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7

2004.06.03

“자폐아는 교육받을 권리 없나요”

조기치료 위한 통합교육기관 없어 … 일반 학교는 입학 거부, 사설기관은 비싸 ‘엄두도 못내’

  •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입력2004-05-27 18: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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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폐아는 교육받을 권리 없나요”

    5월20일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 자리잡은 상금복지회의 단기보호센터에서 십대의 자폐아동들이 특수교사의 도움을 받아 퍼즐놀이를 하고 있다.

    선현오군(14·서울 금천구 시흥동)은 꿈꾸는 듯한 눈망울을 껌뻑이는 해맑은 얼굴의 소년이다. 동생이 어질러놓은 방을 깨끗이 정리하는 일은 현오의 특기. 언뜻 보면 그저 평범한 현오는 사실 ‘발달장애 3급’의 자폐아다. 현오는 어린 시절 다른 아이들처럼 뒤집기도, 옹알이도 하지 않고 엄마와 눈조차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특수학교에 다니는 현오는 언어장애로 인해 ‘우어어’ 소리를 내면서 발성연습을 하고, 낯선 공간에 가면 불안 때문에 가끔 벽에 머리를 박는다.

    현오의 어머니 조문정씨(40)는 종갓집 장손으로 태어난 현오에게 인생을 걸었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조씨는 남편 월급의 80%를 현오의 치료에 쏟아부었다. 과거 경기 수원시에 살았던 조씨는 안양시 인덕원의 특수교육원으로, 서울 강남의 언어치료실로, 동네 놀이방으로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일을 당연한 일과로 여겼다. 특수치료는 의료보험 혜택조차 받을 수 없어 가계 부담은 너무나 컸다.

    지자체 프로그램은 2년 넘게 기다려야

    하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치료비나 고생은 주위의 편견 어린 시선이나 냉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지하방에 사는 건 아무렇지 않지만 “현오를 시설로 보내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조씨의 가슴은 미어진다.

    더 안타까운 일은 자폐 증세를 보이는 현오가 병원에서 냉대받을 때다. 조씨는 최근 귓속으로 긴 막대를 쑤셔넣은 현오를 데리고 동네의 이비인후과로 달려 갔다. 하지만 병원 십자 표시만 봐도 피하는 현오가 병원에서 ‘깍깍’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을 치자 의사는 응급처치는 고사하고 다른 환자에게 방해가 된다며 현오를 골방에 방치했다. 5시간이나 지나 겨우 진찰한 의사는 현오의 귓속을 슬쩍 들여다본 후 치료조차 하지 않고 처방전을 바로 내밀었다. 기다리는 일에 이미 익숙해졌지만 현오를 병원으로 데리고 갈 때마다 조씨의 마음은 너무나 무겁다.



    세상과 단절된 채 자기만의 세상에 몰두해 살아가는 자폐아. 현오와 같은 자폐아들이 5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지만 자폐증에 대한 사람들의 몰이해와 턱없이 부족한 교육·치료·복지시설로 가족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교육현장에서 소외됨은 물론 자폐아를 배려해야 할 의료인조차 이들의 진료를 기피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자폐아동의 수는 점차 늘어나고 있으나, 이들의 삶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줄 시스템은 전무한 실정이다.

    자폐증이란 현대의학조차 뚜렷한 발병 원인을 규명하지 못한 난치병. 다만 자폐 증세는 뇌 구조의 문제로 발생한다는 ‘신경해부학적 가설’이 가장 유력하다. 과거 자폐증은 ‘사회생활을 기피하고 자기만의 세계를 고집하는 성격장애’ 정도로 인식돼왔지만, 자폐의 증상은 훨씬 다층적이다. 신석호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타인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 사회성 결여, 의사소통 장애, 좁은 범위로의 관심 집중 등이 자폐아들의 공통된 특성이며 사람에 따라 공격행위, 자해행위 따위 증세가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일반 아이들과 소통 기회 봉쇄된 셈

    자폐가 발달장애로 공식 인정된 시점은 2000년. 이전까지는 정신지체나 정신질환과 비슷한 증상으로 치부돼왔다. 하지만 환각이나 망상에 시달리는 정신분열병보다 더욱 치료가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시각장애, 청각장애, 뇌성마비 등에 비해 자폐는 특수성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자폐아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바로 교육. 자폐아가 성인이 됐을 때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능력은 조기 특수교육 여부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난다. 따라서 자폐아의 부모가 취학 전 아이들의 발달을 위해 언어치료, 작업치료, 놀이치료, 미술치료 등에 매달리는 것. 하지만 이러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기관이 없음은 물론 일부 사설기관의 경우 한 달 비용이 100만원에 육박해 서민층은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 교회나 성당·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운영하는 복지 프로그램이 있지만 이곳에 들어가려면 2년 넘게 기다려야 할 정도로 대기자가 늘어서 있다.

    자폐아가 학교를 들어가는 과정에선 또 한번 전쟁을 치른다. ‘자폐’라는 장애가 이들의 학습권을 영위하는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서울 J초등학교 6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유리양(12·가명)은 얼마 전 특수학교로 전학했다. 이양이 어느 교실로 들어가건, 학교 밖으로 나가건 신경을 기울이지 않는 교사들의 무관심 때문이었다. 이양의 부모는 종종 “수업 중 유리가 없어졌다”는 담임교사의 전화를 받으며, 딸의 겉도는 학교생활을 지켜봐야만 했다. 특수학급과 소속반을 오가며 이동수업을 받는 이양을 어느 누구도 챙기지 않았고, 이양은 그 나이에 익혀야 할 사회규범을 전혀 배울 수 없었다.

    “자폐아는 교육받을 권리 없나요”

    자폐아동을 키우고 있는 이성미, 박진숙, 김금란, 조문정씨 (왼쪽부터)는 “자폐아동이 살아가기 위해 국가의 지원이 필수적”이라 강조했다.

    자폐아인 딸이 다른 비장애인 친구들과 소통하며 살아가길 바랐던 이양의 어머니는 ‘통합교육’의 한계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인 한국육영학교의 한은주 교감은 “일반학교에서 제대로 된 통합교육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거나, 교사와 동료들의 과잉보호 때문에 다시 특수학교로 돌아오는 자폐아동이 많다”며 “자폐아동이 자신의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도록, 일선 교사의 이해와 관심이 절대적”이라고 설명한다.

    서울 영서중학교 2학년인 자폐아 김홍휘군(14) 역시 통합교육을 받고 있다. 김군의 어머니 백금순씨는 아들 옆을 늘 그림자처럼 지키며 학교생활을 보조하고 있다. 다행히 친구들과 교사들의 도움으로 김군의 학교생활은 지금까지 성공적인 편. 과거 바지를 모두 벗고 소변을 보던 김군은 비장애인 친구들과 어울리며 속옷만 벗고 볼일 보는 방법을 알게 됐다. 백씨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통합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재의 여건으로 통합교육의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고 말한다.

    “홍휘가 학교에서 적응할 수 있었던 건 엄마가 항상 옆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사실 제 역할을 해주어야 할 사람은 보조교사인데…. 현재 교육부가 장애아동 통합교육을 돕기 위해 시범적으로 도입한 특수교육 보조원의 도입이 더욱 활성화돼야 해요. 일반학교를 보내지 않고서는, 자폐아동이 일반 아이들과 소통하고 연결될 고리가 없다는 점도 저를 고민하게 만들어요.”

    장애인교육권연대는 4월 “시ㆍ도 교육청이 일선학교에 장애아동 교육을 위한 특수학급 폐지를 주문하고 학교 측도 장애아동의 특수학급 입학신청을 거부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발표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도경만 특수교육위원장은 “장애아동들이 신체적인 이유로 일반교육 체계 속에서 교육받을 수 없었던 현실은 장애아동의 사회적 통합을 저해한 요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발달장애 관련 전문가들이 설립한 사회복지법인 상금복지회(대표 남민)는 지난해 말 ‘발달장애인 의료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의료실태 조사연구 보고’를 발표했다. 이 보고에 따르면 자폐아동 부모의 76.6%가 일반 병원에서 자녀의 진료를 받으며 곤란을 겪었고, 많은 부모들이 의료진들의 ‘진료 기피와 거절’ ‘모욕적인 언행’ ‘장애에 대한 이해 부족’ 등에 불만을 느낀 것으로 드러났다. 자폐아 남대현군(15)의 어머니 이성미씨(42)는 “대현이가 실수로 콧구멍에 구슬을 집어넣었을 때도, 참치캔을 따다가 손가락의 인대를 베었을 때도, 편도선 수술을 받을 때도 치료 순서는 항상 마지막으로 밀려나야 했다”며 “되도록이면 병원에 갈 일을 만들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털어놨다. 남군의 손가락은 상처는 아물었지만 치료가 늦어진 까닭에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다.

    장애인 시설조차 자폐환자 받기 꺼려

    한 명의 자폐아동을 키우기 위해 부모가 짊어져야 할 경제적 부담과 고통은 때로 가정파탄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 김은자씨(여·가명)는 15살인 아들의 자폐 증세를 인정하지 않는 남편을 중국으로 떠나보내야 했다. “아이를 시설에 맡기지 않으면 당신과 살지 않겠다”는 남편의 요구에 결국 내린 결단이었다. 세 자녀 중 두 아이가 자폐증세를 보이는 한 가정은 최근 두 아이를 시설에 맡기고 이민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경제적으로 두 아이를 부양할 수 없었기에 부모는 눈물을 머금고 이들의 친권을 포기했다. 호적상 부모가 없다면 두 자녀가 치료를 위한 지원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자폐아를 키우는 부모들은 “자폐아동을 키우는 가정도 국가의 보조만 받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은 ‘장애’가 아니라 제도적으로 삶을 보장받을 수 없는 현실”이라 항변한다.

    “자폐아는 교육받을 권리 없나요”

    상금복지회 단기보호센터의 수업을 마친 자폐아 남대현군이 어머니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법률사이트 오세오닷컴의 대표인 최용석 변호사 역시 자폐아동인 아들 성우군(11)을 키우며 발달장애아동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의 꿈은 성우가 부모의 사망 후에도 꿋꿋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마련되는 것이다.

    “처음엔 성우와 함께 자살할 생각까지 할 정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가게에서 아무 물건이나 집어오고, 화장실 뒤처리도 여전히 서툰 아이가 안쓰러웠지요. 하지만 ‘옷 입고 나가요’ ‘에어컨 꺼주세요’라며 한마디씩 말을 익혀가는 성우는 제게 너무 소중한 아이입니다. 이 아이를 끝까지 돌봐줄 수 없다는 게 가장 걱정스러운 일이죠. 자폐아동의 부모들과 힘을 모아 이 아이들이 살아갈 시설을 마련해주는 게 제 목표입니다.”

    최변호사처럼 자폐아를 키우는 부모들의 가장 큰 고민은 부모가 사망한 이후의 상황이다. 이들이 홀로 서지 못하면 국가가 보살펴야 하는데 현재 국가의 역할은 너무나 미미하다. 정부가 지원하는 정신지체 장애인 복지시설의 경우 97곳에 불과하며, 미신고시설의 경우 상황은 너무 열악하다. 발달장애 전문 복지시설은 전무한 상태다. 그나마 종합사회복지관들은 다른 장애인들보다 많은 손길이 필요한 자폐환자를 받아들이길 꺼리고 있다. 국가의 운영지원 예산이 장애 유형에 관계없이 똑같이 지급되기 때문이다.

    또 자폐와 관련된 많은 학회들이 국내에서 산발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주도권 다툼으로 인해 제대로 된 통합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반면 미국의 경우 테크(TEACCH) 프로그램을 통해 장애가 발견된 아동이 사망할 때까지 교육, 노동, 복지, 의료의 일관된 서비스를 받도록 지원하고 있다.

    상금복지회 단기보호센터의 유경호 원장은 “자폐아동의 증상을 조기에 발견하고 그에 맞는 특수교육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물론 성인이 될 때까지 교육, 거주, 취업, 재활, 치료를 통합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국가적 차원의 제도적 보조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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