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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의 그늘 '백수와 미숙아'

일거리 찾지 않는 니트족 급증 ‘63만명 추산’ … 체격·체력 미달 취학 유예 어린이도 증가세

  • 도쿄=조헌주 동아일보 특파원 ziancho@hanmail.net

일본의 그늘 '백수와 미숙아'

한 달간 경상수지 흑자 21조5650억원.

일본은행의 올해 2월 통계다. 15조원을 넘는 무역 흑자에다 각종 서비스 수입을 합한 2월의 경상수지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입만 열면 “불황이라 못살겠다”던 일본인들의 말은 엄살인 듯하다. 하지만 통계상의 수치가 행복도와 정비례하는 것은 아닌 법,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 고도성장 사회 일본에도 그늘은 있다.

일본의 그늘 '백수와 미숙아'

일본 도쿄의 릿쿄대학 학생들.

일거리를 애써 찾지 않는 무업(無業) 인력을 일컫는 ‘니트(NEET: Not in Employment, Education or Training)족’이란 말이 요즘 일본 사회에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니트족은 63만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10년 전에 비하면 1.6배 늘어난 수치다. 특히 만 15~34살 연령층에서는 2%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니트족은 외형상 일할 의사는 있지만 한 가지 직업이나 직장에 전적으로 얽매이기 싫어하는 ‘프리터(Freeter·영어의 free와 독일어의 arbeiter가 합쳐진 말로 특정한 직업 없이 원할 때만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와 양상이 비슷한 측면도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각종 통계에서 프리터와 니트족을 따로 분리해서 다루는 경우가 많다. 일본 정부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프리터는 417만여명으로 추산됐다. 취업, 미취업 상태가 불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경우가 프리터라면, 여러 가지 원인에 따라 일자리를 아예 갖지 않는 경우를 니트족으로 볼 수 있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최근 이 같은 일본 사회의 현상을 보도하면서 니트족의 유형은 ‘양키형’, ‘방안 틀어박히기형’, ‘겁쟁이형’, ‘좌절형’ 등 4가지로 분류된다고 소개했다.



취업·실직 반복 프리터도 417만여명

양키형은 반사회적 유형으로 향락, 퇴폐적 특징을 갖고 있다. 당장 좋으면 그만이라는 생각밖에 없다. 부모 집에서 더부살이, 기생(寄生)하는 경우가 많다. 선진국 특유의 타입으로 각국에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방안 틀어박히기형은 개인의 성격상 사회와 관계 맺는 방식이 매우 서툴러 방안에 틀어박혀 지내는 경우다. 당초에는 초·중·고교생의 집단따돌림, ‘이지메’ 같은 10대만의 문제로 인식되었으나 이제는 20, 30대에서도 적지 않게 발견되고 있어 사회문제화됐다.

겁쟁이형은 취직을 눈앞에 두고 이러저러한 생각을 너무 많이 하다가 겁을 먹고 옴짝달싹 못하고 마는 타입이다.

좌절형은 취직했다 금세 그만두고 이내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타입이다. 아르바이트 자리도 제대로 소화해내기 어려운 유형이다.

일본의 일부 사회학자들은 이 같은 니트족의 4가지 유형 가운데 겁쟁이형과 좌절형을 일본 사회 특유의 병리적 현상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하면 똑같은 시기에 일제히 취직하고, 같이 승진하는 것이 일본의 일반적 기업 풍토이기 때문에 일단 한 회사를 그만두면 재도전의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일본 사회다. 이 때문에 고등학교나 대학 졸업 후 특정한 회사를 정해 입사한 뒤 ‘과연 잘 적응해낼 수 있을까’ 하는 심리적 스트레스가 크다는 것. 니트족을 연령별로 보았을 때 고교 졸업 후 1년 이내인 19살이 많은 것은 취업난 영향도 있겠지만 이런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니트족 일부가 개인 성향 때문에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세상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막가파’식 생각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사회불안정 요인이기 때문에 종합대책을 요구하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차세대 사회를 맡아 이끌어나갈 직업인을 육성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붕괴된 것이 아닌가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새 학기는 한국보다 한 달 늦은 4월에 시작한다. 올 봄 초등학교(일본에서는 소학교로 부른다)에 입학한 새싹들은 지금쯤 그새 사귄 친구들과 함께 뛰놀며 봄비 맞은 잔디처럼 무럭무럭 크고 있다.

그러나 만 6살이 넘어 학교에 입학해야 하지만 학교 울타리 밖에서 지내는 ‘취학 유예’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불임치료 기술의 발달로 체외수정을 통해 태어난 쌍생아, 조산 등으로 체중이 정상에 훨씬 못 미치는 상태에서 태어나 인큐베이터 신세를 져야 했던 미숙아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입학 후에도 동급생에 비해 체격이나 체력 차이가 커서 적응하는 게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부모들이 아예 취학시기를 1년 늦추는 경우가 있다. 현재 일본에서는 보호자가 입학 유예를 희망하는 경우 소아과 의사 등의 진단소견서를 첨부해 교육위원회에 요청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만 6살이 되는 자녀를 둔 부모는 자녀를 학교에 보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따라서 특별한 사정이 있어 취학할 수 없는 경우 일본은 취학 유예 결정을 받도록 하고 있다.

원생이 많은 유치원에서는 이처럼 ‘나이를 넘긴’ 유치원생들이 많아 아예 따로 반을 편성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도쿄에 사는 A군(만 6살)의 경우 1998년 2월 출산 예정일보다 4개월이나 빠른 임신 6개월째에 태어났다. 출생시 체중은 겨우 700g. 조금만 출산이 빨랐어도 생명을 건질 기회가 없을 뻔했다. 병원의 신생아 중환자실(ICU)에서 치료를 받고 무사히 퇴원했다. 그러나 성장은 더뎠고 걸음마를 한 것도 3살이 되어서였다. 만 6살을 넘긴 현재도 키는 104cm, 체중 14kg으로 만 4살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출산율 낮은데 미숙아 문제도 겹쳐

다른 아이들과 함께 초등학교에 다니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한 교육위원회는 부모에게 건강상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위한 양호학교 초등부에 보내도록 권했다. 그러나 부모는 1년만 기다리면 정상적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는 체력이 생길 것이라며 내년 봄으로 입학을 연기해주도록 요청했고 현재는 유치원 ‘재수’ 중이다. 조산하지 않고 정상 출산했다면 올 6월에 만 6살이 되기 때문에 내년 4월에 입학하는 것이 정상인 셈이다.

출생시 체중 1kg 미만의 아이는 ‘초미숙아’로 불린다. 20년 전에는 이들 중 약 절반이 사망했다. 그러나 현재 일본의 경우 의료기술 발달로 약 85%가 생존한다. 이 가운데 약 80%는 초등학교에 진학하고 있다. 하지만 진학시 키와 몸무게가 표준치에 못 미치는 경우가 절반이나 된다.

미숙아를 둔 부모가 교육위에 취학 유예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하는 경우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부모의 취학 유예 신청권이 법률상 보장돼 있으나 교육위 담당자들의 이해 부족 또는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신청이 무시된다. 전례가 없으면 움직이려 하지 않는 관료주의 문화가 교육계에도 침투해 있는 것.

후생성 조사에 따르면 몸무게가 1kg이 안 되는 초미숙아 출생 수는 1980년 전체 신생아 160만여명 가운데 약 1500명. 그러나 2002년에는 118만여명의 신생아 가운데 약 3000명으로 늘어났다. 절대 수가 20여년 만에 2배로 늘어났으며 비율은 3배나 증가했다. 독신자 증가와 출산 기피 풍조 속에 그러잖아도 신생아가 줄고 있는 터에 미숙아 문제까지 등장하게 된 것은 분명 고도성장 사회의 그늘진 구석임이 틀림없다.

일본의 그늘 '백수와 미숙아'

5월 축제를 즐기는 도쿄대학 학생들.

현재 일본 사회는 미숙아뿐만 아니라 정상적으로 초등학교에 진학한 어린이들의 경우에도 체력이 현저히 떨어져 문제가 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영양 섭취 상태는 좋아 체격은 커졌다. 비만아동의 비율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범죄나 교통사고에 대한 우려, 걷는 것을 싫어할 수밖에 없는 도시생활 패턴, 게임 탐닉 등 각종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운동 부족으로 아이들의 체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문제는 체력부족이 자신감의 상실로 이어져 니트족 발생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니트족이 사회의 불안정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는 일본 사회 현실을 생각해보면 역시 ‘체력은 국력’임이 틀림없는 것 같다.



주간동아 439호 (p50~52)

도쿄=조헌주 동아일보 특파원 zianc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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