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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재협상 불지피고, 農心은 끓고

정부, 5월부터 9개국과 협상 돌입 … 농민단체, 불신 고조 속 “관세화 유예” 주장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쌀 재협상 불지피고, 農心은 끓고

쌀 재협상 불지피고, 農心은 끓고

2월9일 국회 앞에서 열린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반대 시위. 쌀 재협상은 이보다 더 격렬한 저항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한국 농업의 성패를 가를 쌀시장 개방 재협상이 이미 시작됐다. 쌀은 현재 우리나라 농업 소득의 50%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아 쌀시장이 전면 개방되면 우리 농업은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는 이미 2월23일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열린 ‘농업 농촌 종합대책 보고대회’에서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농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향후 100년간의 ‘농업 농촌 종합대책’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119조원 투·융자 세부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그러나 농심(農心)은 이미 들끓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정부를 믿지 못하겠다는 뜻이다. 정부의 협상 의지나 능력으로 볼 때 쌀시장도 개방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 농민단체들은 정부가 쌀시장을 개방하려면 국민투표를 통해 국민의 의사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국민투표 쟁취투쟁을 벌일 태세다. 그래서 쌀시장 개방 재협상은 ‘4·15’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얻은 정부 여당의 국정 운영 능력을 시험할 수 있는 첫 번째 과제가 되는 셈이다.

잘 알려진 대로 1994년 타결된 우루과이라운드(UR) 농업협상 결과 대부분의 농산물 시장이 개방됐다. 농산물 수입을 전면 자유화하되 품목별로 관세를 매겨 수입량을 조절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한국은 쌀의 경우 국제경쟁력이 없는 점을 인정받아 95년부터 올해까지 10년간 쌀시장 개방을 유예받았다. 즉 쌀 관세화에서 예외를 인정받았다는 얘기다. 2005년 이후에도 계속 관세화를 유예받으려면 올해 안에 이에 반대하는 나라와 협상을 벌여 세계무역기구(WTO)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정부, 관세화 재유예·MMA 억제 동시 추진

정부는 이미 2003년 1월20일 WTO에 쌀 재협상 개시 의사를 전달하면서 관심 있는 국가는 4월20일까지 의사를 통보하도록 했다. 마감 결과 우리나라의 1, 2위 쌀 수입국인 중국과 미국을 비롯해 태국 파키스탄 호주 아르헨티나 캐나다 인도 이집트 등 9개국이 협상 참여 의사를 통보해왔다. 우리나라는 5월 초부터 이들 나라들과 개별 협상을 벌여 이를 토대로 작성한 양허안을 늦어도 9월 말까지 WTO에 제출해야 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주식으로 하는 자포니카 계열 쌀은 쌀 전체 교역량의 10% 정도. 주로 중국 동북부와 미국 호주 등에서 생산돼 한국 일본 대만 중동 일부 지역으로 수출되고 있다. 당연히 이번 협상의 핵심 이해 당사국은 중국과 미국일 수밖에 없다. 나머지 국가들은 쌀 수출 기회 확대, 또는 쌀 분야에서 양보하는 것을 조건으로 다른 분야의 개방 확대 등을 노리는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은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상대적으로 관세화를 선호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게 KREI의 분석이다. 그러나 쌀의 관세 수준 및 도하개발어젠더(DDA)에서의 관세 감축 여하에 따라 중국의 수출이 불확실해질 수 있어 관세화 유예에 따른 의무수입물량(MMA) 증량도 동시에 고려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특히 중국 내부의 최근 쌀 수급 상황을 고려할 경우 당분간 수출의 급격한 확대가 쉽지 않은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다만 MMA 증량 수준이 문제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은 우리가 주식으로 하는 중·단립종 생산 및 수출 여력, 그리고 세계시장에서 중국산 쌀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관심은 안정적인 수출 물량 확보에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는 게 KREI의 설명이다. 아울러 MMA 관리에서도 최종 용도 지정의 폐기(현재 MMA 물량은 가공용으로 사용하도록 관리하고 있다) 등과 같은 기술적인 문제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

농림부는 관세화를 최장 10년 정도 재유예받는 동시에 이 경우 반드시 늘려줘야 하는 MMA를 최소한으로 억제하는 것이 이번 협상의 목표라고 말한다. 사실 정부 입장에선 이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 상황에선 농민들에게 받아들여지기도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농림부의 협상안 마련에 관한 자문에 응하고 있는 한 인사는 “적어도 정부의 협상 목표는 확고하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는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이우재 의원의 농림부 장관 기용 가능성은 농림부 안팎에 미묘한 파장을 던지고 있다. 농림부 내에서 허상만 장관 교체는 큰 전투를 앞두고 장수를 갈아치우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농림부 관계자는 “장관 인사권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있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기 힘들지만 노대통령이 중요한 협상을 앞두고 허장관을 교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의원은 지난해 우리당 창당에 합류한 한나라당 탈당파 의원으로 당내 경선에서 패해 이번 총선에 출마하지 못했다.

허장관에 대한 농림부 안팎의 평가도 점차 호전되고 있다. 농림부 관계자는 “허장관이 이제는 나름대로 방향을 잡았기 때문에 쌀 재협상을 잘 이끌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허장관 취임 직후의 분위기에 비하면 놀라운 변화인 셈이다. 당시 농림부 일각에서는 “중앙 농정에 한 번도 참여해본 적이 없는 지방대(허장관은 순천대 총장 출신) 교수 출신이 뭘 안다고…” 하는 비아냥까지 있었다.

쌀 재협상에 대한 언론이나 여론 지도층의 인식이 ‘합리적으로’ 바뀐 것도 허장관과 농림부의 ‘공’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많다. 한 전문가는 “과거에는 ‘관세화’라는 말만 꺼내도 농민단체에서 당장 ‘매국노’ 소리를 들었는데, 지금은 ‘실리를 따져 관세화와 관세화 유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부에서나마 일고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농림부 장관 교체설 미묘한 파장

성진근 충북대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실상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교수에 따르면 DDA 협상에서 개도국 지위를 상실하고 관세 상한치가 150%로 타결되는 최악의 경우라고 해도 현재의 국제 쌀 가격 상승 추세를 볼 때 관세화가 MMA 물량 증대보다 나을 수도 있다. 2010년 쌀 값을 4만원(80kg 기준)으로 가정하면 국내 시장가격은 관세 6만원과 국내에서의 포장비 등 2만원을 합친 12만원이 되는데, 이 정도는 우리 쌀 산업이 견딜 만한 수준이라는 것.

반면 관세화 유예로 가는 경우 협상 상대방이 우리의 절박한 처지를 알고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무엇보다 우리는 시간에 쫓기는 입장이다. 정부가 쌀 관세화 유예의 근거인 WTO 농업협정문 제5부속서에 따라 올해 안에 협상을 마쳐야 한다는 자세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 그렇지 못할 경우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규정이 없는데, 정부는 자동적으로 관세화로 간다 는 다수 의견에 동조하는 듯한 입장이다.

성진근 교수는 “MMA 물량 증대를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성교수의 계산에 따르면 MMA 물량이 1% 증대할 때마다 논 6000ha(1ha=약 3000평)가 퇴출된다. 문제는 농민들이 퇴출된 이 논에 돈이 될 만한 다른 작물을 한꺼번에 심을 게 뻔한데 그렇게 되면 해당 작물은 곧바로 가격 폭락 등 파동에 휩싸이게 된다는 것. 여기에 WTO 규정상 나중에 관세화를 택해도 MMA 물량은 그 시점의 물량만큼 영원히 고정된다는 점도 부담이다.

그러나 문제는 농민들의 태도가 여전히 완강하다는 점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전국적인 농민단체 7개의 연합체인 전국농민연대 강민구 사무국장은 “우리당에서 ‘2~4% 포인트 정도의 MMA 물량 증대 대신 관세화 유예 관철’ 주장이 나오는데, 지금으로서는 그런 얘기보다 관세화 유예 쟁취에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미 전국농민회총연맹은 3월부터 쌀 개방 찬반을 묻는 농민투표를 지역별로 진행하고 있다.

아무튼 정부로선 첩첩산중인 셈이다. 대외 협상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대내 협상은 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취재 과정에 만난 한 농업전문가의 말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결국 쌀시장 개방은 거대한 흐름인데, 이에 대비하기 위한 핵심적인 과제는 ‘돈’이다. 그런 점에서 농민 소비자 정치권 등이 모두 참여해 ‘좋다. 농업에는 과거보다 더 많은 자원을 배분해줄 테니 농민들 당신은 친환경 농업 등을 통해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시오’라는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 정부가 2월에 발표한 119조원 지원 대책도 그런 차원으로 이해되지만 농민들이 믿지 못하는 만큼 농정 불신을 불러온 정부가 나서서 진심으로 설득해야 한다.”



주간동아 433호 (p32~34)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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