를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편이다. 무엇보다 노무현 대통령의 ‘개혁정책’이 현실 경제에서는 일부 부작용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도 “노대통령의 철학이나 개혁정책이 장기적으로는 한국 사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것임이 틀림없지만 현실적으로는 기업 투자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 위기 “과장 됐다  vs  무슨 소리”

배드뱅크에서 상담을 하고 있는 신용불량자들.

‘성장과 분배’ 슬기로운 조화 묘수 찾을 수 있나

가령 접대비 한도를 50만원으로 규제하는 것만 해도 그렇다. 장기적으로는 반부패 차원에서 맞는 방향이지만 현재로선 오히려 소비를 위축시키는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정말 돈 있는 사람들은 필리핀이나 동남아시아 등지로 유흥 여행을 떠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말하자면 “깨끗한 물에서는 연꽃이 피지도 않거니와 갑자기 깨끗한 물이 되기도 힘든 것 아니냐”는 얘기인 셈이다.

노대통령의 주요한 어젠더 가운데 하나인 지방균형발전 역시 마찬가지다. 당장 재계에서는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지방에 누가 투자하겠는가”라는 쑥덕거림이 나오고 있다. 행정수도 이전으로도 지방 발전에 큰 획을 그은 만큼 수도권 지역에 대한 투자도 함께 풀어주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아야 기업들이 투자에 나설 것이라는 지적이다. 재경부 관계자들도 “지방 발전은 정말 용감한 정책”이라고 말할 정도다.

재계에서는 성장 제일주의에 대한 노대통령의 비판적인 태도 역시 기업 투자의 발목을 잡는다고 말한다. 재계 쪽에서는 분배를 강조하다 보면 노동비용 상승 등이 예상되는데 누가 선뜻 투자에 나서겠느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물론 노대통령 주변 인사들은 “노대통령은 시장 지상주의나 성장 맹목주의를 비판하는 입장이지 분배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재계는 노대통령이 분배를 강조하고 있다고 본다.

한국경제 위기 “과장 됐다  vs  무슨 소리”

노무현 대통령이 5월17일 이헌재 경제부총리 등 경제 관련 장관 및 참모진이 참석한 가운데 경제상황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물론 재계의 이런 인식이 ‘오해’일 수도 있다. 과거 우리 경제가 분배를 뒷전으로 놓은 ‘불균형 성장정책’을 통해 발전해왔기 때문에 재계뿐 아니라 그런 성장 전략으로 성공해왔다고 자부하는 경제관료들도 ‘분배’라는 말만 들어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심한 빈부 격차로 인해 건전한 성장을 계속하지 못하고 주저앉았던 남미의 경우에서 보듯 성장과 분배의 슬기로운 조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경제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내에 뭔가를 확실히 이뤄내겠다는 조급증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5년은 노대통령 자신의 국정운영 철학을 국민에게 인식시키기에도 짧은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노대통령은 ‘과욕’을 부리다가는 뜻하지 않게 경제에 부담만 주고 개혁에서도 성과를 내지 못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주간동아 439호 (p12~14)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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