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7

2004.06.03

44편의 영화가 뒤죽박죽 ‘하나로’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4-05-27 18: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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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편의 영화가 뒤죽박죽 ‘하나로’
    쿠엔틴 타란티노는 할리우드에서 감독 딱지를 달고 행세하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DJ다. 이 말은 그의 기막힌 음악 선곡 재능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타란티노의 영화들은 모두 고유의 독립된 작품이라기보다 전문지식이 ‘빠삭’한 영화팬의 재조립품 같다는 인상을 준다. 덕택에 영화가 나올 때마다 팬들과 비평가들은 바빠진다. 영화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보고 알아야 할 ‘참고’ 영화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킬 빌’ 2부작만큼 사람들을 바쁘게 한 영화는 없었다. 타란티노는 이 영화에 자기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옛 영화들을 모조리 쏟아붓는다. 쇼 브라더스에 나온 쿵푸 영화들, 일본 사무라이 영화들, 1970년대 미국 블랙스플로이테이션(blax ploitation) 영화들…. 영화전문 정보사이트 IMDb에 따르면, 타란티노는 ‘킬 빌 vol. 1’을 만들면서 57편, ‘킬 빌 vol. 2’에서는 44편의 영화를 차용했다. 이들만 가지고도 웬만큼 큰 영화제 하나를 만들 수 있을 정도다. 이 두 편의 영화들에 대해 평하면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지식을 과장한 평론가들도 상당히 될 것이다.

    44편의 영화가 뒤죽박죽 ‘하나로’
    ‘킬 빌 vol. 2’의 줄거리는 전편에서 이어진다. 우리의 주인공 브라이드(우마 서먼 분)는 일본을 떠나 자신의 결혼식 (사실은 결혼 리허설)을 피바다로 만든 남은 3명의 악당들을 1명씩 처치한다. 물론 마지막 상대는 제목에도 나와 있는 빌(데이비드 캐러딘)이다. 가끔 회상 장면들을 통해 브라이드와 빌의 과거가 드러나긴 하는데, 특별히 기대할 필요는 없다. ‘사실 이랬어’ 이상의 의미는 없기 때문이다.

    ‘킬 빌 vol. 2’를 보면 타란티노의 의도는 분명해진다. 1편에서 그렇게 안개를 뿌려가며 까다롭게 감추었던 브라이드의 이름은 라스트 네임의 말장난을 제외하면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브라이드와 빌의 관계 역시 우리가 처음에 기대했던 것 그대로고. 한마디로 ‘킬 빌’ 2부작은 아무런 내용이 없는 영화다. ‘킬 빌’은 싸구려 영화들에 대한 백과사전적인 지식을 머리에 잔뜩 담고 있는 영화광이 자신의 지식과 스타일을 폭포수처럼 쏟아부은 얄팍하디 얄팍한 영화다.

    ‘킬 빌’을 제대로 보려면 우린 그 얄팍함을 받아들여야 한다. 얄팍하면 어떤가. 그 얄팍함은 여전히 즐겁고 스타일은 여전히 오감이 팽창되는 충족감을 안겨주는데…. 물론 영화를 보고 끝없는 인용의 원천을 찾아 B급 영화의 신천지로 여행을 떠난 영화광들의 의견은 물어볼 필요도 없겠고.



    Tips | 블랙스플로이테이션

    흑인을 뜻하는 ‘블랙’과 선정적이라는 뜻의 ‘엑스플로이테이션’이 결합한 말로, 대개는 1970년대 미국 흑인 관객을 대상으로 만든 액션물을 뜻한다. B급 영화들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다 타란티노 등 젊은 감독들이 자신의 영화에서 오마쥬 대상으로 끌어와 다시 주목을 받았다.



    영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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