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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안전불감증 언제까지…

‘안전신화’ 일본에게 배워라

철저한 감리·충분한 안전요원 배치 등 예방에 ‘총력’ … 사고 때만 법석 떠는 우리와 대조

  • 도쿄=조헌주 동아일보 특파원 hanscho@donga.com

‘안전신화’ 일본에게 배워라

일본 도쿄 시내에서 도로 재포장이나 가스관 교체공사 등은 대개 차량 통행이 뜸한 밤에 이뤄진다. 공사 현장 둘레에는 형광띠가 둘러진 작업복에 안전모를 쓴 안전관리원들이 수신호기를 들고 서 있다가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머리 숙여 절하면서 “죄송합니다, 이쪽으로 가십시오. 조심하십시오”라는 말을 건넨다.

한국에서 살다 온 사람들이 보면 ‘왜 일은 안 하고 놀고 있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까’ 의아하게 생각할 정도로 안전관리요원이 많다.

도로 포장을 새로 하기 위해 아스팔트를 긁어내는 현장을 유심히 살펴본 일이 있다. 아스팔트 덩어리를 트럭에 담는 포클레인 기사와 삽을 든 두 사람이 ‘일하는’ 사람이고, 공사장 주변에 그냥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6명은 모두 안전요원이었다.

도쿄대학 건축학 박사 출신으로 한국에서 수년간 건축 설계와 감리를 담당했던 H씨는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건설 관련 안전사고 소식을 듣고 한국에서의 경험을 이렇게 말했다.

“현장에 나가 점검해보면 도대체 왜 감리책임자가 필요한지, 나한테 일을 하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모를 일 천지였다. 시멘트 구조물의 강도와 안전성을 좌우하는 레미콘만 해도 너무 시간이 지난 까닭에 부어넣어도 제대로 기능할 수 없는 것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 건축회사에서 일할 때 감리책임자가 같은 문제를 발견하고는 완전히 걷어내고 다시 붓도록 하는 모습을 본 일이 있다. 물론 계획한 일정보다 전체 공기가 늦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잘못은 잘못이니 시공사 관련자는 군말이 없었다. 하지만 한국 상황은 달랐다. 한국에서 몇 년 일하다 보니 만일 원칙대로 일했다가는 시공사에서는 물론, 설계 감리회사로부터도 ‘저렇게 요령 없고 답답한 사람 봤나’ 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렇게 일하다가는 목이 날아갈 것이 뻔해 보였다.”



공사 현장엔 인부보다 안전요원이 더 많은 경우도

H박사는 한국인의 눈에 ‘과잉 배치된 안전요원’이나 ‘요령 없는 감리책임자’로 비치는 그들이야말로 일본 사회의 ‘안전신화’ 배경임을 지적한다.

최근 일본 사회 일각에서도 경비절감 등의 이유로 안전대책을 소홀히 해 불상사가 생겨 대대적으로 ‘안전신화가 붕괴됐다’는 보도가 나온 적이 있다. 지난달 도쿄의 관광명소 가운데 하나인 록폰기 힐스 ‘모리타워’ 빌딩을 구경 온 6살 남자 어린이가 들어가는 자동회전문에 목이 끼어 숨진 사고가 발생했다. 시골에서 부모와 함께 도쿄 구경을 온 이 어린이는 부모보다 한발 먼저 들어가려다 순식간에 사고를 당했다. 조사결과 원인은 두 가지. 하나는 관리자들이 자동회전문이 사고 예방을 위해 자동으로 멈추는 일이 많아지자 이를 귀찮은 ‘오작동’으로 보고 사고 방지용 센서의 감지 범위를 줄여놓은 것이었다. 사고를 당한 어린이의 키는 자동센서가 감지할 수 없는 사각지대에 해당했다. 또 다른 이유는 빌딩을 찾는 사람이 워낙 많아 출입 인원을 늘리기 위해 자동회전문의 속도를 인위적으로 빠르게 설정해놓았던 것이다.

이 사고 이후 도쿄 시내의 대형빌딩은 대부분 자동회전문 사용을 중지했다. 자동회전문 사고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일본 내 600여대의 자동회전문은 계속 사용정지 상태로 남을 것이다. 사고 발생시에만 법석을 부리다 이내 관심이 시들해지는 일이 되풀이되는 한, 원시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안전사고는 다시 일어난다. 일본인들은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제도화하는 데 ‘대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할 정도로 집착한다.

일본의 한 현에서는 자전거 사고가 잦자 ‘자전거 면허 운전증’ 제도를 얼마 전 도입했다. 자전거 운전시 주의점 등에 관한 강연을 듣거나, 또는 면허시험을 보는 사람들에게 이 운전증을 나눠준다. 물론 법적 구속력은 없고 계몽적 차원이다. 과연 이 같은 일본인의 세심한 대책을 ‘불필요’ ‘과잉’이라며 비웃을 수 있을까?



주간동아 433호 (p52~52)

도쿄=조헌주 동아일보 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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