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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 vs 하청노조’ 대리전 붙었다?

현대중 노조·민노총, 하청업체 노동자 분신자살 배경과 대책 놓고 극한 대립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원청 vs 하청노조’ 대리전 붙었다?

‘원청 vs 하청노조’ 대리전 붙었다?

분신자살 현장에서 발견된 고 박일수씨의 유서(오른쪽 위). 민주노총의 분신대책위가 고 박일수씨의 시신이 안치된 병원 앞에서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이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상급 노동단체의 지시를 어기고 반(反)노동자적 행동을 일삼고 있다. 민주노총에서 제명하겠다.”(민주노총 금속연맹)

“금속연맹이 현대중공업 노조를 제명하는 것은 조합원을 무시하는 비민주적이며 반노동자적 폭거다. 징계 철회 및 공개사과가 있을 때까지 무기한 연맹비 납부를 중단할 것이다.”(현대중공업 노조)

2월14일 현대중공업(이하 현중) 사내 하청업체 인터기업의 전 노동자 박일수씨 분신자살 사건을 계기로 불거진 민주노총과 현중 노조 사이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민주노총 금속연맹이 현중 노조를 사실상 ‘어용’으로 규정하고 제명을 결의하자, 현중 노조가 이에 반발하며 연맹비 납부 거부와 조합 탈퇴 가능성을 거론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 금속연맹 내 사업장 가운데 현대자동차에 이어 두 번째 규모로 꼽히는 현중 노조의 거취가 관심으로 떠올랐다.

현재 현중 노조가 납부하지 않고 있는 연맹비는 5억8000만원으로, 현중 노조 처리 방향은 이후 민주노총의 행보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현재 두 단체 사이의 이견이 맞부딪치는 지점은 박씨 분신 사건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부분. 사건은 현중 사내 하청업체에서 지난해 12월 퇴사한 박씨가 2월14일 오전 5시경 만취 상태로 회사에 들어와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분신자살하면서 발생했다.



“제명하겠다” “연맹비 납부 중단” 팽팽

그가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것으로 확인되자 민주노총은 즉각 박씨를 ‘열사’로 규정하고 ‘박일수 열사 분신대책위원회’(이하 분신대책위)를 구성해 현중 노조에 합류를 요구했다. 또 이 사건을 최근 사회적 이슈인 비정규직 문제와 연계해 대정부 투쟁을 벌이겠다는 의사도 분명히 했다.

그러나 현중 노조측은 다음날 “각 노동단체들이 박씨 분신자살을 이용하여 조직 단위의 위상을 강화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짙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며 단독으로 ‘진상조사대책위원회’를 꾸린 것이다.

이에 대해 현중 노조 유상구 사무국장은 “박씨는 지난해 7월부터 지금까지 전혀 노조활동을 하지 않은 사람이고 하청노조에도 가입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망 당시 현중 노동자도 아니었다. 생활태도 등 개인적인 부분에 문제가 있는 점도 밝혀지고 있다. 단지 죽었다는 이유로 무조건 열사라고 부르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라며 “분신대책위와 특정 정당, 단체들이 초기 판단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투쟁의 명분을 비정규직 문제로까지 끌고 가고 있다. 무리한 정치 투쟁 때문에 단위 사업장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이 이상하게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현중 노조는 박씨가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로 비정규직 노동자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 사망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가 0.15%로 만취 상태였다는 점, 박씨가 신병 비관과 돈 문제 등에 관한 고민을 적어 딸에게 남긴 또 하나의 유서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분신대책위가 정치적 목적으로 열사를 만들어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민주노총 등 노동계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박씨는 하청업체 노동자의 처우 문제를 지적하며 분신했고, 실제로 현중 내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정규직(원청업체 직영) 노동자들과 비교할 때 여러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것. 단위 노조가 이를 무시하는 것은 귀족적 노동운동의 전형이라는 게 상급 단체의 비판이다.

올 3월 현재 현중에서 일하고 있는 하청업체 노동자는 153개 업체 1만1100여명으로, 현중 노조원의 절반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은 일당이나 시급제로 계약하는 데다 근로계약서를 거의 작성하지 않기 때문에 4대 보험과 연·월차, 퇴직금 등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권리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있는 상태. 불안정한 고용 탓에 노조 가입은 바로 해고로 이어져 처우 개선을 위한 노력도 사실상 전무했다. 분신자살한 박씨의 경우도 하청업체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한 전단지 등을 돌리다 회사측에 발각돼 해고당했다는 것.

박씨 사망 이후 ‘현중 사내 하청노동조합’ 조합원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현중 하청업체 세경기업의 진용기씨는 “노동법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기 때문에 언더 노조에서 활동하면서도 지금껏 이 사실을 한 번도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했다. 현중 하청노동자들은 조업 중에 사고를 당해도 현중에 알려질 경우 업체 자체가 폐쇄될 수 있기 때문에 산재 처리를 받지 못한다. 이런 비참한 현실을 말하기 위해 박열사가 목숨을 던졌는데 ‘개인 신변을 비관해 죽었다’ ‘현중과 무관한 일이다’라고 발뺌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씨도 유서에 ‘태어나면서 하청노동자로 태어나지 않았고 어쩌다 보니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 뿐인데, 직영노동자라 하여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를 기만하고 멸시할 자격은 없다’라고 적어 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차별에 힘겨워했음을 밝혔다.

이 때문에 민주노총은 이번 사건을 ‘우리나라에서 비정규직 차별 문제가 전면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문제는 두 단체가 사건을 바라보는 현격한 시각 차이를 좀처럼 좁히려 들지 않는다는 점. 현중 노조는 1988·89년 128일 파업과 90년 골리앗 파업 등을 이끌며 95년 민주노총 창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조직으로, 지금까지 명실상부한 민주노총의 중심 단체였다. 그런데 이번 갈등 과정에서 상급단체인 민주노총과 현중 노조 사이에는 아무런 절충 시도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양측 노동자 사이의 물리적 충돌까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2월 말부터 박씨가 안치된 영안실에서는 현중 노조 대의원들과 분신대책위 관계자들 사이에 수차례 물리적 충돌이 벌어져 일부 노동자들이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의 중상을 입었다. 이에 대해 현중 노조 대의원들은 조문하기 위해 영안실을 찾는 노동자들을 분신대책위가 막고 있다고 주장하고, 분신대책위 관계자들은 현중 노조가 수적 우위를 앞세워 영안실을 ‘침탈’했다고 반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감정이 격화되면서 두 조직은 서로를 ‘어용’ ‘반민주 집단’ 등으로까지 폄훼하고 있다.

이 때문에 양측이 서로를 도덕적으로 공방하는 것은 이번 갈등의 뒤에 ‘4·15’ 총선을 염두에 둔 정략적 접근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울산은 현중 정몽준 고문과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이 정면으로 부딪치는 지역. 민노당을 지지하는 민주노총과 심정적으로 정고문을 지원하는 현중이 선거를 눈앞에 두고 파워 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계에서 현중 노조와 민주노총 사이의 이번 갈등이 15년 넘게 이어져온 민주노조운동에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싸움에서 현중 노조가 입지를 세우고 정고문의 당선에 적극 나설 경우 민노당을 앞세워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온 민주노조운동에 큰 타격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중의 금속연맹 제명을 최종 확정 지을 대의원 대회가 5월경에 열릴 것으로 발표되면서 양측의 갈등은 총선 이후까지 이어지게 됐다. 과연 이 기간에 민주노총과 현중 노조의 갈등이 봉합될 수 있을지, 아니면 이번 다툼이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주간동아 430호 (p64~65)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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